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명 : 라이네리우스(Ranierius)
160대 교황 파스칼2세(Paschalis PP. II, 1050~1118, 재위1099~1118)
| 전임 교황 | 당시 재직 교황 | 후임 교황 | |
| 직위 | 159대 교황 | 160대 교황 | 161대 교황 |
| 출신 | 프랑스, 샹파뉴 | 신성로마제국, 브레다 | 가에타 공국, 가에타 |
| 명칭 | 우르바노2세 Urbanus PP. II |
파스칼2세 Paschalis PP. II |
젤라시오2세 Gelasius PP. II |
| 생몰년도 | 1035.xx.xx ~ 1099.07.29 | 1050.xx.xx ~ 1118.01.21 | 1060.xx.xx ~ 1119.01.29 |
| 교황선거기간 | 4일 (1088.03.09~1088.03.12) |
5일 (1099.08.09~1099.08.13) |
4일 (1118.01.21~1118.01.24) |
| 재위 | 1088.03.12 ~ 1099.07.29 | 1099.08.13 ~ 1118.01.21 | 1118.01.24 ~ 1119.01.29 |

출생
1050년, 신성로마제국령 브레다(Breda)에서 아버지(미상)와 어머니(미상)사이에서 태어났다.
배경
160대 교황이다. 베네딕토회 출신으로 교황 우르바노2세의 후임 교황으로 선출되어 즉위하고 중세 교황들 중 재위기간이 긴 편인 19년(1099~1118)에 이르는 치세기간 동안 유럽의 군주들과 특히 신성로마황제 하인리히4세, 하인리히5세와 주교 서임권 문제로 갈등한다. 대체적으로 대화를 통해 서임권 문제를 해결해나가고자 했으나 신성로마황제와는 서로의 군대로 부딫히며 한차례 옥살이를 하기도 한다. 신성로마황제의 지원을 받는 3명의 대립교황 클레멘스3세와 테오도리크, 실베스테르4세와도 재위기간동안 내내 대립한다.
성직
끌루니(Cluny, 현 프랑스 부르고뉴-프랑슈콩테 주 도시) 베네딕토회 수도사 출신으로 1073년 교황 그레고리오7세(Gregorius PP. VII, 1020~1085, 재위1073~1085)가 교황으로 즉위할 때 사제급 추기경에 서임되면서 기록에 나온다. 이후 교황으로부터 카스티야 왕국 교황 특사로 임명되어 파견되기도 한다. 그레고리오7세 이후 빅토르3세의 후임교황이 되는 우르바노2세(Urbanus PP. II, 1035~1099, 재위1088~1099)대에 들어 우르바노2세가 주관한 클레르몽 공의회(The council of Clermont, 1095.11.17~1095.11.27)에도 참석하여 교황을 수행하기도 한다.
1099년 교황 선거
1099년 7월 29일, 교황 우르바노2세(Urbanus PP. II, 1035~1099, 재위1088~1099)가 선종하고 후임 교황을 선출할 선거가 소집되고 선거일이 8월 9일로 잡힌다. 우르바노2세는 제1차 십자군 원정을 일으키고 십자군이 예루살렘을 점령하는 소식을 듣고 2주만에 선종한다. 당시 교황 선거는 우르바노2세보다 이전 교황인 니콜라오2세(Nicholas PP. II, 990~1061, 재위1058~1061)가 칙서로 규정한 주교급 추기경만이 교황을 선출할 수 있는 마지막 선거가 되지만 다른 연구결과로는 사제급 추기경과 부제급 추기경들도 선거에 참석하였을 것이라고 하는 결과도 나타난다. 그렇게 5일간(1099.08.09~1099.08.13)의 선거로 마지막날인 8월 13일, 라이네리우스 추기경이 교황으로 선출되어 파스칼2세로 명명한다.
