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교황/101대~200대 교황

인노첸시오2세

Mintaka5 2025. 6. 25.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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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그레고리오 파파레스키(Gregorio Papareschi)

164대 교황 인노첸시오2세(Innocentius PP. II, ?~1143, 재위1130~1143)

  전임 교황 당시 재직 교황 후임 교황
직위 163대 교황 164대 교황 165대 교황
출신 신성로마제국, 피아냐노 교황령, 로마 교황령, 치타디카스텔로
명칭 호노리오2세
Honorius PP. II
인노첸시오2세
Innocentius PP. II
첼레스티노2세
Caelestinus PP. II
생몰년도 ? ~ 1130.02.13 ? ~ 1143.09.24 ? ~ 1144.03.08
교황선거기간 3일
(1124.12.13~1124.12.15)
2일
(1130.02.13~1130.02.14)
3일
(1143.09.24~1143.09.26)
재위 1124.12.21 ~ 1130.02.13 1130.02.14 ~ 1143.09.24 1143.09.26 ~ 1144.03.08

164대 교황 인노첸시오2세 초상화
인노첸시오2세, 출처-위키피디아

출생

출생년도 미상이며, 교황령 로마(Roma)에서 아버지(미상)와 어머니(미상)사이에서 태어났다.

 

배경

164대 교황으로, 교황 선거 직후 1122년 보름스 협약 미준수와 추기경들간의 의견 불화등으로 반대파 추기경들이 대립교황 아나클레토2세를 선출시켜버리면서 즉위와 동시에 대립교황과 마찰을 일으킨다. 그러나 로마 민심조차 대립교황에게 가있었기에 인노첸시오2세는 로마를 떠나 프랑스, 신성로마제국등을 다니며 합법 교황임을 인정받기위해 수년간 움직이고 신성로마황제 로타르3세와 합이 잘 맞게 되어 이후1138년 대립교황 아나클레토2세가 사망하고 후임 대립교황이 되는 빅토르3세가 즉위 2개월만에 인노첸시오2세에게 항복하면서 1139년 제2차 라테란 공의회를 통해 여지껏 자신에게 방해가 되어온 시칠리아 왕 로저2세를 파문시키고 교회를 안정시킨다. 이후 프랑스 왕 루이7세와 부르주 대주교 임명권 문제를 두고 대립하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1143년 9월 선종한다.   

 

성직

중세부터 유력한 귀족가문인 귀도 가문 출신으로, 어린 시절부터 엄격한 종교 교육을 받고 어린나이에 수도원장에 오르기도 하지만 기록이 갈린다. 확실한 등장은 1116년 5월 24일, 교황 파스칼2세(Paschalis PP. II, 1050~1118, 재위1099~1118)로부터 부제급 추기경에 임명되면서 본격 등장하게 된다. 파스칼2세의 후임 교황으로 즉위하는 젤라시오2세(Gelasius PP. II, 1060~1119, 재위1118~1119)의 수행 비서를 맡기도 하고, 1119년 미래의 교황 호노리오2세가 되는 람베르토 스칸나베키(Lamberto Scannabecchi)추기경과 함께 신성로마제국에 파견되어 황제 하인리히5세(Heinrich V, 1086~1125, 로마왕재위1099~1125, 신성로마황제1111~1125)와 1122년 보름스 협약(The concordat of Worms, 1122)을 체결하는 과정에도 직접 관여를 한 인물이기도 하다.   

 

1130년 교황 선거

1130년 2월 13일, 교황 호노리오2세(Honorius PP. II, ?~1130, 재위1124~1130)가 선종하면서 교황 선거가 소집된다. 전임 교황 호노리오2세때도 지속된 로마 내 귀족가문들과의 갈등이 지속되었고, 신성로마제국과는 보름스 협약(The concordat of Worms, 1122)으로 마무리되었던 분쟁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교황청 정책이 보름스 협약에서 의결된 원칙을 포기한 것으로 간주되어 나이든 추기경들 사이에서부터 분열이 가기 시작하다가 1130년 교황 선거에서 제대로 터지는데, 그레고리오 파파레스키 추기경이 선거 이틀째인 1130년 2월 14일 선출되어 인노첸시오2세로 명명되지만, 추기경들중 으뜸인 아이메리 드 라 샤트르(Aymery de la Châtre, ?~1141)가 이끄는 추기경단들이 선거 결과에 불복하고 그레고리오 추기경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따로 선거를 실시해(산마르코 교회) 피에트로 피에르레오니(Pietro Pierleoni)추기경을 선출시키고 아나클레토2세(Antipope Anacleto II, ?~1138, 대립교황재위1130~1138)로 명명짓는다.

