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명 : 기 드 부르고뉴(Gui de Bourgogne)
162대 교황 갈리스토2세(Callistus PP. II, 1060~1124, 재위1119~1124)
전임 교황 | 당시 재직 교황 | 후임 교황 | |
직위 | 161대 교황 | 162대 교황 | 163대 교황 |
출신 | 가에타 공국, 가에타 | 신성로마제국, 프랑슈콩테 | 신성로마제국, 피아냐노 |
명칭 | 젤라시오2세 Gelasius PP. II | 갈리스토2세 Callistus PP. II | 호노리오2세 Honorius PP. II |
생몰년도 | 1060.xx.xx ~ 1119.01.29 | 1060.xx.xx ~ 1124.12.13 | ? ~ 1130.02.13 |
교황선거기간 | 2일 (1118.01.23~1118.01.24) | 5일 (1119.01.29~1119.02.02) | 3일 (1124.12.13~1124.12.15) |
재위 | 1118.01.24 ~ 1119.01.29 | 1119.02.02 ~ 1124.12.13 | 1124.12.21 ~ 1130.02.13 |

출생
1060년, 신성로마제국 프랑슈콩테(Franche-Comté)에서 아버지 부르고뉴 백작 기욤1세(Guillaume Ier, 1020~1087, 재위1057~1078)와 어머니 에티에네트 드 부르고뉴(Étiennette de Bourgogne, ?~1088)사이에서 태어났다.
배경
162대 교황으로, 부르고뉴 백작 기욤1세의 넷째 아들이기도 한 기 드 부르고뉴는 성직 과정을거쳐 비엔 대주교, 프랑스 교황 특사를 거쳐 1119년 교황 젤라시오2세가 선종하면서 열린 교황 선거에서 교황으로 선출되는 인물이다. 즉위 이후 전임 교황 젤라시오2세때부터 마찰을 일으켜오던 신성로마황제 하인리히5세와 평화를 도모하는 협상을 거쳐 1122년 보름스 협약으로 교황과 황제의 서임권 기준을 세워 질서를 잡고 1123년 제1차 라테란 공의회를 소집시켜 이를 확실하게 승인시켜 선포하게끔 한다.
성직
부르고뉴 백작 기욤1세(Guillaume Ier, 1020~1087, 재위1057~1078)의 아들로 기욤1세가 자녀들을 성직 또는 정치가로 만들면서 기는 1088년 교황 우르바노2세(Urbanus PP. II, 1035~1099, 재위1088~1099)로부터 비엔 대주교가 되었다는 기록부터가 공식적인 성직기록의 시작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이후로도 교황 파스칼2세(Paschalis PP. II, 1050~1118, 재위1099~1118)로부터 프랑스 교황 특사로 임명되고 프랑스 왕 필리프1세(Philippe Ier, 1052~1108, 재위1060~1108)의 왕정에 머무르면서 중재자로서 임무를 다한다.
1119년 교황 선거
1119년 1월 29일, 교황 젤라시오2세(Gelasius PP. II, 1060~1119, 재위1118~1119)가 선종하면서 교황 선거가 소집된다. 전임 교황 젤라시오2세는 대립교황 그레고리오8세(Antipope Gregorio VIII, ?~1137, 대립교황1118~1121)가 로마를 점령해버려 프랑스 클뤼니에서 머물다가 이곳에서 선종해버리면서 교황 선거 장소도 클뤼니()에서 치뤄지게 된다. 12세기 교황 선거들중 추기경 선거인단수가11명에 불과한 규모로 치뤄졌는데 이는 로마에 고립된 추기경들이 미처 참석하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 추기경들간 후임 교황 선출의견이 모두 달랐고 당시 혼란으로 인해 빠르게 교황을 선출하자는 여론이 모아져 기 드 부르고뉴 추기경이 교황으로 선출된다. 교황명은 갈리스토2세로 명명되고 즉위하게 된다.
교황
I. 보름스 협약
새로이 즉위하게된 교황 갈리스토2세는 전임 교황 젤라시오2세때부터 부딫히던 대립교황 그레고리오8세와 한편이였던 신성로마황제 하인리히5세(Heinrich V, 1086~1125, 로마왕1099~1125, 신성로마황제1111~1125)와 평화를 도모하는 협상을 시도하게 되고 하인리히5세도 이에 화답하여 스트라스부르(Strasbourg)에서 교황 사절단을 맞이하여 로마를 점령한 대립교황 그레고리오8세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로마 교황과 화해하게 된다. 그들은 화해 이후로도 수차례 더 만나 협상을 거쳐 1122년에 보름스 협약(The Concordat of Worms, 1122)를 체결하면서 사실상 신성로마황제는 세속적 권력에 대한 서임권을 행사하고 교황은 영적 권력에 대한 서임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규정이 선포되면서 일단락되지만 이후 하인리히5세와 후임 황제가 되는 로타르3세는 보름스협약을 교묘하게 지키지 않다가 이후로는 아예 무시하는 상황이 되어버리며 다시 교황과 대립하게 된다.
II. 제1차 라테란 공의회
교황 갈리스토2세는 1123년 3월 18일, 하인리히5세와 체결된 보름스 협약 이행을 확정짓기 위해 제1차 라테란 공의회를 소집한다. 모두 합쳐 1천여명에 가까운 성직자들이 로마 라테란 궁에 모여 교황이 직접 주재함으로서 보름스 협약 이행 승인뿐만아니라 성직자들의 불법적 행위 금지와 교회 내 법령을 세우고 규정화하는데 힘을 썼다.
선종
1124년 12월 13일, 교황 갈리스토2세는 64세의 나이로 선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