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하노버 왕조 최후 왕 빅토리아(Victoria, 1819~1901, 재위1837~1901)
| 전임 군주 | 당시 재직 군주 | 후임 군주 | |
| 직위 | 하노버, 영국 왕 | 인도 여황제, 호주, 캐나다, 영국 여왕 | 웨일스 공작, 인도 황제, 뉴펀들랜드, 뉴질랜드, 호주, 캐나다, 영국 왕 |
| 가문(왕조) | 하노버 | 작센코부르타고타 | |
| 명칭 | 윌리엄4세 William IV |
빅토리아 Victoria |
에드워드7세 Edward VII |
| 출신 | 영국, 런던 | 영국, 런던 | 영국, 런던 |
| 생몰년도 | 1765.08.21 ~ 1837.06.20 | 1819.05.24 ~ 1901.01.22 | 1841.11.09 ~ 1910.05.06 |
| 재위 | 영국 왕위 상속자 1827.01.05 ~ 1830.06.26 |
영국 왕위 상속녀 1830.06.26 ~ 1837.06.20 |
웨일스 공작(왕세자) 1841.11.09 ~ 1901.01.22 |
| 인도 여황제 1876.05.01 ~ 1901.01.22 |
뉴펀들랜드,뉴질랜드 왕 1907.09.26 ~ 1910.05.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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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노버, 영국 왕 1830.06.26 ~ 1837.06.20 |
캐나다 여왕 1867.07.01 ~ 1901.01.22 |
호주, 캐나다 왕 1901.01.22 ~ 1910.05.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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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주 여왕 1901.01.01 ~ 1901.01.22 |
인도 황제 1901.01.22 ~ 1910.05.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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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 여왕 1837.06.20 ~ 1901.01.22 |
영국 왕 1901.01.22 ~ 1910.05.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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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819년 5월 24일, 영국 런던 켄싱턴 궁(Palace of Kensington)에서 아버지 켄트 공작 에드워드 아우구스트(Edward August, duke of Kent, 1767~1820)와 어머니 작센코부르크잘펠트의 빅토리아(Victoria of Saxe-Coburg-Saalfeld, 1786~1861)사이에서 태어났다.
배경
영국 여왕으로, 본래는 왕위계승과 서열이 멀었으나 1837년 숙부 윌리엄4세가 승하한 뒤 영국 여왕으로 즉위한다. 살리카법으로 인해 하노버 왕위를 물려받지 못하고 동군연합이 깨어진 뒤 재위기간동안 수많은 식민지와 63년 6개월이라는 긴 통치기간동안 영국을 해가지지않는 나라 대영제국으로 만든 장본인으로 여왕이 재위한 시기를 '빅토리아 시대(Victorian era)'라고도 부른다.
초년과 왕위상속녀
아버지 켄트 공작과 작센코부르크잘펠트 빅토리아 사이에서 외동딸로 태어난 빅토리아는 태어난지 겨우 1년만에 아버지 켄트 공작이 사망해버리면서 어머니의 연인인 존 콘로이(John Conroy, 1786~1854)와 외숙부인 레오폴(미래의 벨기에 왕 레오폴1세, Leopold I, 1790~1865, 재위1831~1865)가 사실상 아버지 역할을 하며 양육되고 있었고 1831년 외숙부(어머니 빅토리아의 남동생) 레오폴이 벨기에 왕으로 즉위하게 되면서 그마저도 떠나게 된다. 빅토리아는 아버지 켄트 공은 할아버지 조지3세(George III, 1738~1820, 재위1760~1820)의 4남이였기에 왕위 계승순위에서 상당히 멀었기에 빅토리아 역시 왕위계승과는 거리가 멀었는데, 큰숙부 조지4세(George IV, 1762~1830, 재위1820~1830)의 적녀 웨일스 공녀 샬럿 오거스타(Charlotte Augusta of Wales, 1796~1817)가 출산 직후 사망해버리면서 조지3세의 직계가 끊겨버리는 바람에 조지3세의 3남 윌리엄이 윌리엄4세로 즉위하게 되면서 왕위 상속녀가 된다(조지3세의 2남 요크 공작 프레데릭은 1827년 이미 사망해버렸다).
즉위
1837년 5월 24일, 18세의 성년(군주는 성년이 되면 단독통치를 할 수 있었다)이 된 빅토리아는 1개월 뒤 숙부 윌리엄4세(William IV, 1765~1837, 재위1830~1837)가 자녀없이 승하하면서 빅토리아가 영국 여왕으로 즉위하게 된다. 빅토리아는 영국 영토와 영국이 가지고있던 식민지 영토들을 상속받았지만 하노버 왕으로서는 즉위할 수 없었는데, 이는 하노버 왕국이 살리카법을 따르고 있었고 여성이 왕위를 계승할 수 없다는 살리카법에 의거하여 빅토리아는 하노버 왕위를 승계받을 수 없었다. 그렇게 하노버 왕위는 조지3세의 8남이자 아버지 켄트 공작의 동생인 어니스트 오거스트(독일어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Ernest Augustus, 1771~1851, 재위1837~1851)에게 넘어간다.
