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 군주(927~1707), 고위귀족/스튜어트 왕조

제임스2세

Mintaka5 2025. 5. 29.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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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 왕 제임스2세(James II, 1633~1701, 재위1685~1688)

  전임 군주 당시 재직 군주 후임 군주
직위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왕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왕 오렌지 공, 잉글랜드 공동군주
가문 스튜어트 스튜어트 윌리엄3세
(오렌지-나사우)
메리2세
(스튜어트)
명칭 찰스2세
Charles II
제임스2세
James II
윌리엄3세 & 메리2세
William III & Mary II
출신 잉글랜드, 런던
(세인트제임스 궁)
잉글랜드, 런던
(세인트제임스 궁)
윌리엄3세
네덜란드, 헤이그
(비넨호프)
메리2세
잉글랜드, 런던
(세인트제임스 궁)
생몰년도 1630.05.29 ~ 1685.02.06 1633.10.14 ~ 1701.09.16 윌리엄3세
1650.11.04 ~ 1702.03.08
메리2세
1662.04.30 ~ 1694.12.28
재위 스코틀랜드 왕
1649.02.05 ~ 1651.09.03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왕
1685.02.06 ~ 1688.12.11
잉글랜드 왕(윌리엄3세)
1689.12.13~1702.03.08
잉글랜드 왕
1660.05.29 ~ 1685.02.06
잉글랜드 왕(메리2세)
1689.12.13 ~1694.12.28

잉글랜드 왕이자 스코틀랜드 왕인 제임스2세 초상화
제임스2세, 출처-위키피디아

출생

1633년 10월 14일, 잉글랜드 왕국 런던 세인트제임스 궁(St James's Palace)에서 아버지 찰스1세(Charles I, 1600~1649, 재위1625~1649)와 어머니 앙리에트 마리(Henriette Marie, 1609~1669, 프랑스 왕 앙리4세의 딸)사이에서 태어났다. 

 

배경

잉글랜드 왕으로서, 형 찰스2세(Charles II, 1630~1685, 재위1660~1685)가 1685년 2월 6일 승하하면서 즉위한 인물이다. 1649년 1월 아버지 찰스1세가 처형당하고 프랑스에 망명하여 군복무를 하다가 1660년 형 찰스2세가 잉글랜드 왕으로 즉위하며 왕정복고가 이루어질때 같이 들어와 여러 직위를 맡으면서 보필하다가 1685년 즉위한 후 이전부터 카톨릭으로 개종한 이후 마찰을 겪어오다가 반성공회 정책을 쓰면서 국내 정치 분란을 야기하다가 1688년 명예혁명으로 인해 폐위되어 프랑스에서 5촌 루이14세(Louis XIV, 1638~1715, 재위1643~1715)의 지원을 받아 자코바이트 봉기를 일으키지만 이마저도 윌리엄3세와 메리2세 공동군주 군대에 의해 격파당하며 프랑스로 다시 도망친 뒤 그곳에서 생을 마감하는 인물이다. 

 

 

초년

찰스1세와 앙리에타 마리 사이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나(첫째 아들은 찰스2세)태어나자마자 요크 공작 작위를 받았으며, 유아 세례를 받은 뒤 세살위 형 찰스2세와 같이 개인 교사로부터 궁에서 교육을 받는다. 제임스의 어린시절은 아버지 찰스1세와 의회와의 장기간 대립으로 인해 내전이 발발하던 혼란스러운 시기로 내전으로 인해 런던에서 머무르지 못하고 왕당파의 수도였던 옥스퍼드에서 보내면서 공부와 군 복무를 같이 병행하며 교육을 받는다. 1646년 옥스퍼드가 의회파에 항복하면서 런던에 끌려가 어머니를 포함한 형, 동생들과 세인트제임스 궁에 유폐되는 신세가 된다. 1648년 의회파가 내전에서 공식 승리하고 1649년 1월 의회에서 아버지 찰스1세에 대한 처형을 명한 뒤, 1월 29일 아버지 찰스1세가 처형당하며 잉글랜드 역사상 처음으로 처형을 당한 군주가 된다.

 

