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교황/101대~200대 교황

그레고레오10세

Mintaka5 2025. 6. 7.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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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테오발도 비스콘티(Teobaldo Visconti)

184대 교황 그레고리오10세(Gregorius PP. X, 1210~1276, 재위1271~1276)

  전임 교황 당시 재직 교황 후임 교황
직위 183대 교황 184대 교황 185대 교황
출신 프랑스, 생질 신성로마제국, 피아첸차 신성로마제국, 사보이 백국
명칭 클레멘스4세
Clemens PP. IV
그레고리오10세
Gregorius PP. X
인노첸시오5세
Innocentius PP. V
생몰년도 xxxx.11.23 ~ 1268.11.29 1210.xx.xx ~ 1276.01.10 1225.xx.xx ~ 1276.06.22
콘클라베기간 3개월 27일
(1264.10.12~1265.02.05)
2년 10개월
(1268.12.01~1271.09.01)
2일
(1276.01.20~1276.01.21)
재위 1265.02.05 ~ 1268.11.29 1271.09.01 ~ 1276.01.10 1276.01.21 ~ 1276.06.22

184대 교황 그레고리오10세 초상화
그레고리오10세, 출처-위키피디아

출생

1210년, 신성로마제국 피아첸차(Piacenza)에서 아버지(미상)와 어머니(미상)사이에서 태어났다. 

 

배경

184대 교황으로, 1268년부터 1271년까지 약 3년에 걸친 교회 역사상 가장 긴 콘클라베 기간을 거쳐 교황으로 선출된 인물이다. 자신은 교황이 선출될 때 9차 십자군 원정중이였는데 자신이 선출되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와서 교황직을 수락하고 즉위하고 로마로 돌아와서 바로 성지 아크레로 향하는데 그곳에서 탐험가안 마르코 폴로(Marco Polo, 1254~1324)와 마르코의 아버지 니콜로 폴로(Niccolò Polo, 1230~1294), 마르코의 숙부 마페오 폴로(Maffeo Polo, 1230~1309)와 마르코 폴로(Marco Polo, 1254~1324)등을 만나 동방 국가 원나라 칸 쿠빌라이(1215~1294, 대칸재위1260~1271, 원재위1271~1294)에게 보낼 서신과 함께 도미니코회 소속 사제 2명을 교황 특사로 같이 보내 아시아쪽 사목활동에도 큰 관심을 보인다. 1274년 5월 7일 제2차 리옹 공의회를 개최하여 3가지의 목표(십자군, 동방교회와의통합, 교회내적관습개혁등)를 부르짖으며 성공적으로 공의회를 마무리짓고 로마로 돌아오는 길에 아레초에서 선종한다. 아레초에서 선종하여 추기경들이 이곳으로 모여 콘클라베를 통해 후임교황을 선출한다. 

 

초년

테오발도 비스콘티는 로마의 유력 가문인 비스콘티 가문 출신으로서 피아첸차에서 성직 공부를 초년에 마쳤다고 정보가 남아있지만 여러 정보가 난무하는 편이므로 단언하기가 어려운 인물이다. 1236년 고향 피아첸차 출신 추기경 자코모 페코라라(1170~1244)의 눈에 띄면서 페코라라 추기경이 프랑스 교황 특사로 파견되어 프랑스로 갈때 같이 따라가게 되어 여러 경험을 쌓고 페코라라 추기경이 1244년 선종하면서 테오발도는 리옹으로 가서 교황 인노첸시오4세(Innocentius PP. IV, )가 개최한 제1차 리옹 공의회(1245)에 참석하면서 자신을 알리고 공의회 내에서 활동하면서 여럿 추기경들과 친분을 쌓게 된다. 공의회가 끝난 이후 1248년부터 리에주(Liège)에서 수많은 인물들과 교류하면서 친분을 쌓는데 그 중 스콜라 철학의 대명사였던 토마스 아퀴나스, 미래의 교황 클레멘스4세, 미래의 교황 인노첸시오5세등과 교류하고 심지어 프랑스 왕 루이9세와 아들 필리프(미래의 필리프3세)까지 교류하면서 친분을 쌓는다.  