영국 여왕, 유럽의 어머니
I. 대관식과 즉위 초기
18세가 갓 지난 빅토리아 여왕은 즉위 1년이 지난 1838년 6월 28일, 대관식을 치르고 궁에서 집무를 보게 된다. 정치 경험 부재로 인해 총리대신이자 휘그당 소속 정치인인 멜버른 경 윌리엄 램(William Lamb, 1779~1848, 총리1834, 1835~1841)이 정국을 이끌었으며 어린 빅토리아 여왕의 멘토로서 든든한 우군으로서 활동한다. 그러나 레이디 플로라 헤이스팅스 스캔들(빅토리아 여왕의 어머니 빅토리아의 시녀 레이디 플로라가 존 콘로이와 관계로 임신했다는 스캔들이 벌어졌으나 검사결과 임신이 아니라 간암이였다는 것으로 콘로이만 억울하게 되고 이후 여론악화로 미국으로 유배보내짐)과 침실위기(보수당 당수 로버트 필이 정부 수반이 되면서 빅토리아 여왕에게 여왕의 침실 시녀중 일부를 내쫓는 조건으로 수반이 된)등으로 멜버른 경이 사임하고 로버트 필()이 총리가 된다.
II. 앨버트 공

왕위에 오르기 이전인 1836년에 외삼촌 레오폴(벨기에 왕 레오폴1세)이 작센코부르타고타의 알베르트(앨버트 공)를 빅토리아와 결혼시키고자 했는데, 숙부 윌리엄4세(William IV, 1765~1837, 재위1830~1837)의 반대로 성사되지 못하지만 이후로도 앨버트와 계속 교류관계를 유지하고 든든한 조언자로 여기고 있던 빅토리아는 1839년 10월 앨버트가 영국에 방문한 지 며칠만에 청혼하였고 앨버트가 청혼을 받아들이게 되면서 4개월 뒤 1840년 2월 10일 세인트 제임스 궁전(St. James's Palace)에서 공식 결혼하게 된다. 결혼 이후 앨버트는 여왕의 부군이 되면서 작위를 받고 여왕의 중요한 정치 고문이되어 조언을 해주고 여왕과의 사이에 4남5녀를 두었고 이들은 유럽 내 각 국가별 왕실 적남, 적녀등과 결혼하여 이후 이들의 자녀들이 각 국가별 왕이 되면서 모두 빅토리아 여왕의 손자 또는 외손자가 되며 빅토리아 여왕이 유럽의 할머니라는 별명까지 얻게 된다.
III. 외교
특히 영국의 지리적 특성상, 프랑스와 매우 인접했기에 앙숙이였지만 관계 개선이 필수적이였던 당시 상황으로 인해 빅토리아 여왕은 남편 앨버트 공의 가문인 작센코부르타고타 가문을 중간다리로 삼아 프랑스 부르봉-오를레앙 왕가 왕 루이 필리프1세(Louis Philippe Ier, 1773~1850, 재위1830~1848)와 1843년 영국 왕으로서는 323년만(1520년 잉글랜드 왕 헨리8세와 프랑스 왕 프랑수아1세가 만났던)에 프랑스 왕을 만난 첫 군주가 되며, 1년 뒤 프랑스 왕 루이 필리프1세가 영국을 방문하면서 영국을 공식 방문한 최초의 프랑스 왕이 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루이 필리프1세는 1848년 2월에 발생한 2월혁명(French February Revolution, 1848.02)으로 인해 왕위 퇴위와 함께 영국으로 망명하게 된다. 2월혁명이 유럽전체로 일파만파 커져 전역에 걸쳐 봉기가 일어남에 따라 빅토리아 여왕도 가족들과 함께 잠시 피신해있다가 잠잠해진 다음 복귀한다.
1855년 4월엔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3세(Napoléon III, 1808~1873, 대통령재임1848~1852, 황제재위1852~1870)가 런던을 방문하고 서로 프랑스와 영국을 오가며 방문을 하다가 1858년 1월 14일, 영국에 머물고 있던 나폴레옹3세를 암살하고자 펠리체 오르시니(Felice Orsini, 1819~1858)가 사제 폭탄을 만들어 암살을 시도하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양국간 외교 위기가 벌어지게 된다. 이 사건으로 당시 영국 총리 파머스턴 자작 헨리 존 템플(Henry John Temple, Viscount Palmerston, 1784~1865)가 실각하게 되고 이전 총리인 더비 백작 에드워드 스미스스탠리(Edward Smith-Stanley, Earl of Derby, 1799~1869)가 총리가 되지만 여왕의 군대 사열후 해이해진 군대와 느슨해진 체계로인해 신임을 점점 잃다가 얼마 후 사퇴하고 다시 파머스턴 자작이 총리가 된다.
