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대 영의정 윤필상([尹弼商], 1427~1504)
생몰년도와 재임기간은 모두 양력(율리우스력: 당시 그레고리력 등장 전)으로 썼음을 밝힌다.
| 전임 영의정 | 당시 재직 영의정 | 후임 영의정 | |
| 영의 정대 수 |
41대 | 42대 | 43대 |
| 이름 | 정창손(鄭昌孫) | 윤필상(尹弼商) | 이극배(李克培) |
| 가문 | 동래 정씨(東來 鄭氏) | 파평 윤씨(坡平 尹氏) | 광주 이씨(廣州 李氏) |
| 당파 | 훈구파(勳舊波) | ||
| 생몰 년도 |
1402.03.11 ~ 1487.01.27 [태종3년~성종18년] |
1427.xx.xx ~ 1504.xx.xx [세종10년~연산군10년] |
1422.xx.xx ~ 1495.06.02 [세종5년~연산군 원년] |
| 재임 기간 |
1475.08.02 - 1485.04.11 | 1485.04.12 - 1493.12.07 | 1493.12.14 - 1495.04.14 |
출생
1427년 조선 충청도 청양현(현 충남 청양군)에서 아버지 윤경([尹坰], ?~?)과 어머니 함안 이씨(이림[李霖]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배경
조선 전기 문신이자 영의정을 역임한 인물로, 고려 건국당시 공신으로 이름난 윤신달([尹辛達], 893~973)의 후손이자 조선4대 임금 세종, 7대 세조, 9대 성종대에 걸친 외척으로서 이름높았던 인물이다. 1447년(세종30년) 사마시에 합격하고 1450년(세종33년) 문과에 급제하여 저작([著作], 정8품)으로 임명되어 관리생활이 시작된다. 1457년(세조3년)엔 중시 문과에 급제하였고 이후 더욱 관직이 높아지고 세조([世祖], 1417~1468, 재위1455-1468)의 총애를 받아 승진이 빨라져1464년 도승지에 임명된 이후 책무를 잘 수행한 공로로 우참찬([右參贊], 정2품)에 오르고 파평군(坡平君)에 봉해진다. 이후로도 계속 승진하여 성종([成宗], 1457~1495, 재위1470-1495)대인 1485년 영의정([領議政], 정1품, 3정승중 1위)에 오르고 파평부원군에 봉해지고 70살이 되는 1496년(연산군2년)에 궤장까지 하사받지만 1504년(연산군10년) 갑자사화때 연산군([燕山君], 1476~1506, 재위1495-1506)으로부터 연산군의 생모 폐비 윤씨([廢妃 尹氏], 1455~1482)의 폐위를 막지 않은 인물로 죄지은 것으로 되어 유배지에서 사사를 명 받으나 스스로 목매어 자결한다.
급제와 관직
I. 세조 시기
20세 때인 1447년(세종30년) 사마시에 합격하고 1450년(세종33년)문과에 급제하여 저작([著作], 정8품)으로 관직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저작으로 관직생활을 하던 1455년 영의정이던 수양대군 이유(미래의 세조)가 조카인 단종([端宗], 1441~1457, 재위1452-1455)을 상왕으로 몰아내고 왕위에 올라 원종공신 2등([原從功臣, 보조역할 한 공신)에 책록되고 1457년(세조3년)엔 중시 문과에 급제하고 승진이 빨라진다. 1463년(세조9년) 동부승지([同副承旨], 정3품 상계 당상관직), 1464년(세조10년)엔 도승지([都承旨], 정3품 상계 당상관직, 승지중 우두머리, 현재의 대통령 비서실장)에 올라 최측근에서 세조([世祖], 1417~1468, 재위1455-1468)를 보필하며 총애를 받았고 1467년(세조13년)에 발생한 이시애의 난([李施愛之亂], 1467.05-1467.08)때 신속하게 일처리를 하고 난 사후 뛰어난 업무처리 능력을 보여 정2품 우참찬([右參贊], 정2품)에 승차되고 파평군(坡平君)에 봉해지게 된다.
II. 성종 시기
우참찬에 임명되고 난 후 예종([禮宗], 1450~1470, 재위1468-1470)을 거쳐 성종([成宗], 1457~1495, 재위1470-1495)시기에 들어 경상도관찰사([慶尙道觀察使], 종2품), 1474년(성종5년)엔 이조판서([吏曺判書], 정2품, 각 부서 장관직)에 오르지만 1477년(성종8년)에 백성들의 재산을 뺏어 개인적으로 착복했다는 혐의로 탄핵을 받아 관직에서 파직당하나 1478년(성종9년) 다시 복직되어 좌찬성([左贊成], 종1품), 1481년(성종12년)에 명나라에 파견될 사은사([謝隱使], 명나라에 대한 은혜에 보답하기위해 보내진 사신)로 임명되어 명나라 황제 성화제([成化帝], 1447~1487, 재위1464-1487)를 알현하기도 한다. 사은사로 다녀온 뒤 1485년(성종16년)에 영의정([領議政], 정1품, 3정승중 1위)에 임명되고 파평부원군(坡平府院君)에 봉해진다.
갑자사화와 최후
1485년 영의정에 임명된 이후 8년간(1485-1493)영의정을 역임하면서 성종을 보필하고 정치를 이끌어가고 있다가 1493년(성종24년) 불교를 숭상한다는 죄목으로 탄핵당해 파직되었고 1495년 초 성종이 승하하고 연산군([燕山君], 1476~1506, 재위1495-1506)이 즉위한 이후엔 기로소([耆老所], 관직에서 물러난 원로 문신들을 예우하기 위해 설치한 관청)에 들어가고 원로 자문역할을 도맡아오다가 70세가 되던 1496년(연산군2년)에 연산군으로부터 궤장([几杖], 70세이상의 신하에게 하사하는 예우품)을 하사받는다. 1498년(연산군4년)에 발생한 무오사화때는 사림파를 숙청하는데 가담하였고 이후로도 원로로서 잘 해오다가 1504년(연산군10년)에 갑자사화가 발생하면서 윤필상은 연산군의 어머니 폐비 윤씨([廢妃 尹氏], 1455~1482)가 폐위될 때 폐위를 막지 않았다는 죄목이 씌어져 전라도 진도(현 전남 진도군)에 유배되고 유배지에서 사사를 명 받으나 자결하여 목숨을 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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