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1887~1910
출생
1887년 조선 평안도 선천군에서 태어남.
배경
독립운동가. 1910년 경술국치로 대한제국의 국권이 일제에 의해 뺏기게 되면서 일제강점기(1910~1945)가 시작됨에 따라 친일파의 대명사격인 이완용(1858~1926) 암살을 시도했었다. 1900년대 초부터 급속도로 진행된 국권침탈과정에 친일 매국노들이 개입하여 더욱 국권침탈을 부추겼고 이에 이재명은 친일 매국노들과 일제 주요인사들을 처단하고 대한제국 국권수호를 하고자 하였다.
1905년 을사늑약에 찬성한 을사오적(이완용, 이근택, 이지용, 박제순, 권중현)을 처단하기로 마음먹고 1909년 종현천주교회(현 서울 명동성당)에서 1909년 12월 17일 사망한 벨기에 왕 레오폴트2세(Leopold II, 1835~1909, 재위1865~1909)의 추도식이 열리는데 이 때 이완용이 참석한다는 소식을 보고 변장하여 기다리고있다가 추도식에서 나오는 이완용을 칼로 여러차례 찌르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고 체포된다.
이후 이완용은 수술이 잘되어 목숨만은 건지지만 이재명은 이완용 살인 미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사형을 선고받고 1910년 9월 30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
초년
평안도 선천군에서 태어났고 어릴때 평양으로 이주해 살았다고 전해진다. 1904년 미국으로 노동이민을 가서 1906년 샌프란시스코에 이주했을 당시 1902년 먼저 와서 터를 다지고있던 안창호(1878~1938)가 설립했던 공립협회(애국계몽운동 단체)에 가입하여 활동하는데,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됨에 따라 대한제국의 외교권이 일제에게 넘어가면서 공립협회 내에서 을사늑약 체결에 찬성한 을사오적(이완용, 이근택, 이지용, 박제순, 권중현)과 친일 매국노들을 처단하여 국권을 수호하기위한 독립투쟁을 전개하기 위해 1907년 10월 일본 본토를 거쳐 다시 조선으로 귀국한다.
안중근의사보다 더 빠르게 거사시행준비
귀국 당시 이재명의 나이는 만 20세였는데, 1909년(융희2년) 22세일 때 조선통감부 초대 통감이였던 이토 히로부미(1841~1909)가 융희제(순종, 1874~1926, 재위1907~1910)와 평양을 방문하기로 계획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고자 공립협회 동지들과 평양역 부근에서 대기하여 거사를 치르기위해 잠복하고 있었는데 안창호가 이 거사를 시행하여 어떤 결과가 나도 융희제(순종)가 위험해질 수 있다는 상황을 우려하여 만류하게 되면서 거사를 포기하게 된다. 1909년 그해는 마침 10월 26일 안중근(1879~1910)의사가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는데 성공했다는 소식을 듣고 계획했던 거사가 완료되면서 다시 고향 평안도로 돌아오게 된다.
이완용 처단
이재명은 다른 거사를 기획하던 중 대한제국 내 내부의 적인 친일 매국노들을 먼저 처단하는 것이 국권을 수호하는 독립운동의 길이라고 믿어 을사늑약 체결에 찬성했던 을사5적에 대한 암살을 준비하게 된다.
본관 | 생몰년도 | 직위 | |
이완용 | 우봉 | 1858 ~ 1926 | 학부대신 |
이근택 | 전주 | 1865 ~ 1919 | 군부대신 |
이지용 | 1870 ~ 1928 | 내부대신 | |
박제순 | 반남 | 1858 ~ 1916 | 외부대신 |
권중현 | 안동 | 1854 ~ 1934 | 농상공부대신 |
1909년 12월 22일 종현천주교회(현 서울 명동성당)에서 5일전에 사망한 벨기에 왕 레오폴트2세(Leopold II, 1835~1909, 재위1865~1909)에 대한 추도식이 열릴 때 내각총리대신 자격으로 이완용이 참석한다는 소식을 전해듣게 되면서 변장하여 사람들 사이에서 잠복해있다가 추도식장에서 나오는 이완용에게 칼을 들고 달려들어 수차례 칼로 이완용을 찌른 뒤 죽었다고 판단하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지만 일제 순사에 의해 체포된다.
그러나 죽었다고 생각했던 이완용은 치명상을 입긴했지만 일제 외과 의사들이 집도한 수술로 겨우 목숨만은 건지게 되어버린다..
순국
이재명은 체포 후 기소되어 이완용 살인 미수 혐의로 재판을 받는데 오히려 이재명은 친일파 이완용과 일제의 악행을 꾸짖고 당당하게 스스로를 변호하면서 의지를 다지지만 결국 사형 선고가 1910년 5월 확정되고 경술국치로 일제에게 국권을 빼앗긴지 1달이 된 9월 30일, 서대문형무소에서 만23세라는 젊은나이로 교수형으로 순국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