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명 : 프리드리히 폰 로트링겐(Friedrich von Lothringen)
154대 교황 스테파노9세(Stephanus PP. IX, 1020~1058, 재위1057~1058)
| 전임 교황 | 당시 재직 교황 | 후임 교황 | |
| 직위 | 153대 교황 | 154대 교황 | 155대 교황 |
| 출신 | 신성로마제국, 슈바벤 | 신성로마제국, 로렌 | 신성로마제국, 셰브롱 |
| 명칭 | 빅토르2세 Victor PP. II |
스테파노9세 Stephanus PP. IX |
니콜라오2세 Nicolaus PP. II |
| 생몰년도 | 1018.xx.xx ~ 1057.07.28 | 1020.xx.xx ~ 1058.03.29 | 990.xx.xx ~ 1061.07.19 |
| 교황선출 | 1054.09.xx | 1057.08.02 | 1058.12.06 |
| 재위 | 1055.04.13 ~ 1057.07.28 | 1057.08.02 ~ 1058.03.29 | 1058.12.06 ~ 1061.07.19 |

출생
1020년, 신성로마제국 로렌(독일어:로트링겐 'Lothringen')에서 아버지 베르덴의 고텔론1세(Gothelon Ier de Verdun, 967~1044, 재위1023~1044)와 어머니 우라카 디브레아(Urraca d'Ivrea, 966~1040)사이에서 태어났다.
배경
152대 교황이자 독일인 출신 교황이다. 당시 이탈리아 남부에 침략을 일삼던 노르만족을 격퇴하려다 교황 레오9세가 포로로 잡히고, 당시 스테파노9세는 겨우 탈출하여 피신하기도 한다. 빅토르2세가 선종하고 교황으로 선출되어 즉위하였으며, 9개월이 채 되지 않는 짧은 재위기간동안 개혁을 실행에 옮기고 특히 성직자 독신주의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시노드에서 의논하였고, 이탈리아 남부 노르만족을 완전히 축출하기 위해 동로마제국 황제 이삭1세 콤네노스와 연대하고자 했으나 1058년 3월 29일 갑자기 선종해버리면서 모든 계획은 백지화된다.
성직
리에주(Liège, 현재 벨기에 리에주)에 있는 생 랑베르 대성당(St. Lambert's Cathedral, 현 벨기에 리에주에 위치) 참사회원(캐논)을 맡고 부제가 되었다가 이후 1049년 2월에 불과 29세의 나이로 교황 레오9세(Leo PP. IX, 1002~1054, 재위1049~1054)에 의해 부제급 추기경에 서임된다. 재위 당시 레오9세는 이탈리아 반도 남부를 침략하고 약탈을 자행하는 노르만족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었고 남부 지역의 정치적 불안정을 해결하기 위해 1052년 레오9세가 신성로마황제 하인리히3세*(Heinrich III, 1016~1056, 로마왕재위1028~1056, 신성로마재위1046~1056)를 만나 노르만족을 토벌할 병력을 얻고 돌아오는데, 교황 레오9세는 1053년 6월 18일, 이탈리아 남부 치비타테(Civitate)에서 부딫히지만, 노르만족이 대승을 거두고 교황 레오9세가 포로로 잡혀버리고 만다. 이 때 프리드리히 폰 로트링겐 추기경도 동행했었는데 교황군이 패하고 몬테카시노로 피신하는데 성공한다. 이후 동로마제국 콘스탄티노플에서 교황 대사로 활동하다가 1057년 5월, 교황 빅토르2세(Victor PP. II, 1018~1057, 재위1055~1057)에 의해 몬테카시노 수도원장에 임명된다.
*신성로마황제 하인리히3세는 선출된 이후 처음으로 '로마인의 왕'칭호를 사용한 군주.
교황 선출
1057년 7월 28일, 교황 빅토르2세(Victor PP. II, 1018~1057, 재위1055~1057)가 선종한다. 빅토르2세가 선종하고 성직자들과 로마 귀족들은 교황 선거를 실시할 것을 논의하고 유력 후보들을 거론하는데 프리드리히 폰 로트링겐 추기경도 유력 교황 후보에 포함되었고 빅토르2세가 선종한 지 5일이 지난 8월 2일에 프리드리히 추기경이 새 후임 교황으로 선출되어 교황직을 수락한 뒤 스테파노9세로 명명한다.
교황
9개월이 조금 안되는 짧은 재위기간동안 스테파노9세는 교황령 내적으로 기강을 잡기 위해(교회 내 성직자들의 독신주의 다지기)1057년 8월 즉위 직후부터 11월까지 시노드를 개최하여 논의하고, 이후 암브로시오 성가대신 그레고리오 성가만 사용하도록 하는 정책을 펼치기도 한다. 당시 이탈리아 반도에 있던 북방 노르만족을 완전히 축출하기위한 계획을 하게 된다. 교황은 계획을 추진하기에 앞서 동로마제국의 새로운 황제로 즉위한 이삭1세 콤네노스(Isaac I Komnenos, 1007)에게 교황 대사를 보내 황제에게 이러한 교황의 뜻을 전달하기위해 출발한다. 이는 스테파노9세의 친형인 로렌 공작 고드프리3세(Godfrey III of Lorraine, 997~1069, 재위1025~1069)를 신성로마황제로 옹립시키기 위한 사전 작업 중 하나였는데, 교황이 즉위 8개월차때 갑자기 중병에 걸리게 되면서 모든 계획이 중단되기에 이르며, 이 소식이 동로마제국에도 전달됨에 따라 계획은 전면 백지화 되기에 이른다.
선종
1058년 3월 29일, 스테파노9세는 불과 38세의 나이로 피렌체(Firenze)에서 선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