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명 : 첸치오 사벨리(Cencio Savelli)
177대 교황 호노리오3세(Honorius PP. III, 1148~1227, 재위1216~1227)
| 전임 교황 | 당시 재직 교황 | 후임 교황 | |
| 직위 | 176대 교황 | 177대 교황 | 178대 교황 |
| 출신 | 교황령, 로마 | 교황령, 로마 | 교황령, 아나니 |
| 명칭 | 인노첸시오3세 Innocentius PP. III |
호노리오3세 Honorius PP. III |
그레고리오9세 Gregorius PP. IX |
| 생몰년도 | 1160.11.23 ~ 1216.07.16 | ? ~ 1227.03.18 | 1145.xx.xx ~ 1241.08.22 |
| 교황선거기간 | 1일 (1198.01.08) |
3일 (1216.07.16~1216.07.18) |
2일 (1227.03.18~1227.03.19) |
| 재위 | 1198.01.08 ~ 1216.07.16 | 1216.07.18 ~ 1227.03.18 | 1227.03.19 ~ 1241.08.22 |

출생
출생년도 미상이며, 교황령 로마(Roma)에서 아버지(미상)와 어머니(미상)사이에서 태어났다.
배경
177대 교황이자 사벨리 가문 출신으로 교황 클레멘스3세, 첼레스티노3세, 인노첸시오3세의 치세 때 교황청 궁무처장, 재무관리관등을 역임하였고 특히 신성로마황제가 되는 호엔슈타우펜가 프리드리히(미래의 프리드리히2세 황제)의 가정교사를 맡기도 했다. 1216년 7월 18일, 인노첸시오3세의 후임 교황으로 선출되어 전임 교황의 정책을 그대로 물려받고 제5차, 제6차 십자군 원정을 이끌고 3개의 수도회(도미니코회, 프란치스코회, 가르멜회)를 인가시켜 탄생시키기도 한다. 제6차 십자군 원정을 위해 신성로마황제 프리드리히2세와 예루살렘 여왕 이사벨2세의 결혼을 주선하다가 1227년 선종한다.
성직
교황이 되기전 정보가 거의 없으며, 다만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 의전사제로 장기간 사목활동을 해 온것이 확인되고 있다. 1188년엔 교황청 궁무처장, 1193년엔 교황 첼레스티노3세(Caelestinus PP. III, 1105~1198, 재위1191~1198)에 의해 부제급 추기경으로 서임된다. 사실상 교황청에서 재정관련 업무를 도맡아 해왔아 왔으며 1197년에 신성로마황제 하인리히6세(Heinrich VI, 1165~1197, 로마왕재위1169~1197, 황제재위1191~1197)가 사망해버리면서 황후 쿠스탄차(Custanza di Sicilia, 1154~1198, 시칠리아재위1194~1198)는 3세에 불과한 아들 프리드리히(미래의 신성로마황제 프리드리히2세)를 교황 인노첸시오3세에게 후견인으로 맡기면서 인노첸시오3세는 첸치오 사벨리 추기경에게 프리드리히의 교육을 담당하게끔 하여 가정교사로서 시간을 보낸다. 1200년에는 사제급 추기경(추기경품계:주교급 추기경>사제급 추기경>부제급 추기경)으로 승품된다.
1216년 교황선거
1216년 7월 16일, 교황 인노첸시오3세(Innocentius PP. III, 1160~1216, 재위1198~1216)가 선종하고 후임 교황을 선출할 선거가 소집된다. '교황은 태양이고 황제는 달이다'라는 말을 할 만큼 절대적인 교황권을 자랑하던 인노첸시오3세는 벨프가문 신성로마황제 오토4세(Otto IV, 1175~1218, 로마왕1198~1209, 신성로마황제1209~1215)를 1210년 11월 18일, 파문시키고 새 로마왕 프리드리히(미래의 황제 프리드리히2세)를 선출시키고 이후 1215년 오토4세가 프리드리히2세에 의해 폐위되고 교황은 1216년 십자군 원정을 계획하기위해 제노바로 향하는데, 인노첸시오3세는 페루자에 도착했을 때 쯤 뇌졸중이 와버려 1216년 7월 16일 갑작스럽게 선종해버리면서 후임 교황 선출 선거는 페루자 대성당에서 치루어진다. 28명의 추기경들 중 4명의 추기경이 불참한 24명이 선거에 참석하면서 7월 18일, 3일차 선거 때 첸체오 사벨리 추기경이 교황으로 선출된다.
교황
I. 초기
호노리오3세는 즉위 후, 남부 프랑스 알비(Albi)카타리파 이단을 억제하고 이베리아 반도(포르투갈, 스페인)에 남아있던 이슬람 세력을 몰아내고 동로마제국을 구해내는 과제에 직면하게 된다. 알비 이단 문제는 이미 전임 교황 인노첸시오3세가 1209년부터 알비 십자군(1209~1229)을 선포함과 동시에 프랑스 왕 루이8세(Louis VIII, 1187~1226, 재위1223~1226)까지 십자군에 참여시켜 랑그도크 지역에 파견시켜 수십만명을 학살시키기에 이른다. 알비 십자군을 치르면서도 1216년 즉위 후, 도미니코 수도회 인가를 시작으로 1223년에는 프란치스코회, 1226년 가르멜회를 인가시키고 성직자들이 받는 신학 교육을 더욱 철저하게 받아야 한다고 판단하여 1219년 1월 8일 칙서 'Quum pateretur in litteratura defectum(학문에 결함이 있는 교부)'를 발표하여 학문적 바탕이 부족한 주교들의 사목권을 박탈시키고 학문에 결함이 없는 주교들을 임명시켜 사목활동을 하게끔 한다.
II. 제6차 십자군 원정
호노리오3세는 즉위하자마자, 전임 교황 인노첸시오3세가 1215년 제4차 라테란 공의회에서 비준된 제5차 십자군 원정(1217~1221)을 이어받아 1217년 십자군 원정 준비를 시작하게 되면서 돈을 끌어모으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자기가 직접 가정교사로서 가르친 로마왕 프리드리히2세를 십자군 총사로 맡겨 1217년 서약까지 받아내지만 막상 시기가 되었을 때 십자군 원정을 주저하는데, 호노리오3세는 거듭 촉구하다가 1220년 프리드리히2세를 로마왕에서 신성로마황제로 대관시켜주면서까지 십자군 원정을 독려하지만 계속 연기를 거듭하다가 1221년 9월 8일 ,제5차 십자군 원정의 최후 전투 다미에타(Damietta)전투에서 대패하면서 실패로 끝난다. 그 후 1225년 6월 24일, 황제 프리드리히2세가 제6차 십자군 원정을 가는 것이 확정되면서 원정지 상륙지점 우선확보를 위해 예루살렘 여왕 이사벨2세(Isabelle II, 1212~1228, 재위1212~1228)와의 결혼을 주선하는등의 노력을 기울이지만 1227년 호노리오3세가 선종해버린다.
선종
1227년 3월 18일, 선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