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명 : 오토부오노 데 피에스키(Ottobuono de' Fieschi)
186대 교황 하드리아노5세(Hadrianus PP. V, 1205~1276, 재위1276)
| 전임 교황 | 당시 재직 교황 | 후임 교황 | |
| 직위 | 185대 교황 | 186대 교황 | 187대 교황 |
| 출신 | 신성로마제국, 사보이 백국 | 신성로마제국, 제노바 | 포르투갈, 리스본 |
| 명칭 | 인노첸시오5세 Innocentius PP. V |
하드리아노5세 Hadrianus PP. V |
요한21세 Ioannes PP. XXI |
| 생몰년도 | 1225.xx.xx ~ 1276.06.22 | 1205.xx.xx ~ 1276.08.18 | 1215.xx.xx ~ 1277.05.20 |
| 콘클라베기간 | 2일 (1276.01.20~1276.01.21) |
10일 (1276.07.02~1276.07.11) |
21일 (1276.08.19~1276.09.08) |
| 재위 | 1276.01.21 ~ 1276.06.22 | 1276.07.11 ~ 1276.08.18 | 1276.09.08 ~ 1277.05.20 |

출생
1205년, 신성로마제국 제노바(Genova)에서 아버지 테오도로 피에스키(Teodoro Fieschi, ?~?)와 어머니 시모나 델라 볼타(Simona della Volta, ?~?)사이에서 태어났다.
배경
186대 교황으로, 라바냐 백작 집안 중위 귀족 가문인 피에스키 가문 출신으로 삼촌으로는 교황 인노첸시오4세(본명:시니발도 데 피에스키, Sinibaldo de' Fieschi)가 있다. 1251년 삼촌 인노첸시오4세로부터 부제급 추기경에 서임된 이후 주로 외교업무를 맡아 외국으로 보내져서 분쟁이 있을때나 군주들간 대립이 발생했을 때 교황 특사로서 중재하는 임무를 주로 맡았다. 총6회에 달하는 콘클라베에 참석하였고, 1276년 7월에 교황 인노첸시오5세 선종이후 치뤄진 콘클라베에서 교황으로 선출되지만, 38일의 짧은 재위기간을 뒤로 갑작스럽게 선종해버리는 인물이다.
성직
어린시절부터 성직활동을 시작했다는 것과 1250년 이전까지 프랑스에서 모 교구 내 부주교를 역임했다는 정도의 정보밖에 남아있지 않은데, 1251년에 되어서야 비로소 역사속에서 보이게 된다. 1251년 12월, 삼촌이자 교황인 인노첸시오4세(Innocentius PP. IV, 1180~1254, 재위1243~1254)에 의해 부제급 추기경에 서임되고 3년뒤 삼촌 인노첸시오4세가 선종하고 즉위하는 알렉산데르4세(Alexander PP. IV, 1199~1261, 재위1254~1261)와 이후 우르바노4세(Urbanus PP. IV, 1195~1264, 재위1261~1264)치하에서 교황 특사를 맡게 되며 주로 외국을 다니며 외교 업무를 맡게 되면서 사절단을 이끌기도 하고, 외교관으로서 뛰어난 능력을 보이면서 1259년 교황 알렉산데르4세로부터 사제급 추기경에 서임된다. 우르바노4세의 후임교황이 되는 프랑스 출신 교황 클레멘스4세(Clemens PP. IV, ?~1268, 재위1265~1268)가 즉위한 이후에는 당시 프랑스 왕인 '성왕' 루이9세(Louis IX 'Saint Louis', 1214~1270, 재위1226~1270)에게 보내져 루이9세와 잉글랜드 왕 헨리3세(Henry III, 1207~1272, 재위1216~1272)와 귀족들사이에 벌어진 분쟁을 중재하게끔하는 임무를 맡게 된다. 1251년 부제급 추기경에 서임된 이후 총6회에 달하는 콘클라베에 참석하여 투표권을 행사한다.
1276년 7월 콘클라베
1276년 6월 22일, 교황 인노첸시오5세(Innocentius PP. V, 1225~1276, 재위1276)가 즉위한지 5개월만에 선종해버리면서 콘클라베가 소집된다. 짧은 재위기간으로 인해 1276년에 열린 두번째 콘클라베가 7월 2일부터 7월 11일까지 10일간 진행되는데, 총14명의 추기경 선거인단중 13명의 추기경이 참석하고 1명의 추기경이 불참(프랑스 추기경 시몽 드 브리옹, 미래의 교황 마르티노4세)한채로 진행되며, 오토부오노 데 피에스키 추기경이 추기경단의 만장일치로 교황으로 선출된다. 교황명은 '하드리아노(Hadrianus)'를 선택하였으며, 하드리아노5세로서 즉위하게 된다.
교황
하드리아노5세는 교황으로 선출되자마자 병석에 누운 채로 라테란에서 비밀리에 공의회를 소집하여 수년전 리옹 공의회때 교황 그레고리오10세(Gregorius PP. X, 1210~1276, 재위1271~1276)가 선포한 칙서를 무효화 시켜 새로운 규정을 재정하기위해 공의회에 성직자들을 불러들인다. 그러나 너무 허망하게도 이미 병들어있던 교황은 로마의 주교로 서임받지도, 교황으로서 대관식으로 치르지 못해버린다. 총38일간의 짧은 재위기간을 가진 만큼 대관식은 커녕 자신이 임명한 추기경도 1명도 없었다.
선종
1276년 7월 11일 교황으로 선출된 이후부터 이미 71세의 고령으로 인해 이미 병이 걸린채로 즉위하고 병세가 악화되다가 대관식도 치르지 못하고 1276년 8월 18일에 즉위한지 38일만에 선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