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명 : 포포 폰 브릭센(Poppo von Brixen)
151대 교황 다마소2세(Damasus PP. II, 1000~1048, 재위1048)
| 전임 교황 | 당시 재직 교황 | 후임 교황 | |
| 직위 | 150대 교황* | 151대 교황 | 152대 교황 |
| 출신 | 교황령, 투스콜룸 | 신성로마제국, 바이에른 | 신성로마제국, 오베르뉴 |
| 명칭 | 베네딕토9세(3차재위) Benedictus PP. IX |
다마소2세 Damasus PP. II |
레오9세 Leo PP. IX |
| 생몰년도 | 1012.xx.xx ~ 1056.xx.xx | 1000.xx.xx ~ 1048.08.09 | 1002.06.21 ~ 1054.04.19 |
| 교황선출 | 1047.10.09 클레멘스2세 선종 후 교황직 접수 |
1047.12.25 | 1048.12.xx |
| 재위 | (3차재위) 1047.11.08 ~ 1048.07.16 |
1048.07.17 ~ 1048.08.09 | 1049.02.12 ~ 1054.04.19 |
*베네딕토9세(Benedictus PP. IX, 1012~1056)는 145대, 147대, 150대 교황으로 3차에 걸친 재위기간을 가진 교황이다.

출생
1000년, 신성로마제국 바이에른(Bavaria)에서 아버지 백작 포포2세 디 로트(Poppo II di Rott, ?~?)와 어머니(미상)사이에서 태어났다.
배경
151대 교황으로서, 재위기간이 1개월이 채 되지않는(25일)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즉위 전 1046년부터 로마에는 3명의 교황(베네딕토9세, 실베스테르3세, 그레고리오6세)이 서로 앞다퉈 교황직을 차지하기위한 경쟁으로 인해 로마가 혼란스러웠던 상황이였는데, 이러한 답없는 상황에 신성로마황제 하인리히3세로 하여금 작고의 실태를 해결해달라는 요청을 받아 시노드를 개최한다. 시노드에 참석한 브릭센 주교 포포가 황제 하인리히3세의 지명을 받아 교황으로 선출되지만, 로마를 좌지우지 하는 베네딕토9세의 가문 투스콜룸 가에 의해 사실상 베네딕토9세가 1048년 7월까지 교황좌를 차지하다가 이를 두고보다못해 베네딕토9세를 지원했던 토스카나 변경백 보니파시오3세에게 최후통첩을 하여 변경백이 스스로 베네딕토9세를 로마 밖으로 추방시키게 되면서 브릭센의 포포가 로마로 입성하여 다마소2세로 즉위하게 된다. 그러나 다마소2세는 즉위식을 거행한 지 25일만에 선종해버린다.
성직
1040년 1월 16일, 로마왕 하인리히3세(Heinrich III, 1016~1056, 로마왕재위1028~1056, 신성로마재위1046~1056)에 의해 티롤의 브릭센 주교가 되기 전의 기록은 전무한편이며 브릭센 주교가 된 이후 사실상 하인리히3세의 황실 고문을 맡고 1046년 하인리히3세가 신성로마황제 대관식을 거행하기위해 로마로 가는 사절단에 속해 같이 가기도 한다.
1048년 교황 선출
1048년 7월 16일, 교황 베네딕토9세(Benedictus PP. IX, 1012~1056, 재위1032~1044, 1045, 1047~1048)가 교황직을 매각해버리면서 로마는 사도좌 공석이 된다. 이는 이미 1047년 12월 25일 신성로마제국 작센에서 선출된 포포 주교가 교황이 되었지만 베네딕토9세의 로마 내 영향력으로 인해 즉위식을 거행하지 못한 상태였고 7개월간 로마로 입성하지 못했었다. 이는 이전 당시 신성로마황제 하인리히3세(Heinrich III, 1016~1056, 로마왕재위1028~1056, 신성로마재위1046~1056)의 교황지명은 사실상 교황의 탄생을 의미하는데, 황제는 여러 유력 교황 후보들 중 고민하면서 자신의 제국 내 가장 큰 영향력을 가졌던 리에주 주교 바조(Wazo of Liège, 985~1048)에게 자문하여 신속하게 차기 교황 적합도를 파악해달라고 요청하지만, 신중하게 처리한만큼 늦어지는 답변에 황제는 기다리다 지쳐 자신의 뜻에 따라 포포 폰 브릭센주교를 추천하여 교황으로 선출된다. 그러나 선출된 다마소2세는 신성로마제국을 떠나 로마로 가는 동안 로마 내 귀족가문인 투스콜룸 가문이 영향력을 강하게 행사하면서 사실상 황제가 선출한 교황이라는 권위가 무색해지는데, 투스콜룸 가문 출신 전 교황인 베네딕토9세는 다시 교황직에 복귀할 틈을노려 토스카나 변경백 보니파시오3세(Bonifacio III di Canossa, 985~1052, 만토바재위1007~1052, 토스카나재위1027~1052)의 지원을 받아 1047년 11월 8일부터 1048년 7월 16일까지 로마 교황좌를 차지하게 되어버린다. 그렇게 로마로 오다가 이미 베네딕토9세가 사도좌를 차지해버리는 상황에 다마소2세를 로마로 데리고 갈지언정 즉위식을 거행하기엔 너무 어려운 상황이라 주변 사람들이 다 떠나버리고 자신도 신성로마제국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고 이러한 사실을 알은 신성로마황제 하인리히3세는 격분하여 황제 스스로 서신을 써서 베네딕토9세를 지원한 보니파시오3세에게 사실상 최후 통첩을 하면서 겁을 먹은 보니파시오3세는 자신의 손으로 베네딕토9세를 로마에서 강제로 추방시키고 다마소2세가 이에 로마로 입성하게 된다.
교황
그렇게 로마로 입성한 다마소2세는 로마 시민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으며 베네딕토9세가 로마에서 추방된 지 하루가 지난 1048년 7월 17일, 라테란 대성당에서 즉위하게 된다. 그러나 로마 내 강력한 파벌을 지닌 베네딕토9세의 가문 투스콜룸 가문이 로마를 지배하고 있었기에 다마소2세는 로마 내에서 투스콜룸 가문 사람들의 공격을 받을 것을 우려하여 로마 동쪽에 위치한 교황영지인 팔레스트리나(Palestrina)머무르는 것이 안전하다고 생각하여 이곳으로 옮긴다.
선종
그러나 1048년 8월 9일, 즉위식을 거행한지 불과 25일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에 다마소2세는 48세의 나이로 갑작스럽게 선종한다. 이는 현재에도 독살을 당했다는 의혹이 있지만 말라리아로 선종했다는 것이 현재까지 가장 유력한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