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 군주(927~1707), 고위귀족/플랜테저넷 왕조

에드워드3세

Mintaka5 2025. 7. 9. 16:15
반응형

잉글랜드 플랜태저넷 왕조 왕 에드워드3세(Edward III, 1312~1377, 재위1327~1377)

  전임 군주 당시 재직 군주 후임 군주
직위 체스터,퐁티외 백작, 아키텐,웨일스 공작, 잉글랜드 왕 체스터,퐁티외 백작, 아키텐 공작, 잉글랜드 왕  웨일스,아키텐 공작, 잉글랜드 왕
가문(왕조) 플랜태저넷
명칭 에드워드2세
Edward II
에드워드3세
Edward III
리처드2세
Richard II
출신   잉글랜드, 버크셔 아키텐 공국, 보르도
생몰년도 1284.04.25 ~ 1327.09.21 1312.11.13 ~ 1377.06.21 1367.01.06 ~ 1400.02.14
재위 퐁티외 백작
1290.11.28 ~ 1325.09.02
체스터 백작
1312.11.24 ~ 1327.01.25
웨일스 공작
1376.11.20 ~ 1377.06.21
체스터 백작
1301.02.07 ~ 1307.07.07
퐁티외 백작
1325.09.02 ~ 1337.05.24
1360.10.24 ~ 1369.11.30
아키텐 공작
1377.06.21 ~ 1390.03.02
웨일스 공작
1301.02.07 ~ 1307.07.07
아키텐 공작
1325.09.10 ~ 1362.07.19
1372.10.06 ~ 1377.06.21
잉글랜드 왕
1377.06.21 ~ 1399.09.30
아키텐 공작
1306.04.07 ~ 1325.09.10
잉글랜드 왕
1327.01.25 ~ 1377.06.21
잉글랜드 왕
1307.07.07 ~ 1327.01.25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있는 에드워드3세 모형
에드워드3세, 출처-위키피디아

출생

1312년 11월 13일, 잉글랜드 버크셔(Berkshire)에서 아버지 에드워드2세(Edward II, 1284~1327, 재위1307~1327)와 어머니 이사벨 드 프랑스(Isabelle de France, 1295~1358, 프랑스 왕 필리프4세의 딸)사이에서 태어났다. 

 

배경

잉글랜드 플랜태저넷 왕조 왕으로, 1327년 어머니 이사벨이 프랑스에 망명한 귀족들과 합세하여 아버지 에드워드2세를 몰아내고 즉위한다. 어린나이로 인해 섭정통치기간을 지나고 이후 프랑스와 백년전쟁(1337~1453)을 통해 50년간의 치세동안 프랑스와의 전투로 대부분을 보내게 된다. 1360년 프랑스에 불평등한 조약인 브레티니-칼레 조약으로 기세를 잡지만 이후 1370년대엔 새로이 즉위한 샤를5세의 군대에 밀리고 1376년엔 장남이자 왕위계승자인 흑태자 에드워드마저 잃고 1377년에 병으로 사망한다. 

 

초년과 즉위 

에드워드가 태어났을 당시 잉글랜드는 스코틀랜드와의 경쟁에서 밀리던 형국으로 혼란스러웠던 시기였는데, 어린 에드워드는 초년에 가정교사이자 더럼 주교 리처드 드 버리(Richard de Bury, 1287~1345)로부터 개인 지도를 받으며 학문, 시편, 종교, 문학등을 접하게 된다. 프랑스 영지 내에도 잉글랜드 왕실 영토가 통합되면서 상당히 광활한 영토를 보유하게 된 잉글랜드는 영지 내 관리만 해도 복잡한 실정이였는데, 1325년 아버지 에드워드2세가 처남인 프랑스 왕 샤를4세(Charles IV, 1294~1328, 재위1322~1328)로부터 아키텐 공국은 프랑스 왕의 신하로서 충성을 다해야한다는 이행 조건을 제시하며 긴장관계가 조성된다. 이에 에드워드2세는 어린 에드워드와 어머니 이사벨과 동행하여 아키텐 공국으로 가는데, 이사벨 왕비가 에드워드2세로부터 추방당하고 프랑스에 있던 망명 귀족들의 힘을 입어 군대를 이끌고 잉글랜드 왕궁으로 향하고 에드워드2세가 항복하고 무능함등의 명목으로 폐위당하고 옥사에 감금된다. 그렇게 1327년 1월 25일에 새 잉글랜드 왕으로 선포되고 2월 1일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대관식을 치르고 공식 즉위한다. 

