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교황/101대~200대 교황

호노리오2세

Mintaka5 2025. 6. 26.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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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람베르토 스칸나베키(Lamberto Scannabecchi)

163대 교황 호노리오2세(Honorius PP. II, ?~1130, 재위1124~1130)

  전임 교황 당시 재직 교황 후임 교황
직위 162대 교황 163대 교황 164대 교황
출신 신성로마제국, 프랑슈콩테 신성로마제국, 피아냐노 교황령, 로마
명칭 갈리스토2세
Callistus PP. II
호노리오2세
Honorius PP. II
인노첸시오2세
Innocentius PP. II
생몰년도 1060.xx.xx ~ 1124.12.13 ? ~ 1130.02.13 ? ~ 1143.09.24
교황선거기간 5일
(1119.01.29~1119.02.02)
3일
(1124.12.13~1124.12.15)
2일
(1130.02.13~1130.02.14)
재위 1119.02.02 ~ 1124.12.13 1124.12.21 ~ 1130.02.13 1130.02.14 ~ 1143.09.24

163대 교황 호노리오2세 초상화
호노리오2세, 출처-위키피디아

출생

출생년도 미상이며, 신성로마제국 피아냐노(Fiagnano)에서 아버지(미상)와 어머니(미상)사이에서 태어났다. 

 

배경

163대 교황으로, 1124년 교황선거당시 프랑지파니 가문의 지지를 받고 있던 상태에서 상대파 가문인 피에를레오니 가문의 지지를받던 테오발도 보카페치 추기경을 선출하여 첼레스티노2세로 명명되고 즉위하는 즉위식 과정에서 프랑지파니 지지측들이 침입해 무력을 사용하여 첼레스티노2세가 부상을 입게 된다. 이 때 프랑지파니 지지자들은 람베르토 추기경을 교황 호노리오2세로 옹립시키지만 피에를레오니 지지자들은 사실상 교황권 찬탈이라 규정하고 그대로 첼레스티노2세를 지지한다. 현재 로마교회에서는 피에를리오니측 추기경 첼레스티노2세를 대립교황으로 규정하고 있다. 즉위 이후 신성로마제국 문제등에 개입하여 로마왕 로타르3세와 대립하던 콘라트를 파문시키는등의 권위를 보이지만, 시칠리아 왕 로저2세의 위협에 작위를 주는등 달래다가 1130년 선종한다.       

 

성직

람베르토는 이몰라(Imola)에서 학업을 마치고 피사(Pisa)에 이주하여 성 아우구스티누스 의전사제가 되는데 법률가로서의 능력을 인정받아 교황청에 파견되어 교황 우르바노2세(Urbanus PP. II, 1035~1099, 재위1088~1099)의 인정을 받아 1099년 추기경에 서임된다. 이후 교황 특사로 임명되어 신성로마제국에 파견되어 1122년 신성로마제국 황제 하인리히5세(Heinrich V, 1075~1125, 로마왕재위1099~1125, 신성로마재위1111~1125)와 갈리스토2세간에 보름스 협약(The concordat of Worms, 1122)을 체결하게끔 하는 공을 세운다. 이협약은 교황 선거에 대한 내용과 신성로마황제는 세속적 권력 서임권만을 행사할 수 있고 영적 권력 서임권은 교회와 관련된 인물 또는 성직자들만이 행사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1124년 교황 선거

1124년 12월 13일, 교황 갈리스토2세(Callistus PP. II, 1060~1124, 재위1119~1124)가 선종하면서 교황 선거가 소집 된다. 교황 선거당시 프랑지파니 가문과 피에를레오니 가문이 분열하여 각 별개의 교황 후보(프랑지파니에서는 람베르토 스칸나베키 추기경을, 피에를레오니 가문은 테오발도 보카페치 추기경을 지지)를 내놓으면서 추기경들 사이에서 불화가 고조된다. 그렇게 선거 3일차인 12월 15일에 테오발도 보카페치 추기경이 선출되어 첼레스티노2세로 명명하고 직위식이 거행되지만, 즉위식에 람베르토 추기경을 지지하는 세력들이 침입해서 람베르토를 교황으로 추대하면서 람베르토 추기경은 호노리오2세로 명명하고 즉위하게 된다. 테오발도 추기경의 지지자들은 이러한 폭력사태로 교황권을 찬탈한 호노리오2세를 인정할 수 없어 테오발도 추기경을 첼레스티노2세로서 계속 지지하지만 즉위식 당시 부상을 입은 대립교황* 첼레스티노2세는 1126년에 선종한다. 

