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명 : 조반니 카에타니(Giovanni Caetani)
161대 교황 젤라시오2세(Gelasius PP. II, 1060~1119, 재위1118~1119)
| 전임 교황 | 당시 재직 교황 | 후임 교황 | |
| 직위 | 160대 교황 | 161대 교황 | 162대 교황 |
| 출신 | 신성로마제국, 비에다 | 가에타 공국, 가에타 | 신성로마제국, 프랑슈콩테 |
| 명칭 | 파스칼2세 Paschalis PP. II |
젤라시오2세 Gelasius PP. II |
갈리스토2세 Callistus PP. II |
| 생몰년도 | 1050.xx.xx ~ 1118.01.21 | 1060.xx.xx ~ 1119.01.29 | 1060.xx.xx ~ 1124.12.13 |
| 교황선거기간 | 5일 (1099.08.10~1099.08.14) |
2일 (1118.01.23~1118.01.24) |
5일 (1119.01.29~1119.02.02) |
| 재위 | 1099.08.13 ~ 1118.01.21 | 1118.01.24 ~ 1119.01.29 | 1119.02.02 ~ 1124.12.13 |

출생
1060년, 가에타 공국 가에타(Gaeta)에서 아버지(미상)와 어머니(미상)사이에서 태어났다.
배경
161대 교황으로, 교황 선거 당시 신성로마황제를 지지하던 프랑지파니 세력에 의해 붙잡혀 감금되기까지 하지만 로마 시민들의 강력한 반대와 함께 풀려나지만 이후로 신성로마황제 하인리히5세와 서임권을 두고 대립하면서 황제가 군대를 이끌고 로마로 와서 대립교황 그레고리오8세까지 옹립시켜 대립시킴에 따라 교황령 내 혼란이 가중된다.
성직
베네딕토회 수도사 출신으로 라틴어에 해박한 지식을 가졌고, 수련 과정을 마친 뒤 교황 그레고리오7세(Gregorius PP. VII, 1020~1085, 재위1073~1085)로부터 지식을 높게 평가 받아 교황 아래에서 일하게 되고, 1082년에 부제급 추기경에 서임되기까지 한다. 이후로는 1089년 교황 우르바노2세(Urbanus PP. II, 1035~1099, 재위1088~1099)로부터 교황청 상서원장(교황 칙서등 문서 발급과 보관, 관리역할 책무)에 임명되면서 교황 우르바노2세와 파스칼2세 치세동안 교황령 내 행정을 개혁하여 직무를 수행하게 된다.
1118년 교황 선거
1118년 1월 21일, 교황 파스칼2세(Paschalis PP. II, 1050~1118, 재위1099~1118)가 선종함에 따라 교황 선거가 소집된다. 추기경 선거인단들 사이에서 교황과 신성로마황제 지지자들간에 교황과 황제의 서임권 논란으로 인해 분열되어있던 상태였는데, 갈등이 고조되던 시기라 추기경들까지 위협받게 되면서 교황 선거가 소집되었을 시기에는 베네딕토회 수도원 산타 마리아(Santa Maria)로 피신하여 이곳에서 교황 선거를 치르게 된다. 41명의 추기경 선거인단 중 5명이 불참한 36명의 추기경 선거인단이 참석하여 부제급 추기경 조반니 가에타니가 교황으로 선출된다. 그러나 젤라시오2세는 교황으로 선출된지 몇분도 채 되지 않은 상태에서 황제를 지지하던 프랑지파니 첸시오2세(Cencio II Frangipane, ?~?)에게 공격을 받고 체포되어 투옥되었다가 도망쳐 나온다.
교황
교황으로 선출된 젤라시오2세가 프랑지파니 파에 의해 체포되어 감금되는 사태가 일어나고 로마 시민들이 이러한 소식을 접하고 반발하여 봉기를 일으켜 로마의 여론을 무시할 수 없었던 프랑지파니 측은 교황 젤라시오2세와 추기경단들을 석방시킬 수 밖에 없어 젤라시오2세는 풀려난다. 풀려난 직후 젤라시오2세는 전임 교황 파스칼2세(Paschalis PP. II, 1050~1118, 재위1099~1118)로부터 서임권을 강탈한 신성로마황제 하인리히5세(Heinrich V, 1086~1125, 로마왕재위1099~1125, 신성로마재위1111~1125)가 파스칼2세로부터 파문당한 이후 행사할 수 없던 서임권을 젤라시오2세에게 다시 요구하지만 거절당하고 분노한 하인리히5세가 군대를 동원해 젤라시오2세를 로마에서 추방하고 교황 선출을 무효라고 선언하고 대립교황 그레고리오8세(Antipope Gregorio VIII, ?~1137, 대립교황1118~1121)를 추대하여 옹립시키기에 이른다. 그렇게 피신할 수 밖에 없던 젤라시오2세는 고향 가에타(Gaeta)로 가서 신성로마황제 하인리히5세와 대립교황 그레고리오8세를 파문시키고 1119년 여름에 겨우 로마로 귀환하지만 프랑지파니 세력이 미사를 집전하던 교황 젤라시오2세를 습격하게 되면서 다시 로마를 빠져나와 피신을 갈 수 밖에 없었다.
선종
1119년 1월 21일, 서임권 논쟁문제를 해결할 공의회 소집 준비를 하다가 선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