 

즉위

에드워드3세는 1327년 즉위 당시 나이가 15세에 불과한 미성년자였기에 숙부인 랭커스터 백작 헨리 플랜태저넷(Henry Plantagenet, 1281~1345)과 어머니 이사벨 왕비와 정부인 백작 로저 모티머(Roger Mortimer, 1287~1330)가 함께 섭정을 맡게 된다. 사실상 모티머가 이사벨 왕비와 함께 실질적 통치를 행사하는데, 모티머는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서 영향력을 키우지만 1328년 스코틀랜드와의 전투에서 패배를 당하고 잉글랜드에 불리한 에든버러-노샘프턴 조약(The treaty of Edinburgh-Northampton, 1328.03.17)이 체결됨에 따라 영향력이 점점 작아지게 된다. 게다가 모티머는 에드워드3세에게도 무례한 태도를 보이고 1330년 에드워드3세의 아들 우드스톡의 에드워드(흑태자 에드워드)가 태어나면서 더욱 관계에 긴장감이 들이게 되면서 모티머를 그냥 두어선 안되겠다는 생각에 절친 백작 윌리엄 몬태규(William Montagu, 1301~1344)를 포함한 신임할 수 있는 귀족, 신하들의 도움을 받아 모티머를 기습공격하여 1330년 10월 19일 노팅엄 성(Nottingham Castle)에서 모티머를 체포하고 처형하게 되며 비로소 에드워드3세의 친정이 시작된다.

 

잉글랜드 왕

I. 스코틀랜드 전쟁

에드워드3세는 이전에 모티머가 스코틀랜드에게 패해 체결된 에든버러-노샘프턴 조약을 깨고 스코틀랜드를 1332년 침공한다. 당시 스코틀랜드 왕 데이비드2세(Dauid II Brus, 1324~1371, 재위1329~1371)는 8세에 불과하여 통치력을 행사하기엔 너무 어려 에드워드 발리올(Edward Balliol, 1283~1364, 대립왕재위1332~1356)을 새 스코틀랜드 왕으로 추대하고자 했지만 스코틀랜드 내에서 발리올에 대한 민심이 악화됨에 따라 발리올이 잉글랜드로 추방당하고 에드워드3세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데이비드2세쪽에 충성하는 세력이 늘어나면서 스코틀랜드 내에서도 단합이 일어나면서 공략이 어려워짐에따라 1338년까지 소모전을 벌이고 휴전 협정을 맺는다. 이는 특히 두 국가간 휴전이 체결되기 1년전인 1337년에 또 다른 전쟁이 터졌기에 두 개의 전선을 운영하기 버거웠던 잉글랜드가 한발 뺐다고 볼 수 있다. 또 다른 전쟁은 바로 아래 주제에 언급하겠다. 

 

