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교황/101대~200대 교황

하드리아노4세

Mintaka5 2025. 6. 21.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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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니콜라스 브레이크스피어(Nicholas Breakspear)

169대 교황 하드리아노4세(Hadrianus PP. IV, 1100~1159, 재위1154~1159)

  전임 교황 당시 재직 교황 후임 교황
직위 168대 교황 169대 교황 170대 교황
출신 교황령, 로마 잉글랜드 왕국, 하트퍼드셔 신성로마제국, 시에나
명칭 아나스타시오4세
Anastasius PP. IV
하드리아노4세
Hadrianus PP. IV
알렉산데르3세
Alexander PP. III
생몰년도 1073.xx.xx ~ 1154.12.03 1100.xx.xx ~ 1159.09.01 1105.xx.xx ~ 1181.08.30
교황선거기간 1일
(1153.07.08)
1일
(1154.12.04)
4일
(1159.09.04~1159.09.07)
재위 1153.07.08 ~ 1154.12.03 1154.12.04 ~ 1159.09.01 1159.09.07 ~ 1181.08.30

169대 교황 하드리아노4세 초상화
하드리아노4세, 출처-위키피디아

출생

1100년, 잉글랜드 왕국 하트퍼드셔(Hertfordshire)에서 아버지(로버트)와 어머니(미상)사이에서 태어났다.

 

배경

169대 교황이자 교회 역사상 최초의 잉글랜드 출신 교황으로, 수도원장까지 지내면서도 강력한 개혁의지와 특유의 금욕주의와 타협없는 성미로 인해 그 소문이 교황이 있는 로마로까지 퍼지게 되는데, 이런 행동을 오히려 교황 에우제니오3세는 니콜라스를 높게 평가하여 1146년 추기경에 서임시키기까지 한다. 이후 스칸디나비아 반도(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교황 특사를 지내고 1155년 교황 아나스타시오4세가 선종하면서 열린 교황 선거에서 교황으로 선출된다. 교황으로 선출되자마자 로마 공화국을 이끌던 개혁가이자 선동가 아르날도 다 브레시아와 갈등을 맺으나, 원로원에서 추방시키고 아르날도가 로마왕 프리드리히1세 바르바로사와 동맹을 맺지만 아르날도는 오히려 프리드리히의 제국군에 체포되어 교황청에 넘겨짐에 따라 재판을 받고 화형에 처해진다. 이후로도 신성로마황제 대관을 받은 프리드리히1세 바르바로사 황제와 대립하고 파문시키려던 찰나에 선종한다.      

 

성직

잉글랜드 출신 교황으로, 잉글랜드 동부 허트포드셔 세인트올번스(St. Albans)에 있는 수도원이 설립한 학교에서 기초교육을 받고 수도사가 되었는데, 니콜라스는 수도사시절 수도원장이 니콜라스의 학자로서의 능력을 알아보고 수도원에서 수련도 중요하지만 공부를 계속하여 길을 찾는 방법을 인도해주며 수도원에서 나오게 되었고, 프랑스로 유학을 가는데 프랑스 남부 아비뇽(Avignon)근처 성 루푸스 수도회에 들어가서 수련을 거치고 1137년에는 수도원장으로 선출되기도 한다. 수도원장이 된 이후에는 타협없는 금욕주의로 인한 수도원 내 불만과 비난이 퍼져 교황이 있는 로마에까지 퍼지는데, 당시 교황 에우제니오3세(Eugenius PP. III, ?~1153, 재위1145~1153)에게는 오히려 수도원장으로서의 결단에 호의를 보여 교황의 눈에 띠게 된다. 1146년 교황 에우제니오3세는 니콜라스를 주교급 추기경으로 서임시키고 1152년부터는 스칸디나비아 반도 국가인 노르웨이와 스웨덴, 덴마크에 교황 특사로 파견되어 2년간 임무를 수행한다. 1154년 로마로 복귀 후 에우제니오3세의 후임교황이 되는 아나스타시오4세의 영접을 받는데 고령의 아나스타시오4세는 그해 12월 선종한다.  

 

1154년 교황 선거

1154년 12월 3일, 교황 아나스타시오4세(Anastasius PP. IV, 1073~1154, 재위1153~1154)가 즉위 1년만에 81세의 나이로 선종함에 따라 교황 선거가 소집된다. 아나스타시오4세가 선종한 다음날인 12월 4일 교황선거를 위해 교황령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선거가 치뤄지면서 추기경들이 모인다. 30명의 추기경 선거인단 중 5명이 불참한 25명의 추기경이 참석하여 북유럽 스칸디나비아 특사를 지낸 잉글랜드 출신 추기경 니콜라스 브레이크스피어 추기경이 12월 4일 선거 당일 만장일치로 교황으로 선출되고 하드리아노(Hadrianus)라는 교황명과 함께 즉위한다. 

 

교황

I. 아르날도 다 브레시아

그러나 새로운 교황의 선출을 반기지 않은 세력이 존재했는데, 브레시아 수도원장이자 카톨릭을 비판해오던 선동가 아르날도 다 브레시아(Arnaldo da Brescia, 1090~1155)가 이끄는 로마 공화국은 폭동을 일으켜 난리를 피우면서 하드리아노4세는 성 베드로 대성당에 바리케이트를 설치하고 교황이 파문을 선언하면서 아르날도는 로마 시민들로부터 민심을 잃고, 원로원에서 아르날도를 추방시키게 되며 교황 하드리아노4세는 아르날도에게 선포한 파문을 해제하며 사건을 일단락짓게 되지만 아르날도는 추방당한 후 교황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호엔슈타우펜가 로마왕 프리드리히1세 바르바로사(미래의 신성로마황제 프리드리히1세 바르바로사)와 동맹을 맺지만 황제 즉위식을 로마에서 치뤄야 정식 황제가 될 수 있었던 프리드리히1세는 무리수를 던지기 어려웠고 아르날도는 제국군에 체포되어 교황 하드리아노4세에게 넘겨지게 되면서 반역자 죄목이씌인채로 재판을 받고 1155년 6월 화형에 처해지게 된다.  

 

II. 프리드리히1세 바르바로사

로마왕 프리드리히1세 바르바로사는 1155년 6월 18일, 로마에서 교황 하드리아노4세로부터 신성로마황제 대관을 받지만 아르날도의 화형과 함께 치뤄진 대관식으로 인해 로마 시민들의 반발로 황제 프리드리히1세는 안전을 위해 교황 하드리아노4세와 추기경들을 데리고 로마를 빠져나와 오르비에토(Orvieto)에 머물렀다가 황제 프리드리히1세는 다시 신성로마제국으로 돌아가지만 1157년, 교황 특사로부터 서한을 받은 프리드리히1세는 서한의 내용이 황제는 교황의 지배를 받는다는 암시성 문구에 격분하고 1158년 황제가 직접 로마로 내려가서 따진다. 

 

선종

이러한 오해적 상황에 교황 하드리아노4세는 설명을 통해 프리드리히1세를 설득하지만 황제는 교황의 말을 듣지 않고, 그러한 황제의 태도에 분노한 교황 하드리아노4세는 프리드리히1세 황제를 파문하려고 하던 참인 1159년 9월1일, 갑작스럽게 선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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