IV. 앨버트 공 사망 이후
1861년은 빅토리아 여왕에게 있어서 상당히 혹독한 한해라고 봐도 무방한데, 3월엔 어머니 작센코부르잘펠트의 빅토리아(Victoria of Saxe-Coburg-Saalfeld, 1786~1861)가 사망해버리고 11월 앨버트 공이 아들 에드워드(미래의 에드워드7세)가 아일랜드 여배우와 불륜을 저지른 것에 충격을 받아 직접 가서 질책하고 12월에 갑자기 중병에 걸려버리면서 12월 14일 42세의 나이로 사망해버린다. 갑작스런 남편의 부고에 충격을 받은 빅토리아 여왕은 아들 에드워드의 경솔함으로 인해 남편이 죽었다고 생각하였고 남편 앨버트 공이 사망하고 나서 죽을 때 까지 검은 옷을 입게 된다. 빅토리아 여왕은 남편이 사망하고 난 뒤 윈저 성에서 은둔생활을 하게 된다. 여왕의 통치 부재로 인하여 영국 내 공화주의 운동이 촉발되게 되면서 혼란이 일게 되면서 정치 혼란이 심화되자 외삼촌인 벨기에 왕 레오폴1세마저 조카에게 정무를 보라고 조언하면서 1865년 겨우 다시 정무에 복귀한다. 1866년 앨버트 공 사망이후 처음으로 의회 개회식에 참여하면서 정치적 혼란을 잠재운다.
V. 공화주의 부상
1870년 프랑스에서 나폴레옹3세(Napoléon III, 1808~1873, 대통령1848~1852, 황제재위1852~1870)가 보불전쟁에서 패배하고 폐위되면서 프랑스 제3공화국이 수립되면서 영국에서 다시 공화주의 사상이 번지게 된다. 이들은 빅토리아 여왕의 퇴위를 요구하고 공화주의 성향을 가진 의원들도 여왕을 향해 날을 세우게 되면서 1871년 여왕이 중병에 걸려 앓아눕는데, 그해 아들 에드워드(미래의 에드워드7세)마저도 병에 걸리면서 아들이 사망할까봐 걱정한 빅토리아였지만 간신히 회복하여 안도한 빅토리아 여왕은 아들과 함께 건재함을 국민들앞에 보이게 되면서 공화주의 운동이 약화되고 군주제가 다시 강세를 보인다.
VI. 인도
1857년 5월, 인도 주재 영국 동인도 회사에 대항하여 봉기가 일어난다. 세포이 항쟁이라고도 불리는 이 봉기는 1858년 7월까지 1년 2개월간 지속되며, 결국 영국이 승리하면서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가되어 편입되게 된다.
VII. 디즈레일리와 글래드스턴
당시 세기의 라이벌로 불리는 벤저민 디즈레일리(Benjamin Disraeli, 1804~1881, 총리역임1868, 1874~1880)와 윌리엄 글래드스턴(William Gladstone, 1809~1898, 총리역임1868~1874, 1880~1885, 1886, 1892~1894) 두 지도자는 빅토리아 여왕 재위시기 각각 보수당과 자유당 소속으로 경쟁을 통해 영국의 정치적 발전을 이끈 주역들이다. 디즈레일리는 자유주의 성향을, 글래드스턴은 보수주의자로서 1860년대부터 디즈레일리가 1878년 총리직 사임을 하고 이후 1881년 디즈레일리가 사망할때까지 둘은 끊임없이 서로 총리를 역임하며 경쟁하면서 영국의 정치를 발전시킨다. 글래드스턴은 이후 80대가 되어서도 총리를 역임하다가 1898년 사망한다.
VIII. 후기
1880년대 60대에 접어든 빅토리아 여왕은 점점 건강이 좋지 않게 되지만 계속 정무를 보았고, 1887년 즉위한지 50년이 되는 행사인 골든 주빌리를 기념하고 1897년에는 즉위 60주년 행사인 다이아몬드 주빌리까지 경험하게 되고, 할아버지 조지3세의 재위기간인 59년 3개월을 1896년 9월 23일에 넘어버리면서 영국 역사상 가장 오래 재위한 군주로 등극하게 된다(이후 2015년 9월 9일 엘리자베스2세 여왕이 빅토리아 여왕의 재위기간 63년 6개월을 넘으면서 기록이 깨진다).
승하
1901년 1월 22일, 81세의 나이로 여왕이 승하한다. 다음 영국 왕위는 장남 에드워드가 에드워드7세(Edward VII, 1841~1910, 재위1901~1910)가 즉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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