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명 : 제라르도 카치아네미치 달 오르소(Gerardo Caccianemici dal Orso)
166대 교황 루치오2세(Lucius PP. II, ?~1145, 재위1144~1145)
| 전임 교황 | 당시 재직 교황 | 후임 교황 | |
| 직위 | 165대 교황 | 166대 교황 | 167대 교황 |
| 출신 | 교황령, 치타디카스텔로 | 신성로마제국, 볼로냐 | 신성로마제국, 피사 |
| 명칭 | 첼레스티노2세 Caelestinus PP. II |
루치오2세 Lucius PP. II |
에우제니오3세 Eugenius PP. III |
| 생몰년도 | ? ~ 1144.03.08 | ? ~ 1145.02.15 | 1080.xx.xx ~ 1153.07.08 |
| 교황선거기간 | 3일 (1143.09.24~1143.09.26) |
4일 (1144.03.09~1144.03.12) |
1일 (1145.02.15) |
| 재위 | 1143.09.26 ~ 1144.03.08 | 1144.03.12 ~ 1145.02.15 | 1145.02.15 ~ 1153.07.08 |

출생
출생년도는 미상이며, 신성로마제국령 볼로냐(Bologna)에서 아버지(미상)와 어머니(미상)사이에서 태어났다.
배경
166대 교황으로, 뛰어난 외교력으로 교황 특사로 파견되어 신성로마황제 로타르3세로 하여금 직접 군대를 이끌고 이탈리아 반도로 원정을 오게끔하여 안정을 도모시켜주게한 공으로 교황 인노첸시오2세로부터 추기경에 서임된 다음 4차례에 달하는 교황 선거에 참석하였고 1144년 3월에 선종한 첼레스티노2세 후임 교황으로 선출된다. 시칠리아 왕 로저2세와 갈등을 벌이는 과정에서 굴복하였는데, 그 틈을 타 로마 원로원이 공화국을 일으키려하는 반란으로 인해 시칠리아, 신성로마제국등에 군대를 요청하지만 신성로마제국 로마왕 콘라트3세에게만 답장이 와서 원정을오는동안 교황이 직접 교황군을 이끌고 대치하다가 전투중 부상을 입고 그 후유증으로 선종한다.
성직
소속된 수도회에 대한 정보가 미흡한 편이라 고향 볼로냐(Bologna) 근방 카살레키오쪽인지 루카의 산 프레디아노인지는 아직까지 논란이 있다. 이름이 확실하게 나오게되는 순간은 1122년, 교황 갈리스토2세(Callistus PP. II, ?~1124, 재위1119~1124)에 의해 사제급 추기경으로 서임되면서 나오게 된 것과 추기경이 된 이후 신성로마제국 교황 특사로서 파견(1125~1126)이였는데, 당시 신성로마황제는 로타르3세(Lothar III, 1075~1137, 로마왕재위1125~1137, 신성로마재위1133~1137)로서, 황제 로타르3세가 당시 교황 인노첸시오2세(Innocentius PP. II, ?~1143, 재위1130~1143)를 대립교황 아나클레토2세(Antipope Anacleto II, 1090~1138, 대립교황재위1130~1138)로부터 보호하기위해 황제가 직접 군대를 이끌고 이탈리아 반도로 원정을 떠난 것을 제라르도 추기경이 교황 특사로서 직접적인 중재가 있었기에 가능했고, 이러한 공으로 교황 인노첸시오2세는 제라르도 추기경을 추기경중 으뜸인 수석 추기경과 동시에 교황청 도서관장에 임명시킨다. 추기경으로 활동하는 동안 4차례(1124, 1130, 1143, 1144)에 달하는 교황 선거에 참여하기도 한다.
