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교황/101대~200대 교황

빅토르3세

Mintaka5 2025. 6. 29.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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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다우페리우스(Dauferius)

158대 교황 빅토르3세(Victor PP. III, 재위1086~1087)

  전임 교황 당시 재직 교황 후임 교황
직위 157대 교황 158대 교황 159대 교황
출신 신성로마제국, 토스카나 후작령 베네벤토 공국, 베네벤토 프랑스, 샹파뉴
명칭 그레고리오7세
Gregorius PP. VII
빅토르3세
Victor PP. III
우르바노2세
Urbanus PP. II
생몰년도 1020.xx.xx ~ 1085.05.25 1027.xx.xx ~ 1087.09.16 1035.xx.xx ~ 1099.07.29
교황선거기간 2일
(1073.04.21~1073.04.22)
1일
(1086.05.24)
1일
(1088.03.12)
재위 1073.04.22 ~ 1085.05.25 1086.05.24 ~ 1087.09.16 1088.03.12 ~ 1099.07.29

158대 교황 빅토르3세 초상화
빅토르3세, 출처-위키피디아

출생

1027년, 베네벤토 공국, 베네벤토(Benevento)에서 아버지 베네벤토 공작 란돌포5세(Landolfo V di Benevento, ?~1033, 재위1014~1033)와 어머니(미상)사이에서 태어났다. 

 

배경

158대 교황으로, 베네벤토 공작 란돌포5세의 아들로 태어나 수사가 되고싶어 집에서 도망쳐서 수도원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끌려왔다가 다시 수도원으로 들어가 수련을 거쳐 교황들의 눈에 띄어 교황 사절로 파견되기도 하고 교황 빅토르2세밑에서 일하다가 수사들과 친분을 쌓고 몬테카시노 수도원에 들어가서 이후 자신이 들어간 수도원장에 선출되기도 한다. 그레고리오7세가 선종하고 교황으로 추천받지만 자신은 교황직에 뜻이 없어 로마에서 도망쳐나와 1년간 칩거하다가 1086년 5월 24일 겨우 교황직을 수락하여 교황 빅토르3세가 되지만 로마를 사실상 머물던 대립교황 클레멘스3세에 의해 몬테카시노로 다시 돌아갔다가 이후 노르만과 로마 귀족세력들과 규합해 로마로 돌아오지만 다시 대립교황으로 인해 몬테카시노로 피신했다가 그곳에서 중병에 걸려 선종한다. 

 

성직

20살이 되었을 무렵 가족몰래 수도회로 들어갔다가 돌려보내지고를 번복하다 겨우 수도원으로 들어가 수도생활을 하는 인물이다. 1053년엔 베네벤토 산타 소피아 수도원 수도사로서 교황 레오9세(Leo PP. IX, 1002~1054, 재위1048~1054)의 눈에 띄어 교황 사절로 파견되고 1055년엔 레오9세의 후임교황 빅토르2세(Victor PP. II, 1018~1057, 재위1055~1057)밑에서 일하게 되면서 명망높은 수사들을 만나 교류하다가 몬테카시노(Montecassino)수도원에 들어가 활동하다가 1058년 교황 스테파노9세(Stephanus PP. IX, 1020~1058, 재위1057~1058)에 의해 교황 사절로 임명되어 동로마제국(비잔틴제국) 콘스탄티노플에 파견되어 떠나려고 하던 찰나에 자신이 몬테카시노 수도원장으로 선출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수도원장이 된 다음 성당과 수도원을 건축하고 규율을 정비하는 업무에 신경을 쓰면서 1071년 몬테카시노 대성당 완공과 함께 교황 알렉산데르2세(Alexander PP. II, 1010~1073, 재위1061~1073)의 축성을 받기에 이른다. 1058년 3월엔 교황 니콜라오2세(Nicolaus PP. II, 990~1061, 재위1058~1061)로부터 부제급 추기경, 1059년엔 사제급 추기경에 서임된다. 

 

1086년 교황 선거

1085년 5월 25일, 교황 그레고리오7세(Gregorius PP. VII, 1020~1085, 재위1073~1085)가 선종한다. 교황이 선종한 후 몬테카시노 수도원장 다우페리우스 추기경이 교황으로 추천을 받지만 본인이 거부의사를 표시하고 도망쳐버림에 따라 교황선거가 연기되어버린다. 다우페리우스 추기경은 노르만족과 랑고바르드족과 연합하여 자신을 보호함과 함께 지지를 호소하여 시간을 보내게 되며 추기경들과 노르만족간에 의견이 맞지않아 교황 선거가 무기한 연기됨에 따라 로마에는 사도좌 공석기간이 길어짐에 따라 혼란이 점점 커지게 된다. 그렇게 1년에 가까운 기간동안 교황 선거가 연기되다가 1086년 5월 24일, 교황직을 수락하고 빅토르3세로 명명하고 즉위하게 된다. 

 

교황

그러나 빅토르3세는 교황 선출 4일만인 5월 28일, 대립교황 클레멘스3세(Antipope Clemens III, 1025~1100, 대립교황1080~1100)의 반대파와 맞닥드리면서 로마를 탈출하여 몬테카시노(Montecassino)에서 1년간 칩거하다가 1087년 초반이 되어 교황 스스로 주교 회의를 소집시켜 여러 지도자들과 귀족들의 지지의사를 받고 1087년 부활절이 지난다음 노르만 군대를 이끌고 로마로 향하게 된다. 대립교황 클레멘스3세가 차지하고 있던 로마에 진격하고 대립교황의 호위병사들을 모두 몰아내고 1087년 5월 9일에 비로소 즉위식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1달정도 지난 6월 20일경에 대립교황의 공격을 다시 받아 몬테카시노로 피신하게 된다. 

 

선종

빅토르3세는 6월에 대립교황에 의해 다시 몬테카시노로 피신한 다음 3개월이 지난 시점에 중병에걸려 9월 16일 몬테카시노에서 선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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