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급 귀족 & 관리/조선

46대 영의정 한치형

Mintaka5 2026. 1. 8.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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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대 영의정 한치형([韓致亨], 1434~1502)

생몰년도와 재임기간은 모두 양력(율리우스력:당시 그레고리력 등장 이전)으로 썼음을 밝힌다. 

  전임 영의정 당시 재직 영의정 후임 영의정
영의
정대
45대 46대 47대
이름 신승선(愼承善) 한치형(韓致亨) 성준(成俊)
가문 거창 신씨(居昌 愼氏) 청주 한씨(淸州 韓氏) 창녕 성씨(昌寧 成氏)
당파 훈구파(勳舊波)
생몰
년도
1436.xx.xx ~ 1502.07.03
[세종19년~연산군8년]
1434.xx.xx ~ 1502.11.02
[세종17년~연산군8년]
1436.xx.xx ~ 1504.06.15
[세종19년~연산군10년]
재임
기간
1495.10.21 - 1497.05.01 1500.05.08 - 1502.11.02 1503.01.31 - 1504.05.17

 

출생

1434년(세종17년) 아버지 한질([韓𥑇], ?~?)과 어머니 양주 조씨(중군총제 조서[趙敍]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배경

1451년(문종2년)에 음서제로 관직에 진출하여 군직으로 관리생활을 시작한다. 음서 출신으로 요직들을 거치며 1455년 수양대군(미래의 세조)이 조선7대 임금 세조([世祖], 1417~1468, 재위1455-1468)로 즉위할 때 좌익원종공신[佐翼源從功臣] 3등에 책록된다. 세조 말년인 1467년 당상관에 올라 승지([承旨], 정3품 상계 당상관직)에임명되고 참판([參判], 종2품, 판서 보좌), 대사헌([大司憲], 종2품 사헌부 수장), 관찰사([觀察使], 종2품), 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 정2품)을 거쳐 판서([判書], 정2품, 육조 각 부서 장관직)에 임명되고 연산군([燕山君], 1476~1506, 재위1495-1506)대에 들어 3정승(우의정, 좌의정, 영의정)에이른다. 영의정에 재직 당시 자신을 포함하여 좌의정 성준 우의정 이극균과 함께 폐단을 바로잡을 시폐10조를 올렸다가 연산군에게 미움을 사는데 1502년 11월 영의정을 역임하고 있던 도중 사망하였지만 이후 1504년 연산군이 일으킨 갑자사화때 관작이 추탈되고 부관참시되며 일가족이 몰살당한다. 

 

관직

한치형은 한확([韓確], 1400~1456, 소혜왕후의 아버지)의 조카이면서 소혜왕후(인수대비)의 오빠이기도 하고 조선9대 임금 성종([成宗], 1457~1495, 재위1470-1495)의 외당숙이기도 할 만큼 왕실과 깊은 인척 관계를 맺고있었고 이러한 배경으로 1451년(문종2년)에 음서로 관직에 진출해 군직으로 관직생활이 시작되며 1455년 수양대군이 조선 7대 임금 세조([世祖], 1417~1468, 재위1455-1468)로 즉위할 때 좌익원종공신[佐翼源從功臣] 3등에 책록되기도 한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음서로 진출한 인물치고는 요직을 두루 거치면서 세조 말년인 1467년(세조13년)에 승지([承旨])로 임명되며 당상관에 제수되고 예종([譽宗], 1450~1470, 재위1468-1470)대에 들어 참판([參判], 종2품, 판서보좌)에 이른다. 이후 성종([成宗], 1457~1495, 재위1470-1495)이 즉위한 이후에 들어 대사헌([大司憲], 종2품, 사헌부 수장), 판서([判書], 정2품, 육조 각 부서 장관직)와 성종 말대에 좌참찬([左參贊], 정2품, 정승 보좌)에 이른다. 1495년 연산군([燕山君], 1476~1506, 재위1495-1506)이 즉위한 직후에 우찬성([右贊成], 종1품)과 좌찬성([左贊成], 종1품)을 거쳐 우의정([右議政], 정1품, 3정승중 3위)에 임명되면서 정승의 반열에 오르고 좌의정([左議政], 정1품, 3정승중 2위)을 거쳐 1500년(연산군6년)에 영의정([領議政], 정1품, 3정승중 1위)에 이른다. 

 

시폐십조

1502년(연산군8년) 3월, 3정승 영의정 한치형과 좌의정 성준([成俊], 1436~1504), 우의정 이극균([李克均], 1437~1504)이 연산군([燕山君], 1476~1506, 재위1495-1506)에게 왕이 학문을 정진하고 부패가 일삼는 정치 폐단을 바로잡고자 하는 의지가 담긴 시폐10조([時弊十條], 시정을 바로잡기 위한 10가지 정책적 건의)를 올린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 갈수록 심해지는 연산군의 폭정과 정치 불안정등은 이미 정도를 넘었고 시폐10조를 바친 3정승은 연산군에게 계속하여 시폐10조를 올리지만 연산군은 이를 무시해버리고 이들의 뜻은 관철되지 못한다.  

 

말년

시폐십조가 관철되지 못한 채 영의정직을 역임하고 있던 한치형은 이미 건강이 좋지 않은 상태로 1502년 11월 2일 68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한치형이 사망한 지 2년이 지난 1504년(연산군10년), 연산군이 어머니 폐비 윤씨([廢妃 尹氏], 1455~1482)가 억울하게 사사당했다는 것에 대한 보복으로 왕권 강화까지 도모하고자 한 사건인 갑자사화([甲子士禍], 1504)가 터진다. 연산군은 1479년(성종10년) 모친인 폐비 윤씨가 폐위될 때 폐비론에 찬성한 훈구파 대신들을 모두 숙청하는데, 이 때 이미 죽은 한치형 역시 부관참시([剖棺斬屍], 이미 죽은 사람을 관에서 꺼내 참수하는 형벌을 당하고 한치형의 가족들이 몰살당하게 된다. 이후 1506년에 진성대군([晉城大君], 미래의 중종)을 주축으로 한 중종반정([中宗反正], 1506)이 일어나 연산군이 폐위되고 진성대군이 조선11대 중종([中宗], 1488~1544, 재위1506-1544)으로 즉위하게 되면서 한치형을 포함한 숙청된 훈구파 대신들이 복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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