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교황/101대~200대 교황

우르바노4세

Mintaka5 2025. 6. 9.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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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자크 팡탈레옹(Jacques Pantaléon)

182대 교황 우르바노4세(Urbanus PP. IV, 1195~1264, 재위1261~1264)

  전임 교황 당시 재직 교황 후임 교황
직위 181대 교황 182대 교황 183대 교황
출신 교황령, 로마 프랑스, 트루아 프랑스, 생질
명칭 알렉산데르4세
Alexander PP. IV
우르바노4세
Urbanus PP. IV
클레멘스4세
Clemens PP. IV
생몰년도 1199.xx.xx ~ 1261.05.25 1195.xx.xx ~ 1264.10.02 xxxx.11.23 ~ 1268.11.29
콘클라베기간 6일
(1254.12.07~1254.12.12)
3개월 6일
(1261.05.26~1261.08.29)
3개월 27일
(1264.10.12~1265.02.05)
재위 1254.12.12 ~ 1261.05.25 1261.08.29 ~ 1264.10.02 1265.02.05 ~ 1268.11.29

182대 교황 우르바노4세 초상화
우르바노4세, 출처-위키피디아

출생

1195년, 프랑스 왕국 트루아(Troyes)에서 아버지(미상)와 어머니(미상) 사이에서 태어났다.

 

배경

182대 교황으로, 전임 교황 알렉산데르4세부터 신성로마제국 호엔슈타우펜 왕조와의 대립이 격화되고 우르바노4세가 즉위한 시점에 시칠리아 호엔슈타우펜 왕조 군주 만프레디를 파문시키고 프랑스 귀족 샤를 당주를 시칠리아 군주로 봉하기 위해 직접 메시지를 보내고 샤를 당주가 시칠리아를 점령하기 전 선종해버린다. 1264년 8월 11일 칙령 'Transiturus de hoc mundo'를 발표하여 성체 대축일을 선포, 제정하면서 성체 찬미가까지 만들기도 하는데 이 모든 과정은 신학자이자 스콜라 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를 통해 만들어졌다. 

 

성직

부유한 가정환경 덕분에 부족함 없이 자란 자크 팡탈레옹은 파리 대학교에서 신학과 법학을 전공해 교회법 교수가되어 라온(Laon) 부주교로도 활동한다. 1251년 교황 인노첸시오4세(Innocentius PP. IV, 1180~1254, 재위1243~1254)로부터 주교에 서임되고 교황 특사로서 신성로마제국에 파견되어 로마왕 콘라트4세(Konrad IV, 1228~1254, 로마왕재위1237~1254, 시칠리아재위1250~1254)의 야욕을 경고하면서 인노첸시오4세의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 사실상 볼모비슷하게 신성로마제국으로 간 케이스이다. 1253년 베르됭(Verdun)의 주교, 1255년 교황 알렉산데르4세에 의해 예루살렘 라틴 총대주교에 서임되고 이후 자신이 선출되는 1261년 콘클라베에도 참석하지 못하고 대주교자리를 지키고 있는다. 

 

1261년 콘클라베

1261년 5월 25일, 교황 알렉산데르4세(Alexander PP. IV, 1199~1261, 재위1254~1261)가 선종하여 콘클라베가 소집된다. 8명이라는 적은 수의 추기경 선거인단으로 구성된 1261년 콘클라베는 알렉산데르4세가 7년간(1254~1261)재위당시 알렉산데르4세 전임 교황인 인노첸시오4세의 족벌주의에 상당한 반감을 가져 재위기간동안 단 한명의 추기경도 임명하지 않았기에 선거인단의 숫자가 적을 수 밖에 없었다. 콘클라베는 알렉산데르4세가 비테르보에서 선종하면서 비테르보 주교궁에서 열리게 되는데, 알렉산데르4세는 신성로마제국 호엔슈타우펜 왕조에 대한 적대정책을 계속 추진함에 따라 신성로마황제 프리드리히2세(Friedrich II, 1197~1250, 재위1220~1250)의 아들 만프레디(Manfredi, 1232~1266, 재위1258~1266)가 시칠리아 왕국 권리와 자신의 어린 아들 콘라딘(Conradin, 1252~1268, 재위1254~1268)의 후견으로 둔 것에 대한 보복으로 만프레디를 파문시키고 이에 분노한 만프레디가 1258년 8월 10일 팔레르모()에서 스스로 시칠리아 왕위에 오른 것으로 대립이 격화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콘클라베 내 추기경단들도 서로 갈라져 교착 상태가 장기화되어 콘클라베 시작 3개월이 넘어버리면서 추기경단은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타협후보로서 추기경이 아닌 자크 팡탈레옹 대주교를 교황으로 선출시킨다. 

 

교황

교황 우르바노4세는 즉위 이후부터 신성로마제국 황제 프리드리히2세의 아들 만프레디(Manfredi)와 적대관계를 맺고 친 프랑스 노선을 선택하여 당시 프랑스 왕 루이9세(Louis IX 'Saint Louis, 1214~1270, 재위1226~1270)의 동생 앙주 가문인 샤를 당주(Charles d'Anjou, 미래의 시칠리아 왕 카를로1세)를 로마 원로원 의원으로 임명시켜 신성로마제국 만프레디와의 최전선에 세워서 견제하게끔한다. 1262년엔 만프레디를 파문시키고 시칠리아 왕에서 폐위시켜버리면서 신성로마제국 호엔슈타우펜 왕조에 충성을 다하던 기벨린 지도자들이 교황을 위협하기 시작하면서 교황은 오르비에토에서 페루자로 피난갈 수 밖에 없었다. 이전에 자신이 임명시킨 샤를 당주에게 긴급하게 시칠리아를 점령하고 왕좌를 획득하라는 메시지를 보낸다. 그런 와중에도 1264년 8월 11일 칙서 'Transiturus de hoc mundo(이 세상에서 건너가다)'를 반포하여 성체 대축일을 제정하고, 대축일 미사에 대한 전례서 작성을 스콜라 철학자인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5~1274)에게 맡기고 성체 찬미가들도 만들게 한다. 

 

선종

1264년 10월 2일 페루자에서 69세의 나이로 선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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