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 146, 148대 영의정 최석정(崔錫鼎, 1646~1715)
| 전임 영의정 | 당시 재직 영의정 | 후임 영의정 | |
| 영의정대수 | 143대 | 144대 | 145대 |
| 이름 | 서문중(徐文重) | 최석정(崔錫鼎) | 서문중(徐文重) |
| 가문 | 대구 서씨(大丘 徐氏) | 전주 최씨(全州 崔氏) | 대구 서씨(大丘 徐氏) |
| 당파 (붕당) |
소론(少論) | ||
| 생몰년도 | 1634.xx.xx ~ 1709.xx.xx [인조12년~숙종36년] |
1646.07.02 ~ 1715.12.06 [인조24년~숙종42년] |
1634.xx.xx ~ 1709.xx.xx [인조12년~숙종36년] |
| 재임기간 | 1700.03.06 ~ 1701.05.04 | 1701.07.24 ~ 1701.10.31 | 1702.02.20 ~ 1702.11.18 |
| 전임 영의정 | 당시 재직 영의정 | 후임 영의정 | |
| 영의정대수 | 145대 | 146대 | 147대 |
| 이름 | 서문중(徐文重) | 최석정(崔錫鼎) | 신완(申琓) |
| 가문 | 대구 서씨(大丘 徐氏) | 전주 최씨(全州 崔氏) | 평산 신씨(平山 申氏) |
| 당파 (붕당) |
소론(少論) | 노론(老論) | |
| 생몰년도 | 1634.xx.xx ~ 1709.xx.xx [인조12년~숙종36년] |
1646.07.02 ~ 1715.12.06 [인조24년~숙종42년] |
1646.xx.xx ~ 1707.xx.xx [인조24년~숙종34년] |
| 재임기간 | 1702.02.20 ~ 1702.11.18 | 1703.03.27 ~ 1703.07.29 | 1703.09.16 ~ 1705.05.05 |
| 전임 영의정 | 당시 재직 영의정 | 후임 영의정 | |
| 영의정대수 | 147대 | 148대 | 149대 |
| 이름 | 신완(申琓) | 최석정(崔錫鼎) | 이여(李畬) |
| 가문 | 평산 신씨(平山 申氏) | 전주 최씨(全州 崔氏) | 덕수 이씨(德水 李氏) |
| 당파 (붕당) |
노론(老論) | 소론(少論) | 노론(老論) |
| 생몰년도 | 1646.xx.xx ~ 1707.xx.xx [인조24년~숙종34년] |
1646.07.02 ~ 1715.12.06 [인조24년~숙종42년] |
1645.xx.xx ~ 1718.xx.xx [인조23년~숙종45년] |
| 재임기간 | 1703.09.16 ~ 1705.05.05 | 1705.05.05 ~ 1710.04.24 | 1710.04.24 ~ 1710.09.10 |

출생
1646년 7월 2일, 조선 충청도 진천군 초평면에서 아버지 최후량(崔後亮, 1616~1693)과 어머니 안중임(安仲任, 1621~1673)사이에서 차남으로 태어났다.
배경
소론(少論)당색의 정치인으로 조선16대 인조(仁祖, 1595~1649, 재위1623~1649)때 영의정을 지낸 완성부원군 최명길(崔鳴吉, 1586~1647)의 손자이기도 하다. 숙종(肅宗, 1661~1720, 재위1674~1720)시기 영의정을 3차례 역임한 대신이며, 숙종의 절대적 신임을 받았다. 남구만과 박세채의 제자이기도 하다.
급제와 혼란
어릴때부터 총명하기로 소문나 당대의 유학자들인 남구만(南九萬, 1629~1711)과 박세채(朴世采, 1631~1695)의 제자로 교육을 받고 1662년에 16세의 나이로 생원시에 장원으로 입격하여 이름을 날리고 1666년 진사시에도 장원으로 급제하고 1671년(현종13년)에 정시 문과에 급제하면서 관리가 된다. 그러나 1674년 즉위한 조선 19대 임금 숙종(肅宗, 1661~1720, 재위1674~1720)이 즉위한 이후 점차 남인의 세력에 밀려 1678년 파직을 당하기도 하지만 크게 문제없이 진급하면서 관직생활을 이어나가지만, 1685년 회니시비(1681년, 윤증과 송시열이 서로의 불화로 인해 각 제자들 사이에서 벌어진 분쟁)로 인해 조정이 시끄러워졌을 때 윤증(尹拯, 1629~1714)을 옹호하면서 다시 파직되었다가 1년내로 복직한다. 그러나 1689년 당시 이조참판 재직 중에 기사환국(己巳換局, 1689)이 터지면서 서인들이 몰락하면서 최석정또한 외직으로 나가게 된다. 이후 외직으로 수년간 떠돌다가 1694년 갑술환국으로 남인이 몰락하고 서인이 다시 정권을 잡게 되면서 다시 중앙정계로 돌아와서 지속적으로 진급을 거듭하고 정2품 판서(判書)를 거쳐 1697년 우의정(右議政)에 임명된다.
영의정
1701년 7월 24일, 조선 최고의 관직인 영의정에 임명된다. 영의정이 되고 난 이후엔 만연해있던 토지, 군역 폐단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며 줄곧 해결의지를 보인다. 그러나 당해에 터진 무고의 옥으로 인해 희빈 장씨(장희빈, 禧嬪 張氏, 1659~1701)의 아들이자 세자인 윤(미래의 경종)을 보호하기 위해 장희빈을 보호하고자 하였으나 끝내 사사되고, 노론으로 부터 탄핵당해 사직하기도 한다. 이후로도 2번이나 더 영의정을 역임하는등 숙종의 신임을 받았고 정계에서 은퇴한 후 1711년 큰 병에걸려 병중에있다가 1715년 12월 6일 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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