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대 영의정 윤자운([尹子雲], 1416~1478)
생몰년도와 재임기간은 모두 양력(그레고리력 적용 이전이라 율리우스력 적용)으로 표시했음을 밝힌다.
| 전임 영의정 | 당시 재직 영의정 | 후임 영의정 | |
| 영의 정대 수 |
38대 | 39대 | 40대 |
| 이름 | 홍윤성(洪允成) | 윤자운(尹子雲) | 신숙주(申叔舟) |
| 가문 | 회인 홍씨(懷仁 洪氏) | 무송 윤씨(茂松 尹氏) | 고령 신씨(高靈 申氏) |
| 당파 | 훈구파(勳舊波) | ||
| 생몰 년도 |
1425.xx.xx ~ 1475.10.16 [세종8년~성종6년] |
1416.xx.xx ~ 1478.06.23 [태종17년~성종9년] |
1417.08.02 ~ 1475.07.23 [태종18년~성종6년] |
| 재임 기간 |
1469.09.27 - 1470.05.06 | 1470.05.06 - 1471.12.04 | 1471.12.04 - 1475.07.23 |
출생
1416년 조선 전라도 고창(高敞)에서 아버지 윤경연([尹景淵], 윤회의 아들, 신숙주의 장인)과 어머니 연안 이씨(이백인[李伯仁]의 딸, ?~1460)사이에서 태어났다.
배경
조선 전기 영의정을 역임한 문신으로 조선4대 임금인 세종치세 때 집현전학사를 역임한 윤회의 손자이다. 1438년(세종21년) 사마시에 합격한 후 1444년(세종27년)에 열린 식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관직에 올라 예문관검열([藝文館檢閱],정9품)에 임명된다. 집현전 부수찬시절 정인지([鄭麟趾], 1396~1478)와 함께 고려사 편찬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1453년 계유정난이 터졌을 때 수양대군과 함께 정난에 참여하고 그 공으로 수양대군이 세조로 즉위하였을 때 추충좌익공신(推忠佐翼攻臣)에 책록되고 도승지([都承旨], 정3품상계, 승지중 우두머리, 현재의 대통령 비서실장)에 승차되기도 한다. 세조 치세때 판서([判書], 정2품, 육조 부서 장관직), 우참찬([右參贊], 정2품), 우찬성([右贊成], 종1품), 우의정([右議政], 정1품, 3정승중 3위), 좌의정([左議政], 정1품, 3정승중 2위)을 거쳐 1469년(예종2년)에 영의정([領議政], 정1품, 3정승중 1위)으로 승차한다. 평생동안 탄핵을 받은적이 없을 만큼 치밀하고 조용한 성격이였다고 한다.
관직
1416년 전라도 고창에서 세종([世宗], 1397~1450, 재위1418-1450)의 총애를 받은 집현전학사 윤회([尹淮], 1380~1436)의 아들인 윤경연([尹景淵], ?~?)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438년(세종21년)에 사마시에 합격한 뒤 1444년(세종27년)에 열린 식년시 문과에 병과(갑과[甲科]:1-3등, 을과[乙科]:4-10등, 병과[丙科]:11-33등)로 급제하여 예문관검열([藝文館檢閱],정9품)에 임명됨을 시작으로 관직생활이 시작된다. 요직들을 두루 거치면서 집현전 부수찬([副修撰], 종6품)으로 있을 시기 수사관(修史官)으로서 정인지([鄭麟趾], 1396~1478)와 함께 [고려사(高麗史)]편찬 작업에도 참여하는 행보를 보이기도 한다.
계유정난
1453년(단종2년)에 수양대군 이유(미래의 세조)가 계유정난을 일으켰을 때 윤자운은 수양대군 아래서 요속(僚屬)으로 활약하였고, 이후 수양대군이 조카 단종([端宗], 1441~1457, 재위1452-1455)을 지키던 문종이 임명한 세명의 고명대신 영의정 황보인([皇甫仁], 1387~1453), 우의정 정분([鄭苯], 1394~1454), 좌의정 김종서([金宗瑞], 1383~1453)등을 주살함으로서 정난이 성공으로 끝나고 1455년 단종이 수양대군에게 양위하는 형식으로 수양대군이 조선7대 임금 세조([世祖], 1417~1468, 재위1455-1468)로 즉위하였을 때 추충좌익공신(推忠佐翼攻臣)에 책록되고 도승지([都承旨], 정3품상계, 승지중 우두머리, 현재의 대통령 비서실장)에 승차된다.
이후 행보
도승지를 역임하고 있을 때인 1460년 어머니 연안 이씨가 사망하면서 잠시 관직에서 물러났다가 한참 3년상을 치르고 있던 때인 1460년말, 세조가 모련위(毛憐衛)를 정벌하고자 할 때 윤자운을 불러들여 이조참판([吏曺參判], 종2품, 판서 보좌)과 무송군(茂松君)에 봉해 군사를 지휘하게끔 하였다. 이후 돌아와서도 3년상 치르기를 원했으나 세조가 이를 허락하지 아니하였고 곧바로 1462년(세조8년) 병조판서([兵曺判書], 정2품, 부서 장관직)에 오르고 1465년(세조11년)에 우참찬([右參贊], 정2품), 1466년(세조12년) 좌참찬([左參贊], 정2품), 1467년(세조13년)에 우찬성([右贊成], 종1품)에 이른다. 1467년 우찬성을 맡고 있을 시기 함길도에서 이시애의 난([李施愛之亂], 1467.05-1467.08)이 일어나게 되면서 세조는 윤자운을 함길도체찰사(咸吉道體察使)에 임명하여 난을 진압케끔 하고 이후 돌아와 우의정([右議政], 정1품, 3정승중 3위), 좌의정([左議政], 정1품, 3정승중 2위)을 거쳐 1470년(예종3년)에 영의정([領議政], 정1품, 3정승중 1위)에 이른다. 영의정을 역임하고 우의정에 다시 오르는등의 행보를 보이다가 1478년(성종9년)에 62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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