당나라 4대 황제 중종 이현(中宗 李顯, 656~710, 재위684, 705~710)
| 전임 황제 | 당시 재직 황제 | 후임 황제 | |
| 직위 | 진왕, 당나라 황태자, 당나라3대 황제 | 주왕 영왕, 여릉왕, 당나라 황태자, 무주 황태자, 당나라 4대 황제 | 상왕, 예왕, 당나라5대 황제, 무주 황태자, 안국상왕, 당나라 5대 황제, 당나라 태상황제 |
| 가문(황조) | 당(唐) | ||
| 명칭(묘호) | 고종(高宗) | 중종(中宗) | 예종(禮宗) |
| 출신 | 당나라, 장안(長安) | ||
| 생몰년도 | 628.07.21 ` 683.12.27 | 656.11.26 ~ 710.07.03 | 662.06.22 ~ 716.07.13 |
| 재위 | 진왕(晉王) 631.03.28 ~ 643.04.30 |
주왕(周王) 657.03.31 ~ 677.11.03 |
상왕(相王) 676.02.12 ~ 683.08.16 698.12.08 ~ 705.02.23 |
| 영왕(英王) 677.11.03 ~ 680.09.21 |
예왕(豫王) 683.08.16 ~ 684.02.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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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나라 황태자 643.04.30 ~ 649.07.15 |
당나라 황태자 680.09.21 ~ 684.01.03 |
당나라 5대 황제 684.02.27 ~ 690.10.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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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나라 4대 황제 684.01.03 ~ 684.02.26 |
무주 황태자 690.10.19 ~ 698.12.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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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돌궐의 가한, 당나라 2대 황제 649.07.10 ~ 683.12.27 |
여릉왕 684.02.26 ~ 698.10.24 |
안국상왕(安國相王) 705.02.23 ~ 710.07.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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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주 황태자 698.10.24 ~ 705.02.23 |
당나라 5대 황제(복위) 710.07.25 ~ 712.09.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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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나라 4대 황제(복위) 705.02.23 ~ 710.07.03 |
당나라 태상황제 712.09.08 ~ 716.07.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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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656년 11월 26일, 당나라 장안(長安)성 황궁에서 아버지 당 고종 이치(唐 高宗 李治, 628~683, 재위649~683)와 어머니 측천무후(則天武后, 624~705, 재위690~705)사이에서 태어났다.
배경
당나라 4대 황제이자 당 고종 이치와 측천무후 사이의 7남이다. 황태자였던 형들이 사망하고 바로위 형 이현(李賢)태자가 사건에 휘말려 독살당하고 황태자에 봉해지게 된다. 부황 사망 직후 황제가 되나 모후 측천무후에 의해 폐위당하고 여릉왕으로 연금되어있는 신세로 있다가 모후가 705년 노쇠해지면서 신하들의 반란으로 복위에 성공하지만 황후인 위황후와 딸 안락공주등이 무삼사와 간통, 국정농단등을 자행하면서 황태자까지 죽일 수 밖에 없게 되고, 위황후와 안락공주가 독이 든 떡을 주고 이를 먹고 중종이 독살되어버리게 되어버린다.
초년
당 고종 이치와 측천무후의 7남으로 친형이자 당 고종 이치의 6남인 이현(李賢, 655~684)과는 한글발음은 같지만 한자는 다르다(6남 이현은 [어질 현(賢)]을, 7남 이현은 [나타날 현(顯)]을 사용). 동복 형 이현이 황태자로 있을때인 680년, 당 고종 이치가 신임하던 명숭엄(明崇儼)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당시 황태자는 주색을 탐하는 것으로 유명하였고 명숭엄은 황태자가 황제가 될 위인은 아니라고 황제에게 항상 고하던 인물로서 죽음으로 인해 측천무후는 6남 이현 황태자를 의심하게 되었고 황태자가 모반을 꾀했다는 측천무후의 모함으로 결국 황태자는 폐위되고 7남 이현이 황태자에 책봉되게 된다. 그렇게 3년 뒤 부황 고종이 683년 12월 27일 사망하게 되면서 684년 1월 3일 황태자 이현(李顯)이 당나라 4대 황제로 즉위하게 되며 이 인물은 오늘날 당 중종(唐 中宗)으로 불리게 된다.
