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급 귀족 & 관리/조선

33대 영의정 최항

Mintaka5 2026. 1. 1.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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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대 영의정 최항([崔恒], 1409~1474)

생몰년도와 재임기간은 모두 양력(율리우스력, 그레고리오력 적용 이전)으로 적용하였음을 밝힌다.

  전임 영의정 당시 재직 영의정 후임 영의정
영의
정대
32대 33대 34대
이름 심회(沈澮) 최항(崔恒) 조석문(曺錫文)
가문 청송 심씨(靑松 沈氏) 삭녕 최씨(朔寧 崔氏) 창녕 조씨(昌寧 曺氏)
당파 훈구파(勳舊波)
생몰
년도
1418.xx.xx ~ 1493.xx.xx
[세종 원년~성종24년]
1409.xx.xx ~ 1474.05.22
[태종10년~성종5년]
1413.xx.xx ~ 1477.xx.xx
[태종14년~성종8년]
재임
기간
1467.06.21 - 1467.10.17 1467.10.17 - 1468.01.07 1468.01.07 - 1468.08.04

 

출생

1409년 조선 경기도 통진현(현 대한민국 경기도 김포시 양촌면 학운리)에서 아버지 최사유([崔士柔], 1372~1458)와 어머니 오씨(오혁충[吳奕忠]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배경

조선의 문신으로, 1426년(세종9년)에 열린 생원시, 사마시등에 합격하고 1434년(세종17년)알성시 문과에 장원(1등)으로 급제하여 곧바로 종6품에 해당하는 집현전 부수찬(副修撰)에 등극한다. 

 

초년과 관직

현 경기도 김포시인 조선 겨익도 통진현에서 태어나 1426년(세종9년) 17세의 나이로 생원시, 사마시등에 합격하고 1434년(세종17년)알성시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한다(1위). 장원을 한 덕분에 최항은 첫 관직으로 종6품에 해당하는 집현전 부수찬(副修撰)에 임명되게 된다. 집현전 부수찬을 지내면서 학사들과 함께 훈민정음(訓民正音)창제에 참여하는 행보를 보이기도 한다. 1444년(세종27년)에 집현전 교리([校理], 정5품)에 오르고 1445년(세종28년)집현전 응교([應敎], 종4품), 1447년 중시 문과에 을과(5위)로 급제하면서 집현전 직제학([直提學], 종3품)에 임명된다. 게다가 말년의 세종([世宗], 1397~1450, 재위1418-1450)의 건강이 악화됨에따라 왕세자 향(미래의 문종)으로 하여금 섭정을 맡기게 되는데 이 때 최항 역시 서연관[書筵官]에 임명되며 왕세자를 보좌하는 역할을 맡기도 한다. 

 

문종 즉위 후

서연관으로서 왕세자를 모시던 최항은 1450년 4월 8일 세종이 승하함에 따라 왕세자가 조선5대 임금 문종([文宗], 1414~1452, 재위1450-1452)으로 즉위하면서 언관([言官], 사헌부 또는 사간원의 간원)으로 활동하다가 집현전 부제학([副提學], 정3품 상계 당상관직, 실질적인 홍문관 수장)에 오르고 수많은 집필을 총괄하는 위치에 오르게 된다. 1452년 초 당상관(정3품상계 이상, 빨간색 관복)에 해당하는 동부승지([同副承旨], 정3품 상계, 승지중 최하위 승지)에 올랐으나 1453년(단종2년) 계유정난이 일어나면서 수양대군 이유(미래의 세조)를 맞이함에 있어 관직을 맡은 관리의 목록을 전달한 공으로 정난공신1등에 책록되고 수양대군이 영의정에 오르면서 최항은 도승지(승지중 우두머리, 현재의 대통령 비서실장)에 오르고 1454년(단종3년)에 참판([參判], 종2품 판서 보좌직)에 오른 뒤 대사헌([大司憲], 종2품 사헌부 수장직)에 오른다. 

 

세조 즉위 후

1455년, 조선6대 임금 단종([端宗], 1441~1457, 재위1452-1455)이 수양대군에 의해 폐위되고 수양대군이 조선7대 임금 세조([世祖], 1417~1468, 재위1455-1468)로 즉위함에 따라 최항은 좌익공신 2등에 책록되고 6조(이조, 호조, 예조, 병조, 형조, 공조)중 공조판서([工曺判書], 정2품 부서 장관직)에 오르고 이어 형조판서를 거쳐 예문관 대제학([大提學], 정2품), 1460년 이조판서([吏曺判書], 정2품 부서 장관직, 판서중 으뜸)와 우참찬([右參贊], 정2품, 의정부 삼정승 보좌)을 거쳐 1466년(세조12년)에 좌찬성([左贊成], 종1품)을 거쳐 1467년 우의정과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에 이른다. 

 

말년

3개월에 걸친 영의정을 1468년 1월에 사직하고 1470년 영성부원군(寧城府院君)에 봉해지고 1469년(예종2년)에 경국대전 상정소 도제조([都提調], 자문 최고위원, 주로 정승이 맡음)로서 [경국대전(經國大典)]을 찬수하고 상급 국상을 지내고 1474년 5월 22일, 65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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