II. 백년전쟁 시작

1337년 5월 24일,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가 한창 전투를 벌이고 있던 시점에 프랑스 발루아 왕조와 전쟁이 터진다. 116년간(1337~1453)이어진 백년전쟁은 하나의 이유로부터 시작되는데, 당시 에드워드3세의 어머니이자 대비인 이사벨 드 프랑스(Isabelle de France, 1295~1358)는 프랑스 왕 필리프4세(Philippe IV, 1268~1314, 재위1285~1314)의 딸이자 프랑스 카페왕조 직계 최후의 왕인 샤를4세(Charles IV, 1294~1328, 재위1322~1328)의 여동생이였는데, 프랑스 왕 샤를4세가 사망하기 전 임신중이던 자녀를 미처 보지 못했는데, 태어날 자녀가 아들일 시 프랑스 왕위를, 딸일시 샤를4세와 사촌지간이던 발루아 백작 필리프(미래의 필리프6세)에게 왕위를 물려주라고 유언을 남긴 채 사망한다. 그리고 샤를4세가 사망한 뒤 태어난 자녀는 딸이 되자, 유언을 통해 발루아의 필리프가 프랑스 왕 필리프6세(Philippe VI, 1293~1350, 재위1328~1350)로 즉위하면서 프랑스 발루아 왕조가 열리게 된다. 그러나 샤를4세의 여동생 이사벨은 샤를4세의 여동생이라는 점에서 비록 살리카법에 의해 여성으로서 프랑스 왕위 계승은 불가하지만 아들 에드워드3세에게 계승되어야한다고 주장해버리면서 잉글랜드와 프랑스 양국간에 대립이 발생하게 된다. 필리프6세 역시도 왕위를 에드워드3세에게 넘길 생각이 없었기에 두 국가간 사이에 마찰은 불가피한 상황이 되어버린다. 그렇게 필리프6세는 잉글랜드를 압박하기 위해 이전부터 잉글랜드와 대립해오던 스코틀랜드와 손을 잡고, 프랑스 영지내에 있던 아키텐 공국을 프랑스 왕실로 몰수하고 군대를 모아 전쟁준비에 돌입하게 된다. 에드워드3세 역시 스코틀랜드와 손잡은 프랑스에 대항해 당시 경제력이 뛰어나던 프랑스 동북방 경계에 있던 플랑드르와 손을 잡으면서 전쟁이 시작된다. 

 

III. 에드워드 전쟁

백년전쟁의 일부시기를 표현하는 것 중에 하나인 에드워드 전쟁은 백년전쟁(1337~1453)중 제1기에 해당하는 1337년부터 1360년까지 23년에 해당하는 시기이다. 1337년 에드워드3세와 아들 우드스톡의 에드워드(흑태자 에드워드, Edward the black prince, 1330~1376)와 함께 전투에 참전하여 프랑스군과 전투를 벌이게 된다. 1340년엔 에드워드3세가 스스로 프랑스 왕이 된 것을 선언하고 아들 흑태자 에드워드는 프랑스에서 전투 원정을 벌여 프랑스군을 상대로 여러차례 큰 승리를 거두면서 프랑스를 궁지로 몰아넣는다. 

  날짜 결과
오베로슈 전투
The battle of Auberoche
1345. 10. 21 잉글랜드 승리
크레시 전투
The battle of Crecy
1346. 08. 26
칼레 공성전
The siège of Calais
1346.09.04 ~ 1347.08.03
라로슈데리앙 전투
The battle of La Roche-Derrien
1347. 06. 20
푸아티에 전투
The battle of Poitiers
1356. 09. 19 잉글랜드 결정적 승리, 프랑스 왕 장2세(Jean II, 1319~1364, 재위1350~1364)가 포로로 잡힘

