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명 : 로타리오 데이 콘티 디 세니(Lothario dei Conti di Segni)
176대 교황 인노첸시오3세(Innocentius PP. III, 1160~1216, 재위1198~1216)
| 전임 교황 | 당시 재직 교황 | 후임 교황 | |
| 직위 | 175대 교황 | 176대 교황 | 177대 교황 |
| 출신 | 교황령, 로마 | 교황령, 로마 | 교황령, 로마 |
| 명칭 | 첼레스티노3세 Caelestinus PP. III |
인노첸시오3세 Innocentius PP. III |
호노리오3세 Honorius PP. III |
| 생몰년도 | 1105.xx.xx ~ 1198.01.08 | 1160.11.23 ~ 1216.07.16 | ? ~ 1227.03.18 |
| 교황선거기간 | 10일 (1191.03.21~1191.03.30) |
1일 (1198.01.08) |
3일 (1216.07.16~1216.07.18) |
| 재위 | 1191.03.30 ~ 1198.01.08 | 1198.01.08 ~ 1216.07.16 | 1216.07.18 ~ 1227.03.18 |

출생
1160년 11월 23일, 교황령 로마(Roma)에서 아버지 트라시문도(Trasimondo de comitibus Signiae)와 어머니 클라리치아 스코티(Clarissa Scotti)사이에서 태어났다.
배경
176대 교황으로, '교황은 태양, 황제는 달'이라는 말까지 나올정도로 절대적인 교황권을 누렸던 교황으로 근대에 이르기까지 가장 강력한 권력을 가진 교황으로 이름난 인물이다. 1198년 교황 첼레스티노3세가 선종한 후 교황 선거에서 선출되어 교황이 되는데 불과 37세의 나이로 교황이 되는 인물이다. 제4차 십자군 원정과 알비 십자군등을 통해서 이단들을 철저히 숙청하고 1215년 제4차 라테란 공의회를 개최하여 질서를 잡은 다음 이듬해 1216년 7월, 페루자에서 선종한다.
성직
어린시절 베네딕토회 수도원에서 수련을 하고 프랑스 왕국 파리로 유학가서 신학을 공부한 다음, 볼로냐에 1187년에 돌아와서 볼로냐 대학교에서 3년간 법학을 공부한 다음 박사학위를 받는다. 이후 로마로 돌아와서 여러 교황들(루치오3세, 우르바노3세, 그레고리오8세, 클레멘스3세)치하에서 여러 직책을 맡으면서 행정 실무 경험을 쌓다가 1190년 교황 클레멘스3세(Clemens PP. III, ?~1191, 재위1187~1191)로부터 부제급 추기경에 서임되는데 당시 30세의 나이로 추기경에 서임된 셈이다.
1198년 교황 선거
1198년 1월 8일, 교황 첼레스티노3세(Caelestinus PP. III, 1105~1198, 재위1191~1198)가 선종하고 교황 선거가 소집된다. 셉티조니움(Septizodium)에서 선거가 진행됨에 따라 추기경들이 모이는데, 총29명의 추기경중 8명이 불참한 21명이 선거에 참석하고 1차 선거에서 조반니 디 살레르노(Giovanni di Salerno, ?~?)추기경이 가장 많은 득표를 하였지만 교황직을 수락하지 않아서 다시 재투표를 하여 오타비아노 디 파올리(Ottaviano di Paoli, ?~1206)추기경도 수락하지 않도 다른 추기경을 지지한다고 선언하면서 추기경들은 뜻을 모아 전임 첼레스티노3세처럼 나이든 교황(첼레스티노3세는 1191년 즉위할 때 이미 85세)보단 젊은 교황을 선출시켜 쇄신을 하고자 하여 불과 37세의 로타리오 데이 콘티 디 세니 추기경을 선출시킨다. 로타리오 추기경은 교황명을 인노첸시오로 명명하고 인노첸시오3세로서 즉위한다.
교황
I. 제4차 십자군 원정
37세의 젊은 교황은 즉위 직후 제4차 십자군 원정(The fourth Crusade, 1202~1204)을 시작하게끔 유럽 군주들에게 연설을통해 조직하게끔 하지만, 당시 유럽은 잉글랜드 왕 리처드1세(Richard I, 1157~1199, 재위1189~1199)와 프랑스 왕 필리프2세(Philippe II, 1165~1223, 재위1180~1223)가 대립중이였고 신성로마제국 내 군주들은 딱히 십자군 원정에 관심이 없었다. 비용문제와 더불어 군사지원까지 겨우겨우 군주들에게 호소하여 1200~1202년사이까지 원정을 파견할 국가에서 각자 출발하여 무슬림 국가가 아닌 엉뚱하게도 동로마제국 수도 콘스탄티노플로 향하는데, 이는 1204년 십자군 원정군중 베네치아인들은 교황 인노첸시오3세와의 뜻과는 반대로 콘스탄티노플을 약탈해 동방교회와 서방교회간 재분열을 가지고 와서 혼란이 벌어진다. 교황 인노첸시오3세는 당황하여 베네치아인들을 모조라 파문시키는 조치를 취하지만 이미 약탈당한 콘스탄티노플은 돌아올 수 없었다.
II. 알비 십자군
인노첸시오3세는 이단에 특히 민감했는데, 13세기 초에 프랑스 남부 랑그도크 지역에서 카타리파(Catharism)가 퍼지면서 논란이이는데 특히 교황 특사가 이곳에서 카타리파에 의해 암살당하면서 인노첸시오3세는 분노하여 이들 카타리파에 맞설 십자군을 조직하기로 결심하고 프랑스 왕국 귀족들과 프랑스 왕 필리프2세의 호응을얻어 1209년 이들 카타리파의 중심지였던 알비(Albi)로 십자군을 보낸다. 십자군은 랑그도크에 침입해 수십만명에 달하는 민간인을 학살하고 1255년까지 46년간 지속되면서 인노첸시오3세 치세(1198~1216)18년동안에는 1215년까지 랑그도크 지역을 점령하고 이후에는 프랑스 왕 루이8세(Louis VIII, 1187~1226, 재위1223~1226)와 루이9세(Louis IX 'Saint Louis', 1214~1270, 재위1226~1270)가 이어받게 된다.
III. 제4차 라테란 공의회
1215년 11월, 인노첸시오3세는 칙서 'Vineam domini sabaoth'를 통해 제4차 라테란 공의회를 소집시키고 개혁의 뜻을 펼치는데, 이 공의회로 인해 이단에 대한 관리를 효율적으로 하기 위한 종교 재판소가 설치되고 탁발 수도회(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는 수도회)를 인가, 성직자들의 독신상태 유지, 사냥과 술, 도박등이 금지되었으며 성직매매를 절대 금지 함으로서 족벌주의는 친족 4촌이내로 정해지는 기준이 만들어진다. 거기다 유대인에 대한 조치도 설정되었는데, 대출(이자받기가능)이 가능하나 고리대금업이 되어선 아니되며, 유대인은 옷에 다윗의 별 인식을 표시하고 다녀야 한다(나치때 유대인이 옷에 별 표식을 남겨야했던 것과 같음)와 카톨릭 부활절등에 춤추거나 대중앞에 나서는 것 금지, 공직을 맡는 것 까지 금지당한다. 이는 종례에 유대인이 종교를 버리고 카톨릭을 믿게 하여 그리스도인으로 살게끔 권고하는 조치라고 할 수 있겠다.
선종
1216년 7월 16일, 교황 인노첸시오3세는 제노바로 떠나던 중 페루자에서 열병을 얻어 56세의 나이로 선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