1144년 교황 선거
1144년 3월 9일, 교황 첼레스티노2세(Caelestinus PP. II, ?~1144, 재위1143~1144)가 선종하면서 선종 직후 바로 교황 선거가 소집되게 된다. 총42명의 추기경 선거인단중 7명이 불참한 35명이 참석하였는데, 전임 교황 첼레스티노2세 선종 이전까지 로마에 대한 권위를 회복하지 못한 상태에다가 신성로마제국과도 시칠리아 로저2세와의 경쟁으로 불안한 정세에 추기경들은 4일간의 선거기간 동안 신성로마제국에 우호적이고 시칠리아 로저2세에 대한 적대적 정책으로 시칠리아를 확보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졌던 제라르도 카치아네미치 달 오르소 추기경을 교황으로 선출시킨다. 선출된 제라르도 추기경은 루치오(Lucius)로 명명한뒤 루치오2세(Lucius PP. II)로서 즉위하게 되며 1144년 3월 12일 로마의 주교로서 재위기간이 시작된다.
교황
I. 시칠리아와 갈등
루치오2세는 교황으로 선출되자마자 1144년 6월, 체프라노(Ceprano, 현 이탈리아 라치오주 프로시노네도)에서 시칠리아 왕 로저2세(Roger II, 1095~1154, 재위1105~1130)를 직접 만나서 교황으로서 자신이 어떤위치에 있는지 드러내고, 로저2세에게 카푸아 공작령을 교황령에 반납하라고 요구하였고 이에 로저2세는 교황령보다 높은 군사력을 통해 카푸아 공작령 반납 조건으로 시칠리아 왕국과 경계지역인 교황령 남부 일부를 자신에게 줄 것을 요구한다. 교황 루치오2세는 이러한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로저2세는 교황에게 교황령 로마 내 반란을 시칠리아 군으로 하여금 진압할 수 없다고 선언(아래 주제에 내용배경이 나옴)함과 동시에 시칠리아 왕국으로 돌아오자마자 아들인 아풀리아와 칼라브리아 공작 로저3세(Roger III, 1118~1148, 재위1135~1148)에게 교황령 남부 캄파니아 지역을 공격하라고 지시한다. 월등한 군사력을 지닌 시칠리아군에 의해 교황군은 2개월도 채 되지않은채 힘도 못써보고 굴복해버리고, 1144년 9월 교황은 로저2세의 7년휴전 제안을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시칠리아가 교황령을 침공하지 않기로 약속한다.
II. 로마 원로원과 공화국
루치오2세가 시칠리아 왕 로저2세에 의해 굴복한 것을 틈타 로마 원로원에서는 교황의 권위를 축소시키고 로마를 교황령으로부터 독립시키고 고대 로마처럼 공화정을 세우려는 시도를 강행하기에 이른다. 주 운동층은 중간계층과 부르주아계층이였는데 오랜기간 교황의 권위에 눌러지내며 기회를 틈탔던 로마는 자신들이 직접 선출한 조르다노 피에르레오니(대립교황 아나클레토2세의 동생)를 주도로 하여 로마 내 친교황세력을 모두쫓아내고 코뮌을 세우면서 교황 루치오2세에게 반기를 들기에 이르며 원로원 의원수를 대폭 늘리고 행정구역을 더욱 세분화시키고 개편하여 선거인단수를 늘림으로서 세력을 강화해나간. 이에 교황은 시칠리아 왕 로저2세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만 이미 이전에 대립을 했던 것과 더불어 공식적인 왕으로 인정해주지않는 교황을 도울리가 없었고, 교황은 신성로마제국 로마왕 콘라트3세(Konrad III, 1093~1152, 이탈리아재위1128~1135, 로마왕재위1138~1152)에게 군사 원조를 요청하고 군대가 오는동안 교황자신이 직접 군을 지휘하며 원로원에 맞서지만 번번히 격퇴당하고 교황마저 부상을 입고만다.
선종
루치오2세는 원로원군과의 전투에서 입은 부상이 채 회복되지 못하고 1145년 2월 15일 선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