위처럼 4차례에 걸친 큰 전투에서 모두 승리한 잉글랜드군은 특히 크레시 전투에서 프랑스군의 1/3도 되지않는 병력이였지만 신무기 장궁으로 무장한 장궁부대에 의해 기병 돌격과 잉글랜드 군이 파놓은 구덩이에 빠져 우왕좌왕 하다가 대패하고 칼레로 퇴각하게 되면서 잉글랜드 군에 의해 칼레가 포위되고 1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공성전을 벌인다. 계속해서 보급을 통해 공성전을 벌이면서 잉글랜드 국내 여론이 악화되었지만 의회는 마지못해 자금을 지원하였고, 에드워드3세는 이 전투에 사활을 걸어 끝장을 보기 전까지는 떠나지 않겠다는 의지를 다지며 전투가 더욱 격화된다. 오죽하면 교황 클레멘스6세(Clemens PP. VI, 1291~1342, 재위1342~1352)가 추기경으로 구성된 대사들을 보내지만 양측에서는 추기경에게 말한마디 거들떠보지 않으면서 사실상 중재협상은 실패로 끝나고 전투가 계속 진행된다. 그러나 1347년 유럽에 처음 등장한 흑사병(페스트)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유럽 전역에 번지기 시작되면서 1350년엔 유럽 전 지역에 흑사병이 창궐하게 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흑사병으로 인해 목숨을 잃게 된다. 이 전례없는 전염병으로 인해 한창 전투중이던 잉글랜드와 프랑스는 마침 재정상황도 좋지 않았고 전염병으로 인해 전투를 치를 환경이 되지 못하면서 1355년까지 잠정적으로 전쟁이 중단된다. 1355년 흑태자 에드워드가 다시 공격을 재개하는데 1356년 9월, 푸아티에 전투에서 프랑스군을 상대로 결정적인 승리를 거머짐과 동시에 프랑스 왕 장2세(Jean II, 1319~1364, 재위1350~1364)를 포로로 사로잡는 전공을 세우게 된다. 왕이 사로잡히자 당황한 프랑스는 1359년 잉글랜드에 협상을 벌이게 된다. 1360년 브레티니(Brétigny)에서 프랑스 대표단과 만난 잉글랜드 대표단은 협상 직후 9년간(1360~1369)휴전을 체결하고 프랑스 왕의 종주권 행사 금지, 푸아티에와 앙주등 예전 헨리2세(Henry II, 1133~1189, 재위1154~1189)대의 수준으로 잉글랜드 왕국에 귀속할 것을 발효하여 잉글랜드에 포로로 잡혀있던 프랑스 왕 장2세의 서명을 통해 조약을 체결하는데 이 조약이 브레티니-칼레 조약(The treaty of Brétigny-Calais, 1360.10.24)이다. 이 조약을 끝으로 백년전쟁 1기 에드워드 전쟁(1337~1360)이 막을 내리게 된다. 

 

조약 이후

1360년부터 9년간의 조약이 체결된 이후 에드워드3세는 50대에 접어들면서 최측근 인사들이 대부분 사망하는등(흑사병 등) 세대교체가 일어나면서 점점 무기력해졌고, 이후 직접 전투에 참여하지 않고 아들들을 전투에 보내면서 아들들에게 더 의존하게 된다. 프랑스는 1364년 4월 8일, 잉글랜드에 포로로 있다가 포로신분은 풀렸지만 억류되어있던 장2세가 사망하면서 장2세의 아들 샤를이 샤를5세(Charles V, 1338~1380, 재위1364~1380)가 새 프랑스 왕으로 즉위하게 된다. 세금 개혁에 성공하고 프랑스 국내 정세를 안정화시키고 전쟁을 수행한 샤를5세는 1369년 다시 잉글랜드와 전쟁이 시작되고 이전 브레티니-칼레 조약으로 상실했던 프랑스 영토를 상당히 회복하는데 성공한다. 잉글랜드는 프랑스군에 의해 패배하고 오랜기간 전쟁에 쓰인 재정이 천문학적으로 쌓이게 되며 재정적 압박을 받은 터에 에드워드3세는 의회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는데, 당시 60대 고령의 에드워드3세는 사실상 흑태자 에드워드에게 정치를 맡기지만 흑태자 에드워드가 1376년 6월 8일, 에드워드3세보다 먼저 사망해버리면서 흑태자의 동생이자 에드워드3세의 4남인 곤트의 존(John of Gaunt, 1340~1399, 미래의 헨리4세의 아버지)이 사실상 잉글랜드 정계를 이끌어나가게 된다. 

 

승하

에드워드3세는 말년에 병으로 인해 1375년부터는 거의 정치에 관여하지 않고 승인만 하는 정도로 생활하다가 점점 병이 악화되어 1377년 6월 21일, 65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반응형

'잉글랜드 군주(927~1707), 고위귀족 > 플랜테저넷 왕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잉글랜드 플랜태저넷 왕조 직계 계보  (0) 2025.07.14
헨리2세  (0) 2025.07.01
헨리3세  (0) 2025.06.04
리처드2세  (0) 2025.05.23
'사자왕' 리처드1세  (0) 2024.07.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