 

교황

I. 즉위 직후 혼란상황과 대립교황 아나클레토2세

인노첸시오2세는 선출 순간부터 대립교황 아나클레토2세가 등장해버리면서 교황청 내부에서는 극심한 분열이 일어나게 되며 대립교황 아나클레토2세의 세력또한 만만치 않았기에, 아나클레토2세의 지지자들은 로마를 장악할만큼 많았기 때문에 로마에서 교황 지위를 유지하기어려웠고 인노첸시오2세는 사비나 주교 콘라트(미래의 168대 교황 아나스타시오4세)에게 교황 대리직을 맡기고 자신을 따르는 세력들과 함께 프랑스로 피신한다. 프랑스에서는 프랑스 왕 루이6세(Louis VI, 1081~1137, 재위1108~1137)왕정으로부터 보호를 받고, 신성로마제국에서는 로마왕 로타르3세(Lothar III, 1075~1137, 로마왕재위1125~1137, 신성로마황제1133~1137)의 지원과 마그데부르크 대주교, 잘츠부르크 대주교등에게 지원을받아  이후 뷔르츠부르크(Würzburg), 에땀프(Étampes)에서 열린 주교 시노드에서 합법 교황으로 인정되며, 1132년 피아첸차에서 소집한 공의회에서 이탈리아 반도 내 주교, 영주들로부터 합법적 교황으로 인정받게 된다. 1132년 8월, 로마왕 로타르3세는 적법 교황 인노첸시오2세로부터 황제 대관식을 치르고, 시칠리아 왕 로저2세(Roger II, 1095~1154, 재위1130~1154)가 대립교황 아나클레토2세로부터 정식 인정을 받은 것에 대한 대항을 위해 이탈리아 반도로 원정을 떠나서 이들을 평정하고 1133년 6월 교황 인노첸시오2세로부터 로마에서 신성로마황제에 대한 대관식을 가지게 된다. 

 

II. 대립교황 폐위

교황 인노첸시오2세는 1137년, 자신의 우군이였던 신성로마황제 로타르3세와 함께 군대를 집결시켜 시칠리아 왕 로저2세를 공격하여 쫓아내고 시칠리아 왕국 수도 멜피(Melfi)를 점령한 뒤 공의회를 연다. 인노첸시오2세는 공의회에서 우선적으로 대립교황 아나클레토2세를 폐위시키고, 그의 지지자들을 파문시킨다. 이 공의회는 우선적인 조치에 불과하였고, 1138년 1월 25일에 대립교황 아나클레토2세가 사망하면서 새로운 대립교황이 되는 그레고리오 데이 콘티(Gregorio dei Conti) 추기경을 빅토르3세(Antipope Victor III, ?~1139, 대립교황재위1138)로 즉위시지만 빅토르3세는 즉위한지 2개월만에 교황 인노첸시오2세에게 직접 찾아가 항복하면서 인노첸시오2세에게 상황을 마무리지을 기회가 생기게 된다. 그렇게 인노첸시오2세는 이듬해 1139년 제2차 라테란 공의회()를 열어 불법적인 대립으로 인한 교회의 혼란과 이러한 원인이 시칠리아 왕 로저2세에게 있음을 선포하고 그를 파문시키기에 이른다. 

 

III. 프랑스 왕 루이7세와 부르주 대주교

1141년, 부르주 대주교 알베릭 드 랭스(Alberic de Reims, 1085~1141)가 선종하면서 공석이 된다. 당시 프랑스 왕인 루이7세(Louis VII, 1120~1180, 재위1137~1180)는 자신이 직접 대주교를 지명하고자 했지만 교황 인노첸시오2세는 지명을 거부하고 교황 자신이 직접 피에르 드 라 샤트르(Pierre de la Châtre, ?~1171)를 임명시켜버린다. 루이7세는 이에 분노하여 교황으로부터 부르주 대주교로 임명된 피에르드 라 샤트르를 입국을 거부 시켜버리면서 교황 인노첸시오2세와 프랑스 왕 루이7세와 갈등이 일어나게 된다. 교황은 루이6세를 파문시키고 이 분쟁은 교황 인노첸시오2세가 1143년 선종하기전까지 지속된다.

 

선종

인노첸시오2세는 1143년 9월 24일, 선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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