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대 영의정 박원형([朴元亨], 1411~1469)
생몰년도와 재임기간은 모두 양력(율리우스력, 저당시 그레고리오력이 적용되기 전임)으로 나타냈음을 밝힌다.
| 전임 영의정 | 당시 재직 영의정 | 후임 영의정 | |
| 영의 정대 수 | 35대 | 36대 | 37대 |
| 이름 | 귀성군[龜城君] 이준(李浚) | 박원형(朴元亨) | 한명회(韓明澮) |
| 가문 | 전주 이씨(全州 李氏) | 죽산 박씨(竹山 朴氏) | 청주 한씨(淸州 韓氏) |
| 당파 | 왕실 종친 | 훈구파(勳舊波) | |
| 생몰 년도 | 1441.01.20 ~ 1479.01.28 [세종24년~성종10년] | 1411.xx.xx ~ 1469.02.03 [태종12년~예종2년] | 1415.11.26 ~ 1487.11.28 [태종16년~성종18년] |
| 재임 기간 | 1468.08.04 - 1469.01.03 | 1469.01.03 - 1469.02.03 | 1469.02.04 - 1469.09.27 |
출생
1411년 조선 한성부에서 아버지 병조참의 박고([朴翶], ?~?)와 어머니 양성 이씨(이한[李瀚], ?~?)사이에서 태어났다.
배경
조선 전기 문신으로 36대 영의정을 역임한 인물이다. 병조참의를 지낸 박고[朴翶]의 아들로 태어나 1434년 알성시 문과에 급제한 뒤 관직을 얻어 의금부도사, 승문원 부교리, 병조좌랑, 판사복시사를 거치다가 1453년(단종2년) 계유정난이 터졌을 때 수양대군 이유(미래의 세조)를 도와 그 공로로 좌부승지([左副承旨], 정3품 상계 당상관직, 붉은색 관복)에 오른 뒤 1455년 수양대군이 세조([世祖], 1417~1468, 재위1455-1468)로 즉위하였을 때 도승지([都承旨], 정3품 당상관직, 승지 중 우두머리, 현재의 대통령 비서실장)에 승차되고 좌익공신 3등에 책록된다. 이후 세조 치세시기 줄곧 승진을 거듭하면서 1464년 우찬성([右贊成], 종1품), 1466년 우의정([右議政], 정1품, 3정승중 3위), 1467년 좌의정([左議政], 정1품, 3정승중 2위)을 거쳐 1469년 영의정([領議政], 정1품, 3정승중 1위)에 오르지만 영의정을 역임한지 1개월만에 사망한다.
관직
1434년(세종17년)에 열린 알성시 문과에 을과(갑과[甲科]:1-3등, 을과[乙科]:4-10등, 병과[丙科]:11-33등)로 급제하여 종7품 예빈시직장(禮賓寺直長)관직을 얻게 된다. 이후 1438년(세종21년)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 종6품), 1440년(세종23년) 승문원 부교리, 1441년(세종24년) 병조좌랑([兵曺佐郞], 정6품)에 오르고 이후 1450년(문종 원년) 조선5대 임금 문종([文宗], 1414~1452, 재위1450-1452)이 즉위하고 나서는 지제교([知製敎], 정3품이하 종6품미만까지 겸직)를 거쳐 문종 사후 단종([端宗], 1441~1457, 재위1452-1455)이 즉위하고 난 이듬해인 1453년(단종2년)엔 판사복시사([判司㒒寺事])가 된다.
계유정난
판사복시사 직책을 맡고 있던 1453년(단종2년)에 수양대군 이유(미래의 세조)가 계유정난을 일으킨다. 수양대군은 측근 한명회([韓明澮], 1415~1487)와 권람([權擥], 1416~1465, 권근의 손자)등과 함께 공모해 조카인 단종을 최측근에서 지키던 3명의 고명대신 영의정 황보인([皇甫仁], 1387~1453), 우의정 정분([鄭苯],1394~1454), 좌의정 김종서([金宗瑞], 1383~1453)등을 주살하기 전 박원형은 수양대군측에 서면서 계유정난에 직접적으로 연관이 된다. 정난이 성공으로 끝나고 수양대군 이유는 영의정에 오르고 사실상 권력을 틀어잡으며 단종을 허수아비 군주로 만든다. 박원형은 수양대군으로부터 정난 참여의 공으로 당상관직인 좌부승지([左副承旨], 정3품 상계 당상관직, 붉은색 관복)에 오르고 2년뒤 1455년 수양대군이 단종이 수양대군에게 양위하는 형식으로 수양대군이 조선7대 임금 세조([世祖], 1417~1468, 재위1455-1468)로 즉위하고 좌익공신3등에 책록되고 도승지([都承旨], 정3품 당상관직, 승지 중 우두머리, 현재의 대통령 비서실장)에 승차된다.
이후 행보
세조 즉위 이후 세조 치세때 대부분 승진을 거듭해 1462년 육조 중 으뜸인 이조의 판서(이조판서[吏曺判書], 정2품, 부서 장관)에 오르고 대제학([大提學], 학문을 관장하던 최고위직)에 오른 뒤 1464년 우찬성([右贊成], 종1품), 1466년 우의정([右議政], 정1품, 3정승중 3위)에 오른다. 1467년(세조13년) 5월에 이시애의 난([李施愛之亂], 1467.05-1467.08)이 발발하면서 박원형은 함길도존무사([咸吉道存撫使], 위무사)가 되어 함길도의 백성을 위무하는 임무를 맡게 되고 이 공로로 1467년 말에 좌의정([左議政], 정1품, 3정승중 2위)에 이른 뒤 예종([譽宗], 1450~1470, 재위1468-1470)이 즉위한 직후인 1469년 영의정([領議政], 정1품, 3정승중 1위)에 이르나 영의정을 역임한 지 1개월만에 58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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