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교황/101대~200대 교황

요한21세

Mintaka5 2025. 6. 4.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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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페드루 줄리앙(Pedro Julião)

187대 교황 요한21세(Ioannes PP. XXI, 1215~1277, 재위1276~1277)

  전임 교황 당시 재직 교황 후임 교황
직위 186대 교황 187대 교황 188대 교황
출신 신성로마제국, 제노바 포르투갈, 리스본 교황령, 로마
명칭 하드리아노5세
Hadrianus PP. V
요한21세
Ioannes PP. XXI
니콜라오3세
Nicholaus PP. III
생몰년도 1205.xx.xx ~ 1276.08.18 1215.xx.xx ~ 1277.05.20 1210.xx.xx ~ 1280.08.22 
콘클라베기간 10일
(1276.07.02~1276.07.11)
21일
(1276.08.19~1276.09.08)
6개월
(1277.05.30~1277.11.25)
재위 1276.07.11 ~ 1276.08.18 1276.09.08 ~ 1277.05.20 1277.11.25 ~ 1280.08.22

187대 교황 요한21세 초상화
요한21세, 출처-위키피디아

출생

1215년, 포르투갈 리스본(Lisbon)에서 아버지 줄리아오 레벨로(Julião Rebelo, ?~?)와 어머니 테레사 길(Teresa Gil, ?~?)사이에서 태어났다.

 

배경

187대 교황으로, 최초이자 현재까지 유일한 포르투갈 출신 교황인 인물이다. 다방면의 학문에서 두각을 드러내며 교황 중 특이하게 의학까지 전공하여 강단에서 의대생들을 가르친 인물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변증법 연구와 학자이자 대학교 교수였던 만큼 교수법에도 지대한 관심을 보여 논리학과 변증법을 동시에 발전시킨 장본인이다. 1261년 사제 서품 이후 교황청에서 외교업무를 보며 추기경들과 친해지면서 교황에게도 얼굴을 알리게 되었고, 이후 1272년 교황 그레고리오10세로부터 대주교 승품, 1273년에는 주교급 추기경으로 승품되기까지 한다. 1276년 8월 18일 선종한 하드리아노5세이후 후임 교황으로 선출되지만, 즉위한지 9개월만에 숙소 천장이 무너져 크게 다치고 병상에 누워 앓다가 일주일만에 선종한다.   

 

성직

파리 대학교에서 신학을공부한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 BC384~BC322)의 형이상학에도 깊게연구하여 프랑스 몽펠리에 대학교에서 의학을 공부하여 학위를 받고 1235~1245년까지 10년동안은 아라곤과 툴루즈 백국에서 신학과 논리학을 가르치고, 1245년부터는 설립된지 갓 5년밖에 되지 않았던 신설 학교인 시에나 대학교에서 의대생들을 가르쳤다. 학자로서 페드루 줄리앙은 강단에서 학생을 가르치기에 앞서 교수법 연구에도 일가견이 있었는데, 알파벳을 통한 성향이 다른 두 성향의 명제를 기준잡아 단어를 만들어 단어자체의 이해도를 높이는 교수법을 체계화 시킴으로서 논리학의 토대를 세우기도 하였다. 그렇게 1250년에는 파리 소르본 대학교에서 학장에 오르기도 한다. 이후 부제를거쳐 1261년 사제 서품을 받고, 1262년 부터는 교황청 외교 임무를 맡게되면서 추기경들과 가깝게 지내는데, 추기경들 중 한명은 미래에 교황 하드리아노5세(Hadrianus PP. V, 1205~1276, 재위1276)가 되는 오토부오노 데 피에스키 추기경도 있었고 이렇게 추기경들과 가깝게 지내다 보니 교황과도 알현할 기회가 있었다. 특히 1271년에 즉위한 교황 그레고리오10세(Gregorius PP. X, 1210~1276, 재위1271~1276)로부터 외교력을 인정받아 1272년 5월, 대주교로 승품되고 이듬해 1273년 6월엔 주교급 추기경에 서임되면서 순식간에 콘클라베 참여와 교황 피출마권과 투표권까지 가지게 되는 막강한 권한을 가지게 된다.

 

1276년 9월 콘클라베

교황 하드리아노5세(Hadrinaus PP. V, 1205~1276, 재위1276)가 즉위한지 1개월이 조금 더 지났을때인 1276년 8월 18일에 선종해버리면서 콘클라베가 재소집된다. 1276년에 열린 3번째 콘클라베로, 11명의 추기경 선거인단 중 1명이 불참하고 1명의 추기경이 콘클라베 도중 선종(비체 도미노 추기경)함으로서 9명의 추기경이 투표에 참석함으로서 진행된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추기경들은 서로 나뉘어졌고 20일가량 2/3이상 표를 얻는 추기경이 나오지 않으면서 콘클라베가 장기화됨을 느꼈던 추기경들은 추기경단중 유일하게 중립적 성향이였던 포르투갈 출신 추기경 페드루 줄리앙 추기경을 교황으로 선출한다. 페드루 줄리앙 추기경은 교황명을 요한으로 선택하고, 요한21세로 즉위하게 된다.  

 

교황

요한21세는 즉위할 때 이미 나이가 61세였고, 건강이 크게 좋지 않았던 만큼 재위기간도 9개월(1276.09~1277.05)로 짧은 편에 속하지만, 이전 추기경 시절인 1274년 교황 그레고리오10세의 주재로 진행되고 있던 제2차 리옹 공의회에서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에 대한 교령을 대폭 수정한 것으로 유명했는데, 요한21세는 당시 콘클라베가 진행될 때 선거시 추기경들을 가두고 진행될 때 2/3이상 득표가 나오지 않을 경우 콘클라베가 장기화 되면 로마 시민들의 불만이 증폭되고 길어진 콘클라베만큼 추기경들에게 제공되는 음식과 와인등이 너무 많이 들어가서 교황령 세금이 너무 많이 쓰인다는 생각에 콘클라베가 일주일 이상 길어질 시 제공되는 음식과 와인을 점진적으로 줄여 이들을 압박하여 재빠른 합의를 유도하여 교황을 조속히 선출할 것이라는 뜻이담겨져 있었다. 짧은 재위기간 도중 십자군 원정을 계획함과 동시에 동방 교회와의 화합에 집중하여 교회의 안정을 추구하고자했다.    

 

선종

그러나 1277년 5월 14일, 조용히 있던 숙소에서 천장이 무너지면서 크게 다친 요한21세는 병상에 누워 치료를 받다가 일주일도 안된 5월 20일에 선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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