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왕조/당나라

당 고조 이연

Mintaka5 2025. 9. 13.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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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 초대 황제 고조 이연(高曺 李淵, 566~635, 재위618.06.18~626.09.04)

  전임 황제 당시 재직 황제 후임 황제
직위 수나라 황태자, 수나라 2대 황제 당나라 초대 황제, 당나라 태상황제 진왕, 당나라 황태자, 동돌궐의 가한(천가한), 당나라 2대 황제
가문(황조) 수(隋) 당(唐)
명칭(묘호) 세조 양제(世祖 煬帝) 고조(高祖) 태종(太宗)
출신 북주, 천화(天和) 북주, 장안(長安) 수나라, 경조군(京兆郡)
생몰
년도
569.xx.xx ~ 618.04.11 566.04.07 ~ 635.06.25 598.01.28 ~ 649.07.10
재위 수나라 황태자
600.12.13 ~ 604.08.13
당나라 초대 황제
618.06.18 ~ 626.09.04
진왕(晉王)
618.06.18 ~ 626.07.05
당나라 황태자
626.07.05 ~ 626.09.04
수나라 2대 황제
604.08.13 ~ 618.04.11
당나라 태상황제
626.09.04 ~ 635.06.25
동돌궐의 가한(천가한)
630.04.20 ~ 649.07.10
당나라 2대 황제
626.09.04 ~ 649.07.10

당나라 초대 황제 고조 이연
당 고조 이연, 출처-위키피디아

출생

566년 4월 7일, 북주 장안(長安)에서 아버지 당국공 이병(唐國公 李昞, ?~573)과 어머니 독고씨(獨孤氏, ?~?, 수 문제의 황후인 문헌황후 독고가라[獨伽羅]의 자매)사이에서 태어났다. 

 

배경

당나라의 초대 황제. 북주 사람으로 당국공(唐國公)작위를 가지고 있었고 617년 수나라 태원 유수로 활동하던 시기에 사촌인 수나라 2대 황제이자 마지막 황제인 수 양제 양광의 폭정으로 613년부터 반란이 일어나기 시작하고 점점 국가가 존망의 위기에 빠질 때 반란에 가담하여 아들 이세민(미래의 당태종)과 함께 장안에 입성하여 강남에서 머무르던 양광을 폐위시키고 공제를 옹립시키고 당왕에 봉해지지만 618년 4월 11일 수 양제가 시위장 우문화급에게 시해당하면서 공제를 압박하여 선양받는 형식으로 황제가 되니 이가 당나라 초대 황제인 고조 이연이다. 즉위 이후 혼란스러웠던 제국을 안정시키지만 626년 현무문의 변 때 차남 진왕 이세민이 황태자 이건성과 제왕 이원길 두아들을 죽이고 자신은 사실상 황권에서 물러나게 되며 626년 9월 4일, 황태자에게 황위를 선양하게 되면서 태상황제로 물러난다. 635년 69세로 사망한다.    

 

초년과 혼란기

이연은 당국공(唐國公)이였던 아버지가 7살이 될 무렵인 573년 사망하면서 자신이 당국공 지위를 물려받게 된다. 당국공 지위는 세습가능한 작위로서 당대로서 명문가였음을 보여주는 작위이다. 10대 청년기이던 이연은 581년 자신의 외삼촌인 양견(煬堅, 541~604, 재위581~604)이 북주 황제 정제 우문천(北周 靜帝 宇文 , 573~581, 재위579~581)를 강제로 폐위시키고 스스로 황제위에 올라 수(隋)나라를 건국하고 수 문제(隋 文帝)로서 국가를 통치하게 되며 이연 자신은 외삼촌으로부터 황실 친위대에 배속되게 되고 당국공 지위는 계속해서 유지하게 된다. 이연은 이후로도 외삼촌 수 문제 치세기간(581~604)동안 지방 감사를 역임하면서 조용히 지내다가 604년 사촌동생인 수 양제 양광(隋 煬帝 煬廣, 569~618, 재위604~618)이 즉위하게 되면서 감사보다 더 높은 직급인 지방 태수로 임명되어 있다가 613년 수 양제가 고구려를 정복할 때 회원진(懷遠鎭)인근에서 임무를 맡게 되고 아들 이세민(李世民, 미래의 당 태종, 598~649, 재위626~649)은 군 물자 수송을 맡는다. 그러나 무리한 원정으로 인한 백성들의 민심 이반과 함께 2차 고구려 원정 때 예부상서 양현감(楊玄感, 571~613)이 10만의 민병으로 반란을 일으키니, 이것이 양현감의 난(613)이다. 수 양제는 양현감의 난으로 인해 더이상 고구려 원정을 진행할 수 없었고 어쩔수 없이 장안으로 복귀하지만, 난은 양현감 뿐만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군웅들이 들고일어나 일파만파 퍼져 장안에 입성하지도 못한다. 그러나 이후 617년에 이연은 아들 이세민과 반란을 일으켜 장안을 점령하고 수 공제 양우(隋 恭帝 楊侑, 605~619)를 옹립하고 자신은 당왕(唐王)으로 추대받게 되고 자신이 옹립한 공제를 압박하기에 이른다. 