교황
I. 대립교황 축출
전임 교황 우르바노2세 이전부터 줄곧 교황들과 대립해온 대립교황 클레멘스3세(Antipope Clemens III, 1025~1100, 대립교황1080~1100)는 1098년 우르바노2세의 군에 의해 라벤나(Ravenna)로 도피하는데, 우르바노2세를 이어 교황으로 즉위한 파스칼2세는 대립교황 클레멘스3세를 뿌리뽑기 위해 군대를 이끌고 가서 라치오(Lazio)에서 완전히 축출하는데 성공한다. 신성로마황제 하인리히4세(Heinrich IV, 1050~1106, 로마왕재위1053~1105, 신성로마재위1056~1105)가 옹립한 대립교황 클레멘스3세는 완전히 축출되어 힘을 잃게 되자 신성로마황제로부터도 버림받고 1100년 9월 8일 도피해있던 라치오에서 사망한다. 대립교황 클레멘스3세가 사망하자 로마 원로원은 대립교황 클레멘스3세의 고문직을 맡던 테오도리크(Antipope Theodoric, ?~1102, 대립교황1100~1101)를 새로운 대립교황으로 선출시킨다. 새 대립교황 테오도리크는 파스칼2세가 잠시 로마에 부재할 때 로마에 입성하지만 이후 파스칼2세의 군대에 의해 체포되어 수도원에 갇히고 1102년에 사망한다. 로마 원로원은 이후로도 파스칼2세가 로마에 부재할 틈을 타서 이단 혐의를 씌워 멋대로 교황직에서 폐위시키고 1105년 11월 18일에 새 대립교황 실베스테르4세(Antipope Sylvester IV, ?~?, 대립교황1105~1111)로 선출시키지만 이후 대립교황은 1106년부터 1111년까지 5년간 알려진 행보가 없다가, 1111년 파스칼2세에게 항복한다.
II. 주교 서임권
1100년 8월 2일, 잉글랜드 왕이 되는 노르만 왕조 헨리1세(Henry I, 1068~1135, 노르망디재위1106~1135, 잉글랜드재위1100~1135)는 캔터베리 대주교 아오스타의 안셀름(Anselm of Aosta, 1033~1109가 가지고 있던 주교 서임권을 자신이 가지고자 하는데, 이에 헨리1세와 캔터베리 대주교는 교황 파스칼2세에게 서임권 논쟁을 해결하기위한 사절을 동시에 보내지만 교황 파스칼2세는 헨리1세의 서임권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헨리1세가 캔터베리 대주교 안셀름을 잉글랜드에서 추방시키고 교회 재산을 몰수하는 사건이 벌어지는데, 이후 마틸다* 왕비(Matilda of Scotland, 1080~1118)의 중재로 둘 사이에 1107년 8월에 캔터베리 대주교의 서임권 인정과 함께 왕에 충성서약을 하고 충성하겠다는 것으로서 합의가 이루어진다. 파스칼2세는 이후로도 프랑스 필리프1세(Philippe Ier, 1052~1108, 재위1060~1108)와도 서임권 문제를 마무리짓는등 원만하게 해결되는 듯 싶지만 신성로마황제들과는 해결이 나지 않는다. 특히 신성로마황제 하인리히4세(Heinrich IV, )와 하인리히5세()는 교황과의 합의에 도달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주교 서임권을 가져 주교를 임명하면서 교황은 계속해서 서임권 금지를 천명하며 하인리히5세를 파문시키기까지 하면서 황제 하인리히5세가 군대를 이끌고 로마로 진격해오면서 교황 파스칼2세가 제국군에 의해 잡혀버려 2개월가량 옥살이까지 하면서 황제 하인리히5세에게 서임권을 인정해줌으로서 옥에서 풀려난다. 그리고 1111년 4월 13일,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황제 대관식을 받고 이후 어떠한 군사 보복을 하지 않기로 합의한 후 신성로마제국으로 철수한다. 교회 내에서 이러한 황제의 행위를 규탄하고 강제로 주교 서임권을 승인받았기에 무효라고 선언하고 파스칼2세는 이러한 성직자들의 여론에 힘입어 황제 하인리히5세를 파문시킨다.
*헨리1세의 왕비 스코틀랜드의 마틸다(Matilda of Scotland, 1080~1118)와 마틸다 여왕(Matilda, 1102~1167, 재위1141)은 모녀지간이다.
선종
1118년 1월 21일, 68세의 나이로 선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