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급 귀족 & 관리/조선

39대 영의정 윤자운

Mintaka5 2026. 1. 3.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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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대 영의정 윤자운([尹子雲], 1416~1478)

생몰년도와 재임기간은 모두 양력(그레고리력 적용 이전이라 율리우스력 적용)으로 표시했음을 밝힌다. 

  전임 영의정 당시 재직 영의정 후임 영의정
영의
정대
38대 39대 40대
이름 홍윤성(洪允成) 윤자운(尹子雲) 신숙주(申叔舟)
가문 회인 홍씨(懷仁 洪氏) 무송 윤씨(茂松 尹氏) 고령 신씨(高靈 申氏)
당파 훈구파(勳舊波)
생몰
년도
1425.xx.xx ~ 1475.10.16
[세종8년~성종6년]
1416.xx.xx ~ 1478.06.23
[태종17년~성종9년]
1417.08.02 ~ 1475.07.23
[태종18년~성종6년]
재임
기간
1469.09.27 - 1470.05.06 1470.05.06 - 1471.12.04 1471.12.04 - 1475.07.23

 

출생

1416년 조선 전라도 고창(高敞)에서 아버지 윤경연([尹景淵], 윤회의 아들, 신숙주의 장인)과 어머니 연안 이씨(이백인[李伯仁]의 딸, ?~1460)사이에서 태어났다. 

 

배경

조선 전기 영의정을 역임한 문신으로 조선4대 임금인 세종치세 때 집현전학사를 역임한 윤회의 손자이다. 1438년(세종21년) 사마시에 합격한 후 1444년(세종27년)에 열린 식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관직에 올라 예문관검열([藝文館檢閱],정9품)에 임명된다. 집현전 부수찬시절 정인지([鄭麟趾], 1396~1478)와 함께 고려사 편찬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1453년 계유정난이 터졌을 때 수양대군과 함께 정난에 참여하고 그 공으로 수양대군이 세조로 즉위하였을 때 추충좌익공신(推忠佐翼攻臣)에 책록되고 도승지([都承旨], 정3품상계, 승지중 우두머리, 현재의 대통령 비서실장)에 승차되기도 한다. 세조 치세때 판서([判書], 정2품, 육조 부서 장관직), 우참찬([右參贊], 정2품), 우찬성([右贊成], 종1품), 우의정([右議政], 정1품, 3정승중 3위), 좌의정([左議政], 정1품, 3정승중 2위)을 거쳐 1469년(예종2년)에 영의정([領議政], 정1품, 3정승중 1위)으로 승차한다. 평생동안 탄핵을 받은적이 없을 만큼 치밀하고 조용한 성격이였다고 한다. 

 

관직

1416년 전라도 고창에서 세종([世宗], 1397~1450, 재위1418-1450)의 총애를 받은 집현전학사 윤회([尹淮], 1380~1436)의 아들인 윤경연([尹景淵], ?~?)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438년(세종21년)에 사마시에 합격한 뒤 1444년(세종27년)에 열린 식년시 문과에 병과(갑과[甲科]:1-3등, 을과[乙科]:4-10등, 병과[丙科]:11-33등)로 급제하여 예문관검열([藝文館檢閱],정9품)에 임명됨을 시작으로 관직생활이 시작된다. 요직들을 두루 거치면서 집현전 부수찬([副修撰], 종6품)으로 있을 시기 수사관(修史官)으로서 정인지([鄭麟趾], 1396~1478)와 함께 [고려사(高麗史)]편찬 작업에도 참여하는 행보를 보이기도 한다. 

 

계유정난

1453년(단종2년)에 수양대군 이유(미래의 세조)가 계유정난을 일으켰을 때 윤자운은 수양대군 아래서 요속(僚屬)으로 활약하였고, 이후 수양대군이 조카 단종([端宗], 1441~1457, 재위1452-1455)을 지키던 문종이 임명한 세명의 고명대신 영의정 황보인([皇甫仁], 1387~1453), 우의정 정분([鄭苯], 1394~1454), 좌의정 김종서([金宗瑞], 1383~1453)등을 주살함으로서 정난이 성공으로 끝나고 1455년 단종이 수양대군에게 양위하는 형식으로 수양대군이 조선7대 임금 세조([世祖], 1417~1468, 재위1455-1468)로 즉위하였을 때 추충좌익공신(推忠佐翼攻臣)에 책록되고 도승지([都承旨], 정3품상계, 승지중 우두머리, 현재의 대통령 비서실장)에 승차된다. 

 

이후 행보

도승지를 역임하고 있을 때인 1460년 어머니 연안 이씨가 사망하면서 잠시 관직에서 물러났다가 한참 3년상을 치르고 있던 때인 1460년말, 세조가 모련위(毛憐衛)를 정벌하고자 할 때 윤자운을 불러들여 이조참판([吏曺參判], 종2품, 판서 보좌)과 무송군(茂松君)에 봉해 군사를 지휘하게끔 하였다. 이후 돌아와서도 3년상 치르기를 원했으나 세조가 이를 허락하지 아니하였고 곧바로 1462년(세조8년) 병조판서([兵曺判書], 정2품, 부서 장관직)에 오르고 1465년(세조11년)에 우참찬([右參贊], 정2품), 1466년(세조12년) 좌참찬([左參贊], 정2품), 1467년(세조13년)에 우찬성([右贊成], 종1품)에 이른다. 1467년 우찬성을 맡고 있을 시기 함길도에서 이시애의 난([李施愛之亂], 1467.05-1467.08)이 일어나게 되면서 세조는 윤자운을 함길도체찰사(咸吉道體察使)에 임명하여 난을 진압케끔 하고 이후 돌아와 우의정([右議政], 정1품, 3정승중 3위), 좌의정([左議政], 정1품, 3정승중 2위)을 거쳐 1470년(예종3년)에 영의정([領議政], 정1품, 3정승중 1위)에 이른다. 영의정을 역임하고 우의정에 다시 오르는등의 행보를 보이다가 1478년(성종9년)에 62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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