 

즉위

당왕으로 추대된지 1년이 채 되지 않아 수 양제가 618년 4월 11일, 자신의 시위장인 우문화급(宇文化及, ?~619)에게 시해당하면서 황위가 공석이 된다. 그런 혼란속에서 이연은 결단을 내려 618년 6월 18일 공제로부터 황위를 선양받고 황제가 되고 당나라(唐)를 건국함과 동시에 수나라(隋)를 멸망시키면서 수나라는 37년이라는 짧은 역사를 뒤안길로 사라진다. 이연은 즉위 이후 견제세력과 마무리 되지않은 전국 각지의 반란을 잠재우기 위해 둘째 아들 진왕(晉王) 이세민(미래의 당태종)으로 하여금 반란군 토벌을 명하게 되고 621년 이세민은 모든 반란 토벌을 완료하게 되는데 단 한번도 패배하지 않고 수행하여 부황 이연으로부터 '천책상장(天策上將, 하늘이 내린 장수)'이라는 칭호를 받기에 이른다. 이연은 수나라의 제도를 거의 대체로 수용하여 관료 제도를 정비하고 등전제(토지제도)를 시행하는등 민심을 보살피는등 내치에 안정을 기울이게 된다. 

 

현무문의 변

그러나 이연은 차남 진왕 이세민의 권위가 점점 커지는 것을 은연중에 경계하여 태자자리에 장남 이건성(李建成, 589~626)을 책봉하기에 이른다. 특히 황태자 이건성과 막내 동생 제왕 이원길(李元吉, 603~626)은 아우 이세민의 권위가 커지는 것을 매우 못마땅하게 여겼고, 이연은 이러한 아들들의 갈등을 직접 지켜보면서도 서로 견제하여 황제의 권위를 지키고자 노력한다. 그러나 이러한 불균형으로 인해 626년 7월 2일 결국 사건이 터진다. 이세민은 형과 아우의 시기, 질투가 결국 자신을 암살하겠다는 모의를 결국 알아내고 말아서 도리어 자신이 역으로 형과 아우를 공격하기로 마음먹게 된다. 황궁으로 들어가는 현무문에는 아무리 황태자의 시위군이라 할지라도 입장하기 어려웠고 황태자 이건성과 제왕 이원길 둘만 입장하게 되는데 이 때를 노린 이세민이 현무문의 문을 굳게 걸어잠그고 직접 형과 동생을 죽이고 부황 이연에게 와서 형과 아우가 반란을 일으키려고 하여 선참후보를 하게 된다. 이연은 겁에 질려 군권을 진왕에게 넘기고 곧이어 국정까지 넘기게 된다. 그리하여 현무문의 변 3일 뒤인 626년 7월 5일, 이연은 차남인 진왕 이세민을 황태자로 책봉할 수 밖에 없게되며 2개월 뒤인 626년 9월 4일, 황태자 이세민에게 황위를 물려주고 태상황제로 물러나게 된다. 

 

사망

635년 5월 6일, 태상황제 이연은 69세의 나이로 사망하게 되며 묘호는 고조(高祖)로 추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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