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교황/101대~200대 교황

그레고리오8세

Mintaka5 2025. 6. 18.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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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알베르토 디 모라(Alberto di Morra)

173대 교황 그레고리오8세(Gregorius PP. VIII, 1100~1187, 재위1187)

  전임 교황 당시 재직 교황 후임 교황
직위 172대 교황 173대 교황 174대 교황
출신 신성로마제국, 밀라노 교황령, 베네벤토 교황령, 로마
명칭 우르바노3세
Urbanus PP. III
그레고리오8세
Gregorius PP. VIII
클레멘스3세
Clemens PP. III
생몰년도 1120.xx.xx ~ 1187.10.20 1100.xx.xx ~ 1187.12.17 ? ~ 1191.03.20
교황선거기간 1일
(1185.11.25)
1일
(1187.10.21)
1일
(1187.12.19)
재위 1185.11.25 ~ 1187.10.20 1187.10.21 ~ 1187.12.17 1187.12.19 ~ 1191.03.27

173대 교황 그레고리오8세 초상화
그레고리오8세, 출처-위키피디아

출생

1100년, 교황령 베네벤토(Benevento)에서 아버지 사르토리우스 디 모라(Sartorius di Morra, ?~?)와 어머니(미상)사이에서 태어났다. 

 

배경

173대 교황으로, 베네딕토회와 프레몽트레회 출신으로 수사를 거쳐 법학 교수로 부임하여 가르치던 도중 1155년에 부제급 추기경으로 서임된 이후 탁월한 외교능력으로 20년이 넘는 기간동안 교황 특사로서 서부, 동부유럽 할 것 없이 파견되어서 국가들 사이의 분쟁, 다툼과 더불어 문제를 해결하고 사이를 중재하는데 노력했다. 1187년 10월 20일, 교황 우르바노3세가 살라딘에 의해 예루살렘 왕국이 함락당했다는 소식에 충격을 받고 쓰러져 선종한 다음날 10월 21일 교황 선거에서 교황으로 선출되어 제3차 십자군 원정을 전 유럽에 호소하고 교황 본인 스스로 피사에 찾아가 제노바와 연합해 십자군에 참여해달라고 독려하다가 열병으로 즉위한지 2개월도 채 되지 않아 선종해버린다.  

 

성직

초년에 베네딕토회 수도회에 입회해 수사로서 수련을 받고, 20대쯤에 프레몽트레회(The order of Canons regular of Prémontré, 의전수도회)에 입회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수도원 의전율수사(Canon regular of the monastery, 규율에 따라 공동체를 이루어 사는 카톨릭 성직자)가 되었다가 볼로냐에서 법학을 가르치는 교수로 재직하고 있었다. 1155년에 새로이 교황으로 선출된 하드리아노4세(Hadrinaus PP. IV, 1100~1159, 재위1154~1159)에 의해 부제급 추기경에 서임되고 1158년에는 사제급 추기경으로 승품된다(추기경품계:주교급 추기경>사제급 추기경>부제급 추기경). 1160년대에 들어선 추기경 신분으로 교황 특사로 발칸반도지역에 파견되었고, 1170년대 초엔 프랑스에서 교황 특사를 지냈으며 1177~1180년까지 이탈리아 반도 북부 신성로마제국과 국경지대인 롬바르디아 교황 특사로 활동하면서 두 국가사이의 다툼과 문제를 해결, 중재하는데 힘썼다. 1155년 추기경으로 서임된 이후 4차례(1159, 1181, 1185, 1187년 10월)의 교황 선거에 참석하여 투표권을 행사하고 피선거권을 가졌다. 

 

1187년 10월 교황 선거

1187년 10월 20일, 교황 우르바노3세(Urbanus PP. III, 1120~1187, 재위1185~1187)가 선종하여 교황 선거가 소집된다. 우르바노3세가 선종한지 하루가지난 10월 21일, 페라라(Ferrara)에서 실시되었는데 이는 우르바노3세와 대립하던 호엔슈타우펜가 신성로마황제 프리드리히1세 바르바로사(Friedrich I Barbarossa, 1122~1190, 재위1155~1190)와 황제의 아들 하인리히(미래의 하인리히6세)가 교황령을 앞뒤로 봉쇄해버리는 작전을 펼치고 당시 베로나에 있던 교황 우르바노3세가 페라라로 피난가있던 때에 1187년 살라딘(Saladin, 1137~1193, 재위1174~1193)에 의해 예루살렘 왕국이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충격을 받아 우르바노3세가 페라라에서 선종한 것이였다. 그렇게 하루만에 알베르토 디 모라 추기경이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교황

교황 그레고리오8세는 교황으로 선출된 이후 호엔슈타우펜가 신성로마황제 프리드리히1세와의 협상을 토대로 평화모드로 전환하고 양국사이에 우호관계로 바뀌게 된다. 교황 그레고리오8세는 내부적으로 안정을 취한 다음 칙서 'Audita tremendi'를 통해 불과 얼마전 살라딘에 의해 예루살렘 왕국이 함락당한 것에 전 유럽 카톨릭 군주들에게 제3차 십자군 원정을 호소한다. 십자군 원정을 호소하고 독려하기 위해 분쟁중이였던 잉글랜드 헨리2세(Henry II, 1133~1189, 재위1154~1189)와 프랑스 왕 필리프2세 아우구스트(Philippe II Auguste, 1165~1223, 재위1180~1223)를 중재시키고, 신성로마황제와도 우호관계로 만든다음 교황이 직접 피사 공화국 피사(Pisa)로 가서 피사 시민들에게 대립하던 제노바에 대한 분노를 버리고 연합하여 십자군 원정에 참전해 달라고 직접 촉구하게 한다.  

 

 

선종

그러나 1187년 12월 17일, 그레고리오8세는 피사에서 열렬하게 십자군 원정 참전을 위한 호소를 진행하고 있을 때 열병으로 갑작스럽게 즉위한지 2개월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 선종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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