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명 : 우발도 알루친골리(Ubaldo Allucingoli)
171대 교황 루치오3세(Lucius PP. III, 1100~1185, 재위1181~1185)
| 전임 교황 | 당시 재직 교황 | 후임 교황 | |
| 직위 | 170대 교황 | 171대 교황 | 172대 교황 |
| 출신 | 신성로마제국, 시에나 | 신성로마제국, 루카 | 신성로마제국, 밀라노 |
| 명칭 | 알렉산데르3세 Alexander PP. III |
루치오3세 Lucius PP. III |
우르바노3세 Urbanus PP. III |
| 생몰년도 | 1105.xx.xx ~ 1181.08.30 | 1097/1105 ~ 1185.11.25 | 1120.xx.xx ~ 1187.10.20 |
| 교황선거기간 | 4일 (1159.09.04~1159.09.07) |
1일 (1181.09.01) |
1일 (1185.11.25) |
| 재위 | 1159.09.07 ~ 1181.08.30 | 1181.09.01 ~ 1185.11.25 | 1185.11.25 ~ 1187.10.20 |

출생
1097/1105년에, 신성로마제국 루카(Lucka)에서 아버지 올란도 알루친골리(Orlando Allucingoli, ?~?)와 어머니(미상)사이에서 태어났다.
배경
171대 교황으로, 시토회 수도사를 거쳐 1138년 교황 인노첸시오2세로부터 부제급 추기경에 서임된 이후 6명의 교황들을 보필하면서 교황 특사로서 중재를 하러다니고 이후 1181년 알렉산데르3세 선종으로 열린 교황선거에서 교황으로 선출된 후 교황령-신성로마제국간 토스카나 지역 영토분쟁문제를 두고 긴장관계를 풀기위해 여러차례 협상을 벌이지만 모두 무위로 돌아가버리고, 1185년 예루살렘 왕 보두앵4세의 요청으로 제3차 십자군 원정을 준비하고 거의 준비가 끝날 무렵 선종한다.
성직
어린시절에 대한 기록은 전무하며, 시토회 수도사였던 것에서부터 내용이 시작되어서 1138년 164대 교황인 인노첸시오2세(Innocentius PP. II, ?~1143, 재위1130~1143)로부터 부제급 추기경에 서임되면서부터 자주 등장하게 된다. 뛰어난 외교력 덕분에 1141년 5월 사제급 추기경(추기경품계:주교급 추기경>사제급 추기경>부제급 추기경)으로 승품되고, 1156년 169대 교황 하드리아노4세(Hadrianus PP. IV, 1100~1159, 재위1154~1159)의 교황 특사로서 영토문제로 교황과 대립하던 시칠리아 왕 굴리엘모1세(Guglielmo I di Sicilia, 1120~1166, 재위1154~1166, 영어식 이름 윌리엄1세)와의 협상건을 위해 베네벤토(Benevento)로 가서 조약에 서명하고 사실상 굴리엘모1세를 적법 시칠리아 왕으로 인정한다. 이러한 공으로 우발도 알루친골리 추기경은 1159년 교황으로부터 주교급 추기경으로 승품되며 이후 후임교황이 되는 알렉산데르3세(Alexander PP. III, 1105~1181, 재위1159~1181)치세때 사실상 추기경단 수장으로서 교황령 내에서 교황 다음으로 막강한 권한을 가지게 되는 인물이 된다. 추기경에 서임된 이후 총7차례의 교황 선거에 참석하여 투표권을 행사한다.
1181년 교황 선거
1181년 8월 30일, 교황 알렉산데르3세(Alexander PP. III, 1105~1181, 재위1159~1181)가 선종하면서 교황 선거가 소집된다. 교황령 로마(Roma)에서 열린 교황 선거는 1179년 제3차 라테란 공의회(The third council of the Lateran, 1179)에서 공포된 교령에 따라 교황 선출시 추기경 선거인단의 2/3이상의 표를 얻어야 선출된다는 규정을 통해 선출하는 최초의 교황 선거이다. 1178년까지 알렉산데르3세와 대립하던 대립교황 빅토르4세()와 호엔슈타우펜가 신성로마황제 프리드리히1세 바르바로사(Friedrich I Barbarossa, 1122~1190, 재위1155~1190), 시칠리아 왕 윌리엄1세()등 추기경들의 지지가 갈리면서 추기경중 누구도 2/3이상 득표를 할 수 없었으나, 대립교황 빅토르4세의 후계자였던 갈리스토3세()가 알렉산데르3세에게 항복하면서 1179년 제3차 라테란 공의회로 선거 규정을 정하기에 이른 것이다. 총27명의 추기경 선거인단중 8명이 불참한 19명이 교황 선거에 참석하였고 1181년 9월 1일, 우발도 알루친골리 추기경이 교황으로 선출된다. 교황명은 루치오(Lucius)로 명명되었고, 루치오3세로서 즉위하게 된다.
교황
75세가 넘는 고령에 교황으로 선출된 루치오3세는 교황으로 선출된 이후 토스카나 마틸다 백작부인(카노사의 마틸다, Matilde di Canossa, 1046~1115)이 소유하고 있던 토스카나 영토가 교황령과 신성로마제국간의 경계지역에 위치해있던 만큼 신성로마황제 프리드리히1세 바르바로사(Friedrich I Barbarossa, 1122~1190, 재위1155~1190)와 대립하게 되는데, 이 영토분쟁은 1177년 베네치아 평화조약이후로도 계속해서 분쟁이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는데, 끝도없는 분쟁으로 인해 신성로마황제가 먼저 1182년에 신성로마제국 수입의 2할을 받는 대가로 토스카나 영토 권리주장을 포기하라고 제안하지만 루치오3세는 타협안에 동의하지 않고, 이후로도 계속된 논의를 통해서도 합당한 결론이 나지 않게되면서 분쟁이 후임 교황에들어서도 지속된다.
선종
1185년, 예루살렘 왕국 왕 보두앵4세(Baudouin IV, 1161~1185, 재위1174~1185)의 이슬람 국가들로부터의 위협을 막아달라고 교황에게 호소하면서 제3차 십자군 원정(The third Crusade, 1189~1192)을 준비하던 루치오3세는 막 준비가 끝날 시점인 1185년 11월 25일에 선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