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요호 사건, 1875
배경
1875년 일제 군함 운요호가 조선과의 통상조약 체결을 위해 군함 운요호를 불법으로 강화도에 들어와서 동태를 살피다가 조선군과 전투를 벌인 사건을 이야기한다. 일제 122대 메이지(1852~1912, 재위1867~1912)가 행한 1868년 메이지유신으로 봉건적 성향인 에도 막부 체제에서 천황을 중심으로 한 중앙집권 체제로서의 전환으로 왕권과 근대화를 잡고 침략전쟁을 벌이려고 했는데, 이웃나라 조선에서 마침 고종(1852~1919, 조선재위1864~1897, 대한제국재위1897~1907)대신 섭정통치를 행하던 흥선대원군(이하응1821~1898, 섭정1864~1874)이 물러나게 되고 기회를 포착하는데, 일제는 이에 군함을 조선 연안에 파견해 무력시위를 벌이게 한다.
발단
일제 외무성에서는 조선을 압박하기 위해 군함파견을 동의받아 1875년 5월 운요호와 다이니테이보호가 부산에 입항한다. 그러나 부산에서 이들이 무력시위를 해도 별로 먹혀들어가지 않자 다른 방법을 쓰기에 이르는데.. 그렇게 일제는 1875년 9월 서해 강화도쪽에 함선을 정박하고 식수를 구한다는 명분으로 조선 서부 연안의 동태를 살피면서 군부대근처까지 접근하게 되는데, 조선군의 접근 경고에도 불구하고 이를 무시한 일제군에게 조선군은 사격을 가해 이들을 운요호로 다시 보내게 하고 일제군들은 운요호를 움직이게끔 해서 포격을 실시하고 무력화 시킨다음 강화도 초지진에 상륙해 조선 민간인들에 대한 살육, 약탈, 방화를 자행하는 만행을 저지르게 된다.
조선군은 수많은 사상자가 나오고 약탈,방화등 피해규모가 컸는데(조선군 전사자35명, 포로16명이외 피해규모는 별도) 반면에 일제군은 겨우 2명의 경상자만 발생했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조선에 이 전투에 대한 책임을 돌려버린다. 이들은 조선이 일제 자신들이 무력시위를 했을 때 먼저 선공을 해서 공격을 유도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조선이 이에 응하지 않게 되면서 일제가 수를 두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일제는 이러한 전투에 대한 책임을 조선에 돌리고 무력으로 개항을 하고자 압박을 넣게 된다.
강화도 조약
1876년(고종12년) 일제에서는 조선으로 전권대사 구로다 기요타카(1840~1900)를 보내 운요호 사건에 대한 책임론과 더불어 조선의 항구 개항을 요구하기에 이른다. 그렇게 조선에서도 중신들과 회담을 거듭하여 합의를 도출하려고 하는데 결국 일제의 요구조건에 응하기로 하고 1876년 2월 27일(공교롭게도 글 쓴 날도 2025년 2월 27일이다..) 강화도 조약을 체결하기에 이른다. 일제측 전권대사 구로다 기요타카와 조선측 전권대신 신헌(1810~1884)간에 체결된다.
강화도 조약으로 부산이외의 항구2개는 원산(1880), 인천(1883)으로 결정되게 되고, 조약 체결 5개월이 지난 1876년 7월, 부록과 함께 추가 규칙을 조인하게 되면서 완성되게 된다.
| 조약 내용 | |
| I | 조선국은 자주국이며, 일본 제국과 평등한 권리를 가진다. |
| II | 일본 제국 정부는 15개월 후 사신을 조선 수도 한양에 파견한다. 이에 조선국정부 역시 언제든지 사신을 일본 제국 수도 동경에 파견할 수 있다. |
| III | 조선국 부산의 일본 공관에서 무역 사무를 처리한다. |
| IV |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함경도 총5개도의 바닷가 중 통상에 편리한 항구2개소를 20개월 내에 개항한다. |
| V | 조선국 해안을 일본 제국의 항해자가 자유로이 측량하도록 허가한다. |
| VI | 일본 제국 인민이 조선국 항구에 머무르는 동안 죄를 범한 것이 조선국 인민에 관계되는사건일 때에는 일본 제국법에 의거해 모두 일본 제국 관원이 심판하게 한다. |
날조된 보고서
2002년 일본 방위연구소 자료실에서 운요호에 대한 보고소가 조작된것으로 판명되었다는 결과가 나오게 된다. 애초에 국제법상 운요호가 취한 행동은 위법으로 판별나는 것을 조선군과의 교전당시 소좌 이노우에(1845~1929)가 조작했던 것으로서 식수를 찾기위해 왔다는 것이 아니라 해안 측량을실시하고 조선 관리를 의도적으로 접근하기 위하였음이 밝혀졌다고 한다.
날조된 보고서 한장으로 조선 후기 국권침탈의 시작점이 되었다는 것에 글을 쓰면서도 참 답답함이 느껴지는 현실... 일제의 제국주의적 야욕이 벌인 하나의 작품이라고 볼 수 밖에 없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