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급 귀족 & 관리/조선

42대 영의정 윤필상

Mintaka5 2026. 1. 4.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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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대 영의정 윤필상([尹弼商], 1427~1504)

생몰년도와 재임기간은 모두 양력(율리우스력: 당시 그레고리력 등장 전)으로 썼음을 밝힌다. 

  전임 영의정 당시 재직 영의정  후임 영의정
영의
정대
41대 42대 43대
이름 정창손(鄭昌孫) 윤필상(尹弼商) 이극배(李克培)
가문 동래 정씨(東來 鄭氏) 파평 윤씨(坡平 尹氏) 광주 이씨(廣州 李氏)
당파 훈구파(勳舊波)
생몰
년도
1402.03.11 ~ 1487.01.27
[태종3년~성종18년]
1427.xx.xx ~ 1504.xx.xx
[세종10년~연산군10년]
1422.xx.xx ~ 1495.06.02
[세종5년~연산군 원년]
재임
기간
1475.08.02 - 1485.04.11 1485.04.12 - 1493.12.07 1493.12.14 - 1495.04.14

 

 

출생

1427년 조선 충청도 청양현(현 충남 청양군)에서 아버지 윤경([尹坰], ?~?)과 어머니 함안 이씨(이림[李霖]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배경

조선 전기 문신이자 영의정을 역임한 인물로, 고려 건국당시 공신으로 이름난 윤신달([尹辛達], 893~973)의 후손이자 조선4대 임금 세종, 7대 세조, 9대 성종대에 걸친 외척으로서 이름높았던 인물이다. 1447년(세종30년) 사마시에 합격하고 1450년(세종33년) 문과에 급제하여 저작([著作], 정8품)으로 임명되어 관리생활이 시작된다. 1457년(세조3년)엔 중시 문과에 급제하였고 이후 더욱 관직이 높아지고 세조([世祖], 1417~1468, 재위1455-1468)의 총애를 받아 승진이 빨라져1464년 도승지에 임명된 이후 책무를 잘 수행한 공로로 우참찬([右參贊], 정2품)에 오르고 파평군(坡平君)에 봉해진다. 이후로도 계속 승진하여 성종([成宗], 1457~1495, 재위1470-1495)대인 1485년 영의정([領議政], 정1품, 3정승중 1위)에 오르고 파평부원군에 봉해지고 70살이 되는 1496년(연산군2년)에 궤장까지 하사받지만 1504년(연산군10년) 갑자사화때 연산군([燕山君], 1476~1506, 재위1495-1506)으로부터 연산군의 생모 폐비 윤씨([廢妃 尹氏], 1455~1482)의 폐위를 막지 않은 인물로 죄지은 것으로 되어 유배지에서 사사를 명 받으나 스스로 목매어 자결한다.  

 

급제와 관직

I. 세조 시기

20세 때인 1447년(세종30년) 사마시에 합격하고 1450년(세종33년)문과에 급제하여 저작([著作], 정8품)으로 관직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저작으로 관직생활을 하던 1455년 영의정이던 수양대군 이유(미래의 세조)가 조카인 단종([端宗], 1441~1457, 재위1452-1455)을 상왕으로 몰아내고 왕위에 올라 원종공신 2등([原從功臣, 보조역할 한 공신)에 책록되고 1457년(세조3년)엔 중시 문과에 급제하고 승진이 빨라진다. 1463년(세조9년) 동부승지([同副承旨], 정3품 상계 당상관직), 1464년(세조10년)엔 도승지([都承旨], 정3품 상계 당상관직, 승지중 우두머리, 현재의 대통령 비서실장)에 올라 최측근에서 세조([世祖], 1417~1468, 재위1455-1468)를 보필하며 총애를 받았고 1467년(세조13년)에 발생한 이시애의 난([李施愛之亂], 1467.05-1467.08)때 신속하게 일처리를 하고 난 사후 뛰어난 업무처리 능력을 보여 정2품 우참찬([右參贊], 정2품)에 승차되고 파평군(坡平君)에 봉해지게 된다.  

 

II. 성종 시기

우참찬에 임명되고 난 후 예종([禮宗], 1450~1470, 재위1468-1470)을 거쳐 성종([成宗], 1457~1495, 재위1470-1495)시기에 들어 경상도관찰사([慶尙道觀察使], 종2품), 1474년(성종5년)엔 이조판서([吏曺判書], 정2품, 각 부서 장관직)에 오르지만 1477년(성종8년)에 백성들의 재산을 뺏어 개인적으로 착복했다는 혐의로 탄핵을 받아 관직에서 파직당하나 1478년(성종9년) 다시 복직되어 좌찬성([左贊成], 종1품), 1481년(성종12년)에 명나라에 파견될 사은사([謝隱使], 명나라에 대한 은혜에 보답하기위해 보내진 사신)로 임명되어 명나라 황제 성화제([成化帝], 1447~1487, 재위1464-1487)를 알현하기도 한다. 사은사로 다녀온 뒤 1485년(성종16년)에 영의정([領議政], 정1품, 3정승중 1위)에 임명되고 파평부원군(坡平府院君)에 봉해진다. 

 

갑자사화와 최후 

1485년 영의정에 임명된 이후 8년간(1485-1493)영의정을 역임하면서 성종을 보필하고 정치를 이끌어가고 있다가 1493년(성종24년) 불교를 숭상한다는 죄목으로 탄핵당해 파직되었고 1495년 초 성종이 승하하고 연산군([燕山君], 1476~1506, 재위1495-1506)이 즉위한 이후엔 기로소([耆老所], 관직에서 물러난 원로 문신들을 예우하기 위해 설치한 관청)에 들어가고 원로 자문역할을 도맡아오다가 70세가 되던 1496년(연산군2년)에 연산군으로부터 궤장([几杖], 70세이상의 신하에게 하사하는 예우품)을 하사받는다. 1498년(연산군4년)에 발생한 무오사화때는 사림파를 숙청하는데 가담하였고 이후로도 원로로서 잘 해오다가 1504년(연산군10년)에 갑자사화가 발생하면서 윤필상은 연산군의 어머니 폐비 윤씨([廢妃 尹氏], 1455~1482)가 폐위될 때 폐위를 막지 않았다는 죄목이 씌어져 전라도 진도(현 전남 진도군)에 유배되고 유배지에서 사사를 명 받으나 자결하여 목숨을 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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