*대립교황 첼레스티노2세(Antipope Caelestinus II, ?~1126, 재위1124)는 현재 로마 카톨릭에서 대립교황으로 간주한다. 

 

교황

I. 신성로마제국

비록 대립교황 첼레스티노2세와 지지지들이 권위를 포기하지 않고 호노리오2세와 대립하다가, 1126년 대립교황 첼레스티노2세가 선종하고 호노리오2세는 비로소 안정을 찾게되어 교황령 바깥 상황에 대한 정책을 펼칠 수 있게 된다. 1125년 신성로마황제 하인리히5세가 사망하고 새로이 로마왕으로 선출된 하인리히5세의 조카 로타르3세(Lothar III, 1075~1137, 로마왕재위1125~1137, 신성로마재위1133~1137)는 슈바벤 공작 콘라트3세(Konrad III, 1093~1152, 재위1138~1152)와 대립하던 인물이였는데, 두 로마왕이 대립하는 과정에서 결정을 내려야 했던 교황 호노리오2세는 슈바벤 공작 콘라트를 파문시키는 결과로 보이게 된다. 

 

II. 시칠리아

그러나 교황은 시칠리아 문제는 효율적으로 일처리를 하지 못했는데, 교황령 남부에 위치하던시칠리아 왕국은 교황령의 완충지대 역할을 하고 있었는데, 1127년 아풀리아 원정을 감행하던 로저(미래의 시칠리아 왕 로저2세)의 위험을 감지하여 국경지대인 아풀리아(Apuglia)지역 내 도시 영주들과 트로이 협정()을 통한 동맹을 맺고 1127년 12월, 로저를 파문한다. 그러나, 1128년 5월에 로저2세는 아풀리아 공국을 군사를 이끌고 쳐들어가 점령시켜버리고 이에 호노리오2세는 위협을 느끼고 로저2세와 타협하기 위해 로저2세에게 공식적인 작위들을 부여하고 영지를 하사하는 식으로 전투를 피하게 된다.  

 

III. 프랑스 루이6세

호노리오2세는 프랑스 카페왕조 왕 루이6세(Louis VI, 1081~1137, 재위1108~1137)와도 갈등했는데, 루이6세가 프랑스 내 성직자 주교들을 서임하는 서임권을 가지려고 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는데, 당시 베르나르 드 클레르보(Bernard de Clairvaux, 1090~1153)의 그레고리오 개혁(The Gregorian Reforms)에 영향을 받은 파리 교구 주교 에티엔 딩(Étienne Harding, 1060~1134)은 프랑스 왕권이 교회에 간섭을 하지 않게끔 하기위해 부던히 노력하지만 이러한 행위로 루이6세의 노여움을사서 에티엔 주교는 재산몰수와 함께 교회 개혁을 방해하기에 이른다. 루이6세는 에티엔 주교를 비롯한 개혁 세력들에게 여러 누명을 씌워 개혁대상을 제거하고자 하였고, 소식을 들은 교황 호노리오2세는 1125년, 힐데베르 드 라바르댕(Hildebert of Lavardin, 1055~1133)를 투르 대주교로 임명하면서 루이6세가 이에 반대하고 갈등을 일으키지만 1129년이 되어서 교황과 루이6세는 비로소 합의를 하게 되어 안정을찾게 된다.     

 

선종

호노리오2세는 예루살렘 왕 보두앵2세(Baudouin II, ?~1131, 재위1118~1131)를 성전 기사단을 이끄는 책임자로 지명하고 왕국을 최대한 보호하기위해 노력하지만 1130년 2월, 중병으로 앓아누운 다음 앓다가 2월 13일에 선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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