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명 : 제라르 드 부르고뉴(Gerard de Bourgogne)
155대 교황 니콜라오2세(Nicolaus PP. II, 990~1061, 재위1058~1061)
| 전임 교황 | 당시 재직 교황 | 후임 교황 | |
| 직위 | 154대 교황 | 155대 교황 | 156대 교황 |
| 출신 | 신성로마제국, 로렌 | 신성로마제국, 세브롱 | 신성로마제국, 밀라노 |
| 명칭 | 스테파노9세 Stephanus PP. IX |
니콜라오2세 Nicolaus. PP |
알렉산데르2세 Alexander PP. II |
| 생몰년도 | 1020.xx.xx ~ 1058.03.29 | 990.xx.xx ~ 1061.07.19 | 1010.xx.xx ~ 1073.04.21 |
| 교황선출 | 추대 방식 1057.08.02 |
추대 방식 1058.12.06 |
1일 (1061.09.30) |
| 재위 | 1057.08.02 ~ 1058.03.29 | 1058.12.06 ~ 1061.07.19 | 1061.09.30 ~ 1073.04.21 |

출생
990년, 신성로마제국 부르고뉴 세브롱(Sebron)에서 아버지(미상)와 어머니(미상)사이에서 태어났다.
배경
155대 교황으로, 부르고뉴에서 귀족 집안으로 태어나 피렌체 주교를 거쳐 스테파노9세 선종 이후 후임 교황이 되는 베네딕토10세를 시노드를 통해 폐위시키고 파문하고 니콜라오2세로 즉위하게 되는 인물이다. 고령으로 인해 짧은 재위기간(2년 8개월)동안 신성로마황제를 견제하기 위해 이탈리아 남부 노르만족과 손잡고 교황 선출방식을 황제가 아닌 추기경들로 국한시킴으로서 또 다른 대립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성직
성직 수련시기와 사제 서품시기는 미상이며 자료에 의하면 1034년 8월, 신성로마황제 콘라트2세(Konrad II, 990~1039, 로마왕재위1024~1039, 신성로마재위1027~1039)가 부르고뉴를 점령해 버리면서 제라르는 토스카나 공작 보니파시오3세(Bonifacio III di Toscana, 985~1052, 만토바재위1007~1052, 토스카나재위1027~1052)를 섬기기 시작하고, 1045년 1월에 피렌체(Firenze) 주교로 서임된다.
빅토르2세
1054년 교황 레오9세가 선종한 후 이듬해인 1055년 4월 13일, 라티스본(Ratisbonne)에서 신성로마황제 하인리히3세(Heinrich III, 1016~1056, 로마왕재위1028~1056, 신성로마재위1046~1056)가 제국 의회를 소집한다. 이 의회에서 황제 하인리히3세가 독일 출신 게브하르트 주교를 교황으로 추천하여 사실상 선출되어 게브하르트 주교가 교황 빅토르2세(Victor PP. II, 1018~1057, 재위1055~1057)로 즉위하게 된다. 빅토르2세는 이후 피렌체 공의회와 교구 관할권 분쟁 등으로 바삐 일정을 보내다가 1057년 7월 28일에 선종하고 후임 교황 스테파노9세(Stephanus PP. IX, 1020~1058, 재위1057~1058)가 선출되지만 불과 7개월이라는 재위기간으로 그레고리오 개혁을 실행을 해보지도 못하고 중병에 걸려 선종해버린다.
1058년 교황 선출
1058년 3월 29일 스테파노9세가 선종하고 1058년 4월 5일 후임 교황으로 투스쿨룸 백작 요한(대립교황 베네딕토10세)이 선출되어 베네딕토10세 교황명을 사용하지만, 경쟁세력인 부르고뉴의 제라르를 포함한 성직단들이 베네딕토10세 선출을 반대하며 대립하며 부딫히다가 1058년 12월 6일 제라르의 세력 성직자들은 시에나(Siena)로 가서 부르고뉴의 제라르를 니콜라오2세로 선출시킨다. 그러나 베네딕토10세는 대립 도중 1059년 1월 18일 수트리 시노드에서 베네딕토10세가 대립교황으로 선포되고 공식적으로 교황직에서 폐위되고 파문당하고 로마를 떠나게 되면서 사실상 니콜라오2세가 정식 교황으로 남게 된다.
교황
니콜라오2세는 즉위 이후 교황권을 강화시키기 위해 1059년 8월 멜피에서 이탈리아 반도 남부 노르만 족과 화친을 맺고 동맹을 체결하게 된다. 이 동맹을 통해 노르만 족 수장 카푸아의 리처드1세(Richard I of Capua, 1025~1078, 재위1049~1078)와 시칠리아 공작 로베르 기스카르(Robert Guiscard, 1015~1085, 재위1059~1085)등에게 충성 서약을 받고 후방의 안정과 함께 노르만족의 지원을 기대하면서 신성로마황제를 압박할 계획이였다. 이후 교황은 성직자들의 엄격한 규율과 함께 성직매매금지등으로 규율을 잡고자 성직자들의 기강을 잡는데 재위기간동안 활발하게 활동하며 재위기간중 가장 큰 개혁인 교황 선출방식 변경(추기경단에 교황 선출을 일임하는 개혁)으로 이전까지 신성로마황제로부터 사실상 임명되는 방식을 바로 뒤집어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선종
그러나, 이미 70대의 고령이였던 니콜라오2세는 1061년 7월 27일, 피렌체에서 71세의 나이로 선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