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대 영의정 신승선([愼承善], 1436~1502)
생몰년도와 재임기간은 모두 양력(율리우스력:당시 그레고리력 등장 이전)으로 썼음을 밝힌다.
| 전임 영의정 | 당시 재직 영의정 | 후임 영의정 | |
| 영의 정대 수 |
44대 | 45대 | 46대 |
| 이름 | 노사신(盧思愼) | 신승선(愼承善) | 한치형(韓致亨) |
| 가문 | 교하 노씨(交河 盧氏) | 거창 신씨(居昌 愼氏) | 청주 한씨(淸州 韓氏) |
| 당파 | 훈구파(勳舊波) | ||
| 생몰 년도 |
1427.xx.xx ~ 1498.xx.xx [세종10년~연산군4년] |
1436.xx.xx ~ 1502.07.13 [세종19년~연산군8년] |
1434.xx.xx ~ 1502.10.30 [세종17년~연산군8년] |
| 재임 기간 |
1495.04.14 - 1495.10.03 | 1495.10.21 - 1497.05.01 | 1500.05.08 - 1502.11.02 |
출생
1436년(세종19년) 조선 한성부에서 아버지 관찰사 신전([愼詮], ?~?)과 어머니 순흥 안씨(안강[安강]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배경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영의정을 역임한 왕실 외척으로, 연산군의 장인이기도 하다. 1444년(세종27년)에 조선4대 임금 세종([世宗], 1397~1450, 재위1418-1450)의 적4남인 임영대군 이구([臨瀛大君 李璆], 1420~1469)의 여식인 중모현주 이씨([中牟縣主], 1435~?)와 혼인하였다. 1454년(단종3년)에 사마시에 급제하고 1456년(세조2년)에 음서로 관직에 진출하고 이후 요직들을 거쳐 1466년(세조12년)에 알성시 문과에 장원 급제하였고 이조참판([吏曺參判], 종2품)에 이른다. 이후 성종([成宗], 1457~1495, 재위1470-1495)대에 들어 자헌대부([資憲大夫], 정2품 하계 품계명)에 이르고, 판서([判書], 정2품, 육조 각 부서 장관)를 거쳐 좌참찬([左參贊], 정2품)에 이를 때인 1487년(성종18년)에 성종이 신승선의 딸을 세자빈으로 들여 당시 세자였던 연산군([燕山君], 1476~1506, 재위1495-1506)의 장인이 되게 된다. 1494년(성종25년)에 우의정([右議政], 정1품, 3정승중 3위)에 승차되고 1495년(연산군 원년)에 좌의정([左議政], 정1품, 3정승중 2위)을 거쳐 그해 말 영의정([領議政], 정1품, 3정승중 1위)에 이른다. 신승선의 아들 신수근([愼守勤], 1450~1506)은 자신의 딸이 중종([中宗], 1488~1544, 재위1506-1544)과 혼인하면서 중종의 장인이 되기도 한다.
초년과 관직
I. 임영대군의 사위
1444년, 신승선은 조선4대 임금 세종([世宗], 1397~1450, 재위1418-1450)의 적4남인 임영대군 이구([臨瀛大君 李璆], 1420~1469)의 딸인 중모현주 이씨([中牟縣主], 1435~?)와 혼인한다. 당시 상당한 외모로 눈에띄인 신승선은 1454년(단종3년)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여러차례 과거에 응시하지만 여러차례 낙방하다가 세조([世祖], 1417~1468, 재위1455-1468)가 즉위한 직후인 1456년(세조2년)에 음서로 관리가 되어 관직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임영대군은 계유정난([癸酉靖亂], 1453)당시 유일하게 형 수양대군(미래의 세조)을 지지하던 인물이였기에 세조는 동생 임영대군의 사위인 신승선을 아꼈다. 음서 출신으로 역임하기 힘든 청요직등을 거치면서 수많은 반대파의 공격을 받기도 하는데 이에 세조는 신승선에게 1466년(세조12년)초에 열리는 알성시 문과에 도전해보라고 독려하고 신승선이 이 때 과거에서 장원으로 급제하게 된다. 그러나 반대파는 더욱이 신승선이 뒷배경의 영향으로 장원했다는 것에 불만을 품고 비난을 일삼지만 세조는 아랑곳하지 않고 장원급제 한 뒤 1개월 뒤에 이조참판([吏曺參判], 종2품)에 임명하게 된다.
