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22대 왕 정조의 후궁 화빈 윤씨(和嬪尹氏, 1765.05.19~1824.02.01)
| 프로필 | |
| 직위 | 조선22대 왕 정조의 두번째 후궁(왕대비 김씨에 의해 간택) |
| 품계 | 정1품 빈 |
| 본관 | 남원(南原) |
| 명칭 | 화빈 윤씨 |
| 부친 | 판관 윤창윤(尹昌胤, 1734~?) |
| 모친 | 이훈보(李薰普)의 딸 벽진 이씨(碧珍李氏, ?~?) |
| 출신 | 미상 |
| 생몰년도 | (양력)1765.05.19 ~ 1824.02.01 |
| 간택날짜 | 1780.02.21(정조4년) |
| 남편 | 조선22대 정조(正祖, 1752~1800, 재위1776~1800) |
| 재위 | 조선 화빈 1780.04.14(정조4년) ~ 1824.02.01(순조24년) |
출생
조선 21대 영조 44년인 1765년 5월 19일, 아버지 윤창윤(尹昌胤, 1734~?)와 어머니 벽진 이씨(碧珍李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배경
조선 22대 왕 정조(正祖, 1752~1800, 재위1776~1800)의 두번째 간택 후궁으로, 정조의 정비이자 중전인 효의왕후 김씨(孝懿王后, 1753~1821)가 정조 사이에서 자녀를 낳지 못하여 첫 번째 간택 후궁 원빈 홍씨(元嬪洪氏, 1766~1779, 홍국영의 여동생)가 1779년 사망한 이후 이어 곧바로 두 번째 후궁으로 간택된 인물이다.
간택과 입궁
1765년 아버지 윤창윤과 어머니 벽진 이씨 사이에서 외동딸로 태어나 자라다가 1780년 2월 21일, 왕대비 김씨(정순왕후 김씨, 1745~1805)가 손자 정조의 후궁을 정한다고 발표한다. 당시 정조의 정비이자 중전이였던 효의왕후 김씨가 정조 사이에서 후사를 낳지 못하고 첫 번째 간택 후궁 원빈 홍씨마저 13세의 나이로 1779년 6월 9일 사망해버리면서 두 번째 후궁을 간택하게 된 것이였다. 그렇게 왕대비 김씨는 판관 윤창윤의 15세의 딸 남원 윤씨를 간택시키고 궁으로 불러들인다. 1780년 3월 10일, 화빈 윤씨는 궁으로 입궁하여 정식으로 정조의 후궁에 책봉되어 정조와 가례를 치른다.
상상임신
후궁에 책봉되면서 빈호와 궁호를 받게 되었고 가례를 치른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시기에 회임까지 하게 되면서 정조의 총애와 동시에 조정 대신들의 열렬한 지지와 환호를 받고 출산하기 직전에 산실청(산모의 건강 상태를 파악하고, 출산 장소 산실을 설치하고 태아가 출생하였을 시 산모와 태아의 회복을 위한 기관)이 설치되면서 출산을 준비하게 되지만, 우선적으로 기록에 따르면 상상임신이였다고 전해진다. 원래 회임시기로 보았을 때 출산달은 1781년 2월이였지만 기록에서는 산실청이 2월에 해산했다는 기록이 있고, 어떤 기록에서는 옹주를 출산했다가 딸이 한해를 넘기지 못하고 사망했다는 기록이 있다. 더욱이 당시 정조의 총애를 받던 또 다른 후궁인 의빈 성씨(宜嬪成氏, 1753~1786)가 1782년 10월 13일 왕자(문효세자)를 생산하면서 더욱이 밀려난다. 이전 간택후궁인 원빈 홍씨(元嬪洪氏, 1766~1779)의 경우엔 임신을 한적이 없어서 산실청이 설치되지 않았고, 의빈 성씨의 경우에는 1782년, 1784년, 1786년 세 차례에 걸쳐 산실청이 설치되었고, 효의왕후 김씨의 경우에 1787년 산실청이 설치되지만 상상임신임이 드러나서 이후 1788년 철수했다는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에 수록되어 있다. 정조의 마지막 간택후궁인 수빈 박씨(繡嬪朴氏, 1770~1823)의 경우엔 순조(純祖, 1790~1834, 재위1800~1834)를 낳을 때도 설치되었다.
이후 상황
그러나 1786년 의빈 성씨가 생산한 문효세자(文孝世子, 1782~1786)가 전염병으로 요절해버리고 의빈 성씨마저도 셋째를 임신한채로 사망해버린다. 당시 화빈 윤씨가 의빈 성씨를 저주하였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는데 조사 과정에서 화빈 윤씨측에서 문효세자와 의빈 성씨의 약을 잘못 올리게 했다는 이유로 1787년 위리안치형을 받게 된다. 이후 화빈 윤씨의 활동흔적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가 없다.
사망
1824년 2월 1일(순조24년), 59세의 나이로 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