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교황/101대~200대 교황

그레고리오9세

Mintaka5 2025. 6. 14.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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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우골리노 데이 콘티 디 세니(Ugolino dei Conti di Segni)

178대 교황 그레고리오9세(Gregorius PP. IX, 1145?~1241, 재위1227~1241)

  전임 교황 당시 재직 교황 후임 교황
직위 177대 교황 178대 교황 179대 교황
출신 교황령, 로마 교황령, 아나니 신성로마제국, 밀라노
명칭 호노리오3세
Honorius PP. III
그레고리오9세
Gregorius PP. IX
첼레스티노4세
Caelestinus PP. IV
생몰년도 ? ~ 1227.03.18 1145?.xx.xx ~ 1241.08.22 ? ~ 1241.11.10
콘클라베기간 3일
(1216.07.16~1216.07.18)
2일
(1227.03.18~1227.03.19)
1개월 5일
(1241.09.21~1241.10.25)
'콘클라베' 용어사용 최초 선거
재위 1216.07.18 ~ 1227.03.18 1227.03.19 ~ 1241.08.22 1241.10.25 ~ 1241.11.10

 

그레고리오9세, 출처-위키피디아

출생

1145년, 교황령 아나니(Anagni)에서 아버지(미상)와 어머니(미상)사이에서 태어났다.

 

배경

178대 교황으로, 교황 인노첸시오3세의 조카인 이유로 1198년 삼촌 인노첸시오3세가 즉위하고 추기경에 서임되고 교황 특사로서 신성로마제국과 교황령의 국경지대인 롬바르디아 지역에 파견되어 두 국가 사이를 중재하는 임무를 맡아오다가 1227년 교황 호노리오3세가 선종하고 열린 교황선출 선거에서 교황으로 선출된다. 교황으로 즉위한 뒤 이단에 대해서는 자비없는 행보를 보였으며, 제6차 십자군 원정을 열은 인물이자 신성로마제국 호엔슈타우펜 황제 프리드리히2세와 끝없이 대립하던 인물이기도하다.  

 

성직

아나니에서 자라서 볼로냐 대학교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파리 대학교에서 교회법을 공부하였고 이후 로마 교황청에서 일하면서 삼촌이였던 교황 인노첸시오3세(Innocentius PP. III, 1161~1216, 재위1198~1216)에 의해 1198년 12월, 부제급 추기경에 서임되고 1206년엔 주교급 추기경(추기경품계:주교급 추기경>사제급 추기경>부제급 추기경)에 승품된다. 삼촌에 의해 교황 특사로도 파견되어 신성로마제국과 교황령의 국경지대이던 북부 이탈리아 롬바르디아 지역, 토스카나 지역에 파견되면서 신성로마제국 호엔슈타우펜 황제 프리드리히2세(Friedrich II, 1194~1250, 재위1220~1250)를 만나 두 국가간 평화와 분쟁지역의 분쟁을 협상을 통해 잘 중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그레고리오9세는 추기경 시절 아시시의 프란치스코(Francis of Assisi, 1181~1226)와 깊은 관계를 맺으며 프란치스코회를 승인 받게끔 하고 갓 탄생한 프란치스코회 회칙을 정하는 과정에서도 아시시의 프란치스코와 함께 의논하였다.   

 

1227년 교황 선출

1227년 3월 18일, 교황 호노리오3세(Honorius PP. III, ?~1227, 재위1216~1227)가 선종하면서 교황 선출을 위한 위원회가 소집된다. 18명의 추기경 중 15명이 교황 선거를 위해 로마 내 셉티조디움(Septizodium)에 모여서 위원회를 꾸려 새로운 교황을 위한 타협안으로 첫 위원회에서 콘라트 폰 우라흐(Conrad von Urach, 1170~1227) 추기경을 선출하지만 콘라트 추기경은 교황직을 거부하면서 2일차인 1227년 3월 19일, 우골리노 디 세니 추기경이 만장일치로 교황으로 선출된다. 마지못해 교황직을 승낙하고 교황명을 그레고리오9세로 명명하고 즉위한다. 

 

교황

I. 이단 금지

그레고리오9세는 즉위 이후 삼촌인 교황 인노첸시오3세와 전임 교황 호노리오3세가 행한 행보를 그대로 따르면서 1230년대 초에 이단에 대한 교황청 직할 종교재판소를 설립한다. 최초의 종교재판소는 삼촌 인노첸시오3세가 1215년 라테란 공의회때 처음 시작된 것으로서 이단을 심문하는 과정에서 당시 프랑스 알비파의 위협으로 인해 도미니코회에 이단심문 권한을 부여하면서 성직자들의 반발이 거세게 몰아치지만 그레고리오9세는 별로 개의치 않는다. 더욱이 엄격하게 만들어진 법률을 발표해 이단을 강력하게 통제하였는데, 심지어 신성로마제국 호엔슈타우펜 황제 프리드리히2세의 아들 하인리히7세(Heinrich)가 이단을 옹호하는 태도를 보였다는 이유로 1234년 파문을 선포하기까지 한다. 

 

II. 제6차 십자군 원정

전임 교황 호노리오3세(Honorius PP. III, ?~1227, 재위1216~1227)는 제5차 십자군 원정(1217~1221)이 실패로 끝나버리자, 1220년 로마에서 황제 대관식을 치르고 1221년에 십자군을 이끌고 가겠다고 맹새했던것 만큼 정식 황제가 된 신성로마황제 프리드리히2세에게 십자군을 이끌어 성지로 향하도록 촉구하지만 프리드리히2세는 정치적인 이유로 계속 연기하다가 호노리오3세 선종 이후 새로 선출된 교황 그레고리오9세의 압력으로 1227년 함대를 이끌고 성지로 출항하지만 제국군 내에 전염병이 퍼지면서 성지로 나아가지 못하자 분노한 교황 그레고리오9세는 프리드리히2세를 파문시키지만(1227.09.27) 프리드리히2세는 파문이후 직접 성지로 가서 예루살렘까지 탈환하기도 한다. 1229년 예루살렘에서 돌아온 프리드리히2세는 자신이 원정을 갔던 틈을 타 시칠리아를 침략했던 교황군을 물리치고 교황 그레고리오9세에게 평화 협상을 제안하면서 휴전에 들어가지만 1239년 프리드리히2세가 롬바르디아에서 대패하면서 다시 교황과 황제간의 갈등이 재폭발한다.  

 

선종

1239년 프리드리히2세가 롬바르디아에서 대패한 이후 사실상 교황과 황제간의 피튀기는 싸움이 다시 시작되고 2년이 지난 1241년 8월 22일, 선종한다. 이후 상황은 17일간 재위한 첼레스티노4세 선종 후 교황이 되는 인노첸시오4세(Innocentius PP. IV, 1180~1254, 재위1243~1254)에게 닥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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