II. 예종, 성종 시기
1468년 세조가 승하하고 즉위한 조선 8대 임금예종([譽宗], 1450~1470, 재위1468-1470)대에 신승선은 예종이 즉위한지 1개월이 채 되지 않은시점에 터진 남이-강순의 난([南怡-康純之 亂], 1468.10.24)에 효과적으로 난을 정리한 것에대한 공으로 추충정난익대공신(推忠定難翊戴功臣) 3등에 책록되어 가선대부([嘉善大夫], 종2품 하계 품계명)에 가좌된다. 1470년 1월 9일, 예종이 승하하고 세조의 장남이자 왕세자였던 의경세자([懿敬世子], 추존 덕종[德宗], 1438~1457)의 차남인 잘산군 이혈([乽山君 李娎], 미래의 성종)이 조선 9대 임금 성종([成宗], 1457~1495, 재위1470-1495)으로 즉위한다. 신승선은 성종 즉위 직후 좌리공신([佐理功臣], 성종의 즉위를 도운 공신)3등에 책록되고 1472년(성종3년)에 자헌대부([資憲大夫], 정2품 하계 품계명)에 가좌되고 거창군(居昌君)에 봉해진다. 이후 졸곧 승진하다가 1480년대에 들어 판서([判書], 정2품, 육조 각 부서 장관)에 이르고 1487년(성종18년)에 성종이 신승선의 딸을 왕세자 융(연산군)의 세자빈으로 삼아 신승선은 연산군의 장인이 됨과 동시에 정헌대부([正憲大夫], 정2품 상계 품계명)에 가좌되고 좌참찬([左參贊], 정2품)에 임명된다. 이후 1494년(성종25년) 숭록대부([崇綠大夫], 종1품 상계 품계명)에 가좌되고 1494년 말 대광보국숭록대부([大匡輔國崇綠大夫], 정1품 상계 품계명)에 가좌됨과 동시에 우의정([右議政], 정1품, 3정승중 3위)에 임명되기에 이른다.
III. 연산군 시기
우의정으로 재직하고 있을 당시 1495년 1월 29일, 성종이 승하하고 신승선의 사위이자 왕세자인 연산군 이융이 조선10대 임금으로 즉위한다. 연산군은 즉위 당시 19세로 할머니이자 대왕대비인 인수대비([仁粹大妃], 1437~1504, 소혜왕후)가 어린 연산군을 보필할 인물로 신승선을 택해 좌의정([左議政], 정1품, 3정승중 2위)에 임명케 하여 연산군을 보필하게끔 하였고 1495년 10월에는 영의정([領議政], 정1품, 3정승중 1위)에 임명하여 보필하게끔 한다. 특히 신승선은 1495년 연산군이 즉위한 직후부터 수년간 성종실록(成宗實綠)편찬을 주관하기도 하였는데 이미 60이 넘은 고령인 신승선은 연산군에게 여러차례 사직상소를 내지만 반려당하고 겨우겨우 1500년(연산군6년)에 연산군으로부터 사직을 허락받아 정치일선에서 물러난다.
최후
정치에서 물러나 병중이였던 신승선은 휴식하면서 병세를 돌봄에도 불구하고 위독해지는 병세를 이기지 못하고 1502년 7월 13일, 66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사후 사건들
신승선이 사망한 이후2년이 지난 1504년(연산군10년), 연산군([燕山君], 1476~1506, 재위1495-1506)은 어머니 폐비 윤씨([廢妃尹氏], 1455~1482)가 억울하게 사망한것에 대한 분노를 왕권강화의 수단으로 활용하기 위해 갑자사화([甲子士楇], 1504)를 일으키는데, 이때의 피바람으로 조정에 광풍이 불고 폐비 윤씨의 사사에 사소하게 연관이 되어있는 신하들도 모두 숙청을 해버린다. 이후 1506년 진성대군(미래의 중종)을 중심으로 한 중종반정([中宗反正], 1506)이 일어나면서 연산군이 폐위됨과 동시에 왕비 신씨도 폐위되고 폐비 신씨의 아버지이자 신승선의 장남인 신수근([愼守勤], 1450~1506)은 주살된다. 이후 중종([中宗], 1488~1544, 재위1506-1544)이 즉위하는데 진성대군 시절 혼인한 신수근의 딸 신씨가 단경왕후([端敬王后], 1487~1558)로 즉위하지만 대신들이 역적의 딸로 연좌죄를 적용시켜 폐출되게 된다.
'고위급 귀족 & 관리 > 조선' 카테고리의 다른 글
| 47대 영의정 성준 (0) | 2026.01.09 |
|---|---|
| 46대 영의정 한치형 (0) | 2026.01.08 |
| 42대 영의정 윤필상 (0) | 2026.01.04 |
| 39대 영의정 윤자운 (0) | 2026.01.03 |
| 36대 영의정 박원형 (0) | 2026.01.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