 

1268~1271년 콘클라베

1268년 11월 29일, 교황 클레멘스4세(Clemens PP. IV, ?~1268, 재위1265~1268)가 선종하고 콘클라베가 소집된다. 그러나 콘클라베가 소집되기 이전부터 추기경들간의 정치적인 분쟁이 지속되고 있었는데, 프랑스 출신 추기경들과 이탈리아 반도 출신 추기경들간의 파벌이 형성되었는데 이는 프랑스 앙주 가문 출신 시칠리아 왕 카를로1세 또는 샤를 당주(Charles d'Anjou, Carlo I, 1226~1285, 재위1266~1285)의 행보를 지지하느냐 지지하지 않느냐를 두고 분쟁을 겪고 있었다. 선종한 교황 클레멘스4세는 프랑스 출신으로서 프랑스 왕 루이9세(Louis IX Saint Louis, 1214~1270, 재위1226~1270)의 동생 샤를 당주를 시칠리아 왕으로 즉위시켜 이탈리아 반도에 프랑스의 영향력을 확대시키려 했던 것에 대해 추기경들간의 분쟁이 일어난 것이다. 그렇게 20명의 추기경들은 비테르보 교황궁에서 콘클라베를 진행하게 되는데, 이 때 콘클라베는 무려 3년에 가까운 기간(2년 10개월, 1268.12.01~1271.09.01)동안 지속된 것 만큼 수십회가 넘는 투표가 진행되었는데 그럼에도 교황이 선출되지 않으면서 로마 시민들도 점점 지치다가 분노하게 되면서 여론을 의식한 비테르보 시장은 교황이 선출될때까지 추기경들을 비테르보 교황궁에 격리시키고 빵이랑 물만 안으로 들여보내고 결론을 빨리 내게끔 했다. 100여차례의 투표에도 교황선출이 되지 않자 추기경들은 유력 가문을 포함시킨 비추기경-추기경 6명의 위원회를 임명하여 이들 중 당시 제9차 십자군원정(1271~1272)에 참여하던 테오발도 비스콘티가 교황으로 선출된다. 테오발도 비스콘티는 십자군 원정 중 자신이 교황으로 선출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3개월만에 비테르보로 와서 교황직을 수락하고 그레고리오10세로 명명하여 1272년 3월 13일 로마에 입성하여 사제 서품을 받고 로마의 주교로 축성된 뒤 즉위 대관식을 치르게 된다. 이 콘클라베는 콘클라베 역사상 가장 긴 콘클라베기간으로 남아있다. 

 

교황

그레고리오10세는 즉위 후 성지 아크레(현 이스라엘 예루살렘)로 기도를 하기위해 떠나는데, 당시 아크레에 체류하고 있던 마르코 폴로(Marco Polo, 1254~1324)와 마르코의 아버지 니콜로 폴로(Niccolò Polo, 1230~1294), 마르코의 숙부 마페오 폴로(Maffeo Polo, 1230~1309)등과 만나서 여행기를 들으면서 곧 아시아로 떠날 이들에게 원나라 칸 쿠빌라이(1215~1294, 대칸재위1260~1271, 원재위1271~1294)에게 보낼 편지를 작성함과 동시에 이들이 유럽으로 복귀할 시 로마에서 사절단을 보내 접견토록 하라는 칙령도 내림과 동시에 아시아로 가는 이들 부자에게 2명의 도미니코회 사제를 교황 특사로 같이 파견시키면서 아시아에 대한 큰 관심을 보인다. 1274년 5월, 교황은 프랑스 왕국 리옹(Lyon)에서 개최될 공의회 소집을 발표하고 공의회 목표를 십자군을 통한 성지 해방과 서방교회와 동방교회와의 통합을 부르짖고 교회 내부적으로 혼란을 잠식시키고 관습을 개혁하여 내적 안정화를 추구하기위함을 강조하게 된다. 1천명이 넘는 성직자들이 리옹에 모이고 각국 군주, 신학자(토마스 아퀴나스는 리옹으로 오는길에 사망)등이 참석한 대규모 공의회로 1274년 5월 7일 최초 개최되며 앞서 교황이 언급한 3가지 목표를 강조하며 5차례의 회의 끝에 최종적으로 헌장 'Ubi Periculum'이 선포되면서성공적으로 1274년 7월 17일에 공의회가 마무리된다.  

 

선종

1274년 7월 17일 성공적으로 제2차 리옹 공의회가 마무리된 후 교황 그레고리오10세는 1275년 4월이 되어서야 리옹을 떠나 로마로 향하게 되는데, 로마로 가는 도중에도 카톨릭 국가 군주들과 만나서 정치적인 문제와 업무를 병행하는데 이미 공의회때부터 건강이 좋지 않았던 교황은 로마로 이동하는 동안에도 지속적으로 악화되었고 치료를 위해 중간중간 이동을 멈추고 치료를 반복하다가 1275년 12월 20일, 아레초에 도착하여 치료를 받다가 병석에서 1276년 1월 10일 아레초 주교궁에서 선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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