폐위와 격하
684년 1월 3일 황제위에 오른 중종은 사실상 당시 영향력을 행사하던 모후 측천무후(則天武后)에 의해 권력을 누릴 수 없었고, 결국 측천무후에 의해 즉위한지 불과 2개월도 채 되지않은 684년 2월26일, 황제위에서 폐위당하고 여릉왕(廬陵王, 여릉왕기간684~698)으로 격하되고 사실상 궁에 연금당하는 상태로 지내게 되고 동생 이단(李旦)이 모후에 의해 당나라 5대 황제 예종(禮宗, 662~716, 재위684~690, 710~712)으로 즉위하게 된다. 중종은 연금되어 지내는 도중 모후 측천무후가 690년 10월 16일, 국호를 '주(周)'로 하고 성신황제로 스스로 즉위하게 되면서 무주(武周)가 건국되게 되어버린다.
무주 시기
무주가 건국되고 어머니 측천무후가 황제로 즉위하게 되면서 연금당해있는 동안에 어머니가 자신을 죽이지 않을까 두려워하여 아내이자 황후인 위황후(偉皇后, 660~710)에게 의지하게 되는게 이 시기때이다. 14년간의 여릉왕 연금기간이 끝나고 698년 10월 24일 어머니 측천무후로부터 무주 황태자 작위를 받고 더욱 조용히 지내다가 705년 모후이자 황제 측천무후가 병들게 되면서 측천무후의 측근들이 황제의 부재를 틈타 권위를 휘두르게 되면서 혼란이 자행되자 이를 두고보다 못하고 재상인 장간지(張柬之, 625~705)를 포함한 5인(최현위[崔玄暐], 경휘[敬暉], 원서기[袁恕己], 환언범[桓彦範])등이 중종에게 쿠데타를 묵시적으로 승인 받고 중종을 다시 옹립하는 것으로 들고 일어났고 노쇠한 측천무후는 중종으로 하여금 황위를 물려주는 것으로 퇴위를 하게 되면서 국호를 다시 당(唐)으로 복귀시킨다. 이 난을 신룡정변(神龍政變)이라고 한다.
복위
그렇게 다시 당나라 4대 황제로 복위한 중종은 705년 2월 23일 황제로서 다시 권위를 행사하지만 천성적으로 유약했던 중종은 이때부터 황후인 위황후(偉皇后, 660~710)가 정권을 장악하려고 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러나 이전 측천황제와는 다르게 신하들 그 누구도 특히 이전 고종때의 노신하들은 두번다시 제2의 측천무후를 만들고 싶지 않다며 완강히 반대하며 위황후를 막아서지만 결국 숙청당하고 만다. 위황후는 정권을 장악한 이후 시어머니 측천무후처럼 행동하고 심지어는 정부인 무삼사(武三思, ?~707)의 며느리가 되는 딸 안락공주(安楽公主, 684~710)를 황태녀로 만들어 다음재위를 이으게끔 하려던 시도를 하지만 중종이 완강히 반대하면서 무산된다.
암살
위황후처럼 안락공주 역시 간통을 저지르면서 점점 황궁이 혼란스러워지게 됨에따라 황태자 이중준(李重俊, ?~707)은 신하들과 합세 해 모후 위황후의 정부로서 국정을 농단한 무삼사를 처단하는 경룡정변(景龍政變, 707)을 일으키게 된다. 위황후는 이에 분노해 중종에게 황태자를 처단하라고 압박하고 중종은 이에 반대하지만 계속된 위황후의 압박에 어쩔 수 없이 황태자를 죽일 수 밖에 없게 되면서 위황후와 안락공주는 더욱 힘을 얻게되고 이 두 모녀는 각각 황제와 황태녀가 되기위해 중종에게 독이 든 떡을 먹이게 하고 중종은 이에 710년 7월 3일, 독살당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