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교황/101대~200대 교황

클레멘스3세

Mintaka5 2025. 6. 17.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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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파울리노 스콜라리(Paulino Scolari)

174대 교황 클레멘스3세(Clemens PP. III, ?~1191, 재위1187~1191)

  전임 교황 당시 재직 교황 후임 교황
직위 173대 교황 174대 교황 175대 교황
출신 교황령, 베네벤토 교황령, 로마 교황령, 로마
명칭 그레고리오8세
Gregorius PP. VIII
클레멘스3세
Clemens PP. III
첼레스티노3세
Caelestinus PP. III
생몰년도 1100.xx.xx ~ 1187.12.17 ? ~ 1191.03.20 1105.xx.xx ~ 1198.01.08
교황선거기간 1일
(1187.10.21)
1일
(1187.12.19)
10일
(1191.03.21~1191.03.30)
재위 1187.10.21 ~ 1187.12.17 1187.12.19 ~ 1191.03.27 1191.03.30 ~ 1198.01.08

174대 교황 클레멘스3세 초상화
클레멘스3세, 출처-위키피디아

출생

출생년도 미상이며, 교황령 로마(Roma)에서 아버지(미상)와 어머니(미상)사이에서 태어났다. 

 

배경

174대 교황으로, 전임 교황 그레고리오8세가 즉위한지 2개월도 채 되지 않았을 때 선종하여 교황에 선출된 인물이다. 오랜기간 사이가 좋지 않았던 교황과 로마 시민들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정치적 안정을 도모시키기 위해 클레멘스3세는 로마 시민들이 직접 집정관(행정관)을 선출할 수 있는 권한을 주어 기존에 교황이 임명하여 위임통치 하게하던 총독의 독주를 막고 시민들과의 문제가 발생했을 시 집정관이 문제에 개입하여 총독과 조율을 하거나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시켜 충족시키게끔 한다. 그렇게 피사에서 선출되어 머물던 교황 클레멘스3세는 1188년 로마로 다시 돌아올 수있게 되며 돌아오자마자 십자군 원정을 선포하여 꾸려 각국 군주들을 독려해 출정시키지만 결과적으로는 실패로 끝난 제3차 십자군 원정이 되며 클레멘스3세는 십자군이 한창 진행중이던 1191년 3월 27일 선종한다.   

 

성직

어린시절, 수도참사회원들로부터 성직 교육을 받아 성직자가 되었다고 전해지며 대학교에서 학업진행과정을 어떻게 했는지 알려진 바가 없고, 1176년 3월 3일자 문서에 로마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 수석 사제로 기록되어있는 것이 있다. 3년뒤 1179년, 교황 알렉산데르3세(Alexander PP. III, 1105~1181, 재위1159~1181)로부터 부제급 추기경에 서임되고 교황으로 즉위하는 1187년까지 8년간 추기경으로 재임하는 동안 4회에 달하는 교황 선거에 참석하기도 한다. 

 

1187년 12월 교황 선거

교황 그레고리오8세(Gregorius PP. VIII, ?~1187, 재위1187)가 즉위한지 2개월도 채 되지 않은 채 1187년 12월 17일에 열병으로 인해 선종하면서 교황 선출 선거가 소집된다. 그레고리오8세가 피사()에서 선종하였기에 교황 선출 선거는 피사 공화국 내 피사 대성당에서 소집되었고, 12월 19일에 첫 소집과 더불어 추기경들은 만장일치로 파울리노 스콜라리 추기경을 교황으로 선출한다. 교황명은 '클레멘스(Clemens)'로 명명되고 클레멘스3세로 즉위하게 된다. 

 

교황

I. 로마로 복귀할 준비와 화해시도

클레멘스3세는 즉위 이후, 전임 교황 그레고리오8세가 분쟁을 겪던 피사 공화국과 제노바를 중재하여 화해시키기위해 피사로 갔다가 선종한 뒤 로마 내 혼란을 막고 로마인들에게 안정을 도모시켜주기 위해 교황 특사를 로마로 파견시켜 교황청 내 성직자들에게 교황의 직무 선서를 받드는 명령과 함께 교황령 내 행정을 도맡은 부제들에게도 직무에 대한 지침을 하달하여 로마로 돌아가기위한 준비를 서두른다. 이듬해 초인 1188년 2월 11일, 클레멘스3세는 로마로 복귀하여 라테란 대성당에 거주하면서 직무를 수행하게 된다. 특히 로마 시민들과 교황청간의 장기간 불화를 수습하기 위해 클레멘스3세는 로마 시민들에게 직접 집정관(행정관)을 선거를 통해 선출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기존에 교황이 임명하는 총독 직위의 독주를 경계하게끔 하여 문제가 발생할 때 마다 대화를 통한 협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했다.

 

II. 제3차 십자군 원정

클레멘스3세는 1187년 10월 29일, 교황 칙서 'Audita tremendi'를 통해 이슬람세력에 의해 예루살렘을 함락당한 것이 전 유럽의 카톨릭교도들의 죄라고 해석하고 성지(예루살렘)를 탈환할 새로운 십자군 원정을 선포한다. 제3차 십자군 원정(The third Crusade, 1189.05.11~1192.09.02)에 신성로마황제 프리드리히1세 바르바로사(Friedrich I Barbarossa, 1122~1190, 재위1155~1190)와 잉글랜드 왕 헨리2세(Henry II, 1133~1189, 재위1154~1189)와 그의 아들 '사자왕' 리처드1세(Richard I, 1157~1199, 재위1189~1199), 프랑스 왕 필리프2세 아우구스트(Philippe II Auguste, 1165~1223, 재위1180~1223)등을 십자군에 참여하도록 부추겨 이슬람 국가인 아이유브 술탄국을 창업한 살라딘(Saladin, 1137~1193, 재위1174~1193)을 무찌르러 출정한다. 그러나 잉글랜드 왕 헨리2세가 1189년 7월 6일 사망하여 아들 리처드가 리처드1세로서 출정하게 되고, 프리드리히1세 바르바로사 황제는 1190년 6월 10일, 강을 도하하던 중 말이 미끄러져 바위에 부딫히고 강물에 빠져 익사하고 말면서 신성로마제국 군대는 바로 황제 선거를 해야했기에 유럽으로 복귀하고 황제의 아들 슈바벤 공작 프리드리히6세(Friedrich VI von Schwaben, 1167~1191, 재위1170~1191)가 5천의 병력을 이끌고 안티오크(Antioch)로 향하여 전투를 치르지만 이후 결과적으로 제3차 십자군의 목표인 예루살렘 탈환은 실패로 끝나고 이슬람 연합과의 협상으로 3년간의 휴전에 합의한다. 

 

선종

클레멘스3세는 제3차 십자군이 한창 진행되고 있던 1191년 3월 20일, 선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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