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명 : 리날도 디 옌네(Rinaldo di Jenne) 또는 리날도 콘티 디 세니(Rinaldo Conti di Segni)
181대 교황 알렉산데르4세(Alexander PP. IV, 1199~1261, 재위1254~1261)
| 전임 교황 | 당시 재직 교황 | 후임 교황 | |
| 직위 | 180대 교황 | 181대 교황 | 182대 교황 |
| 출신 | 신성로마제국, 제노바 | 교황령, 로마 | 프랑스, 트루아 |
| 명칭 | 인노첸시오4세 Innocentius PP. IV |
알렉산데르4세 Alexander PP. IV |
우르바노4세 Urbanus PP. IV |
| 생몰년도 | 1180.xx.xx ~ 1254.12.07 | 1199.xx.xx ~ 1261.05.25 | 1195.xx.xx ~ 1264.10.02 |
| 콘클라베기간 | 1개월 12일 (1243.05.16~1243.06.25) |
6일 (1254.12.07~1254.12.12) |
3개월 6일 (1261.05.26~1261.08.29) |
| 재위 | 1243.06.25 ~ 1254.12.07 | 1254.12.12 ~ 1261.05.25 | 1261.08.29 ~ 1264.10.02 |

출생
1199년, 교황령 로마(Roma)에서 아버지 리날도 콘티 디 세니(미상)와 어머니(미상)사이에서 태어났다.
배경
181대 교황으로, 콘디 디 세니 가문 출신인 어머니 덕분에 외가 친척중 교황이 2명(인노첸시오3세, 그레고리오9세)이나 배출된다. 이러한 배경 덕분에 1227년 외삼촌 교황 그레고리오9세가 즉위한 직후 부제급 추기경에 서임되고 1231년엔 주교급 추기경에 승품되기까지한다. 이후 1254년 교황 인노첸시오4세가 선종한 후 열린 콘클라베에서 교황으로 선출된다. 교황으로 선출된 이후엔 신성로마제국 호엔슈타우펜 왕조 만프레디와의 대립이 무슬림까지 연합해버리는 바람에 십자군을 선포하고 이들을 물리치려하지만 만프레디군에 의해 교황군이 패배한 이후 로마까지 위협받게 되는 상황에서 비테르보로 피신하여 그곳에서 선종한다.
성직
파리 대학교에서 학위를 받고 1221년 외삼촌인 우골리노 디 아나니(미래의 교황 그레고리오9세)추기경과 같이 움직이면서 당시 교황 사절단을 이끌던 삼촌을 수행하면서 임무를 맡아오다가 1227년 삼촌이 교황 그레고리오9세(Gregorius PP. IX, 1145~1241, 재위1227~1241)로 선출되면서 리날도는 삼촌으로부터 부제급 추기경으로 서임되고 1231년 주교급 추기경(추기경품계:주교급 추기경>사제급 추기경>부제급 추기경)으로 승품되고 수차례 교황 특사로서 신성로마제국과의 국경지대였던 북부 이탈리아쪽에 파견되면서 두 국가 사이의 분쟁을 중재하기 위해 황제 프리드리히2세를 만나서 우호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인다. 이후로도 삼촌 그레고리오9세 선종 이후 후임 교황이 되는 인노첸시오4세의 11년간의 치하(재위1243~1254)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한다.
1254년 콘클라베
1254년 12월 7일, 교황 인노첸시오4세(Innocentius PP. IV, 1180~1254, 재위1243~1254)가 선종하면서 콘클라베가 소집된다. 콘클라베는 나폴리에서 치뤄지는데, 인노첸시오4세와 신성로마제국 호엔슈타우펜 왕조 황제 프리드리히2세(Friedrich II, 1197~1250, 재위1220~1250)의 아들 만프레디(Manfredi, 1232~1266, 재위1258~1266)와 맞붙으면서 교황이 직접 거처를 나폴리로 옮겨서 맞붙기 직전 교황이 선종해버리면서 나폴리에서 콘클라베가 열리게 된 것이다. 12명(2명불참)의 추기경 선거인단은 나폴리에 모였지만 우왕좌왕 하던 찰나에 나폴리 시장 베르톨리노 타베르네리오 다 파르마(Bartolino Tavernerio da Parma, ?~?)는 도시를 봉쇄하고 즉시 콘클라베를 진행하게끔 강요하여 6일만에 리날도 디 옌네 추기경을 교황으로 선출한다. 리날도 추기경은 교황명을 알렉산데르로 명명하고, 알렉산데르4세로 즉위한다.
교황
알렉산데르4세는 즉위 이후 이전 교황들부터 대립을 이어오던 신성로마제국 호엔슈타우펜 왕조와의 대립관계를 계속 유지하면서 호엔슈타우펜 왕조 최후 군주인 콘라딘(Konradin, 1252~1268, 재위1254~1268)의 보호자 역할을 하였던 전임 교황 인노첸시오4세의 뜻을 이어 알렉산데르4세 자신도 콘라딘을 보호하겠다고 약속하는데, 콘라딘의 삼촌인 슈바벤 군주 만프레디(Manfredi, 1232~1266, 재위1258~1266)가 이를 반대하는데 게다가 탁발 수도승마저 무슬림으로 개종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되면서 이들을 용서할 수 없었던 알렉산데르4세는 1255년, 만프레디와 무슬림을 상대로 한 십자군을 선포하기에 이르지만 유럽군주들의 호응을 크게 얻지 못한 교황군은 만프레디와 무슬림 연합 군대에 의해 패배하고 교황 자신이 있던 로마마저 위험해지면서 비테르보로 거처를 옮기기에 이른다.
선종
1261년 5월 25일, 교황 알렉산데르4세는 62세의 나이로 로마로 돌아가지 못한 채 비테르보에서 선종하게 된다. 현재도 알렉산데르4세의 유해는 비테르보 대성당 내부에 안치되어있는 상태이다. 선종 후 비테르보 대성당에서 콘클라베가 치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