찰스1세 처형 이후

아버지 찰스1세가 1월 29일 처형되자 형 찰스는 스코틀랜드 왕으로(찰스는 스코틀랜드 왕으로 선포는 되었지만 프랑스로 망명감)선포되지만, 찰스는 제임스와 함께 프랑스로 망명하여 먹고 살기 위해 당시 프랑스 내전인 프롱드의 난(1648~1653)에서 튀렌 자작 앙리 드 라 투르 도베르뉴(Henri de la Tour d'Auvergne, 1611~1675)의 휘하 프랑스군에 복무하면서 용맹함을 보이며 인정을 받아 진급을 거듭한다. 그러나 1657년 제임스는 프랑스-스페인 전쟁(1635~1659)에 참전하고 있던 터에 프랑스와 잉글랜드가 동맹을 맺고, 형 찰스가 스페인과 동맹을 맺으면서 제임스가 프랑스 장성에서 전역당하고 추방당하게 되는데, 형 찰스의 결정에 불만이 많았지만 어쩔 수 없이 형이 있던 스페인군에 합류한다. 1659년 피레네 조약(The treaty of the Pyrenees, 1659)으로 프랑스-스페인 전쟁이 공식 종결되고 1660년 형 찰스2세가 잉글랜드 왕으로 즉위하면서 왕정복고가 이루어짐에 따라 제임스도 잉글랜드로 복귀하여 형 찰스2세로부터 작위를 받는다. 프랑스에서 군 장성까지 역임했던 제임스는 잉글랜드에 와서 해군 대장으로 임명되어 잉글랜드 바다를 수호하라는 명을 받으며 잉글랜드 해군 총 지휘관이 되며 2차 잉글랜드-네덜란드 전쟁(1665~1667), 3차 잉글랜드-네덜란드 전쟁(1672~1674)에서 활약하며 형 찰스2세를 보필하는 위치에서 활약한다. 이후로도 주지사, 총독, 식민지 총독등을 지내고 여러 이권들을 찰스2세로부터 위임받고 관리하게 됨으로서 막대한 부를 축적한다. 거기다 노예무역까지 가담하여 1672년 잉글랜드 왕립 아프리카 회사(RAC, Royal African Company, 1660년 창립) 칙허를 찰스2세로부터 위임받아 금, 은, 노예 무역을 하기위해 아프리카에 공장을 건설하고 주둔지를 설치하고 계엄령을 발령해 일대를 다스리게끔 하는데, 제임스는 이 무역의 총책임자가 되어 수만명에 달하는 아프리카 남성, 여성, 어린이노예를 수송하는데, 노예의 가슴팍에는 RAC총독 요크 공작(제임스)을 뜻하는 'DY'낙인이 찍혀있었다고 한만큼 노예무역을 했다는 것이 확실하다. 

 

카톨릭 개종

잉글랜드는 1534년 헨리8세(Henry VIII, 1491~1547, 재위1509~1547)가 수장령을 발표한 이후 줄곧 성공회를 국교로 삼았는데 찰스2세도 마찬가지로 성공회의 우두머리로서 통치를 행하고 있는데, 제임스는 아버지 찰스1세 처형이후 프랑스에 망명해 지내는동안 카톨릭 신앙에 노출되고 끌리게 되면서 잉글랜드에 다시 와서도 비밀리에 카톨릭으로 개종한 것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점점 카톨릭 영향력이 커지면서 잉글랜드 의회에서는 1673년 왕 찰스2세로부터 제정된 심사령(Test Act, 1673)이 실시됨을 선포하는데 이는 잉글랜드 내 공직을 맡은 사람은 잉글랜드의 국교회인 성공회 신자에 한한다고 규정하는 것으로, 제임스는 이 조치를 모두 거부하고 자신이 맡고있던 해군 대장직을 사임함으로서 만천하에 제임스의 카톨릭 개종이 공개되면서 왕실에서 난리가 난다. 제임스의 형 찰스2세는 제임스의 카톨릭 개종에 반대하면서 어떻게든 동생을 위기에서 구해내고자 제임스의 두 딸 메리(미래의 메리2세)와 앤(미래의 앤 여왕)이 잉글랜드 성공회신자로서 양육되도록 명령하는 반면에 1671년 제임스의 아내 앤 하이드(Anne Hyde, 1637~1671)가 사망하고 미망인이 된 제임스를 위로하기 위해 카톨릭 국가인 모데나의 메리(Mary of Modena, 1658~1718)와 결혼하는 것을 허용하여 1673년 결혼하게 된다. 

 

결혼의 대가

그러나 찰스2세가 카톨릭 국가 공주와 결혼을 허락한 대가로 1677년, 제임스의 딸 메리(미래의 메리2세)가 찰스2세의 여동생이자 제임스의 누나인 프린세스 로열 메리(Princess Royal Mary, 1631~1660)가 오렌지공 빌럼2세(Willem II, 1626~1650)와 결혼하여 낳은 오렌지공 빌럼3세(미래의 윌리엄3세)와 결혼하게하였는데 오렌지공은 성공회 신자였던것 만큼 성공회 신자 부부의 결혼으로 제임스는 혼자 반대를 피력할 명분이 서지 못해 결혼을 승낙하게 된다. 찰스2세가 40대 중반이 넘도록 자녀가 없으면서 잉글랜드 정부에서는 찰스2세 사망시 카톨릭 신자인 제임스에게 왕위가 넘어갈 것을 두려워하여 의회에서 힘을 얻어 1679년 배제 법안(Exclusion Crisis, 1679-1681)을 통과시키기 위한 과정에 착수하고 계속해서 여론이 통과쪽으로 흐르자 찰스2세는 여러차례 의회를 해산시키는데, 이 과정에서 의회 내 찬반세력이 팽팽하게 맞서는데 이 당들이 잉글랜드 정치사 발전에 핵심이 되는 휘그당(법안 통과 지지)과 토리당(법안 통과 반대)이다. 배제 법안은 최종적으로 통과되지 않는걸로 결론나지만, 여론을 의식한 제임스는 모든 기관에서 맡은 직을 사임하는 것과 찰스2세의 명령으로 브뤼셀(Brussel)에 망명가게 된다. 

 

라이 하우스 음모 

1683년 4월, 잉글랜드를 발칵 뒤집힐 음모가 발생하는데 라이 하우스 음모(Rye House Pot, 1683)라고도 불리는 이 사건은 잉글랜드 왕 찰스2세와 그의 동생인 요크 공작 제임스(미래의 제임스2세)를 암살하려고 한 계획이다. 찰스2세 일행이 뉴마켓에서 열릴 경마를 보러가기위해 움직이는데, 암살계획은 찰스2세 일행이 뉴마켓에서 경마를 직관하고 돌아오는 길에 기습하여 암살하겠다는 것이였는데, 경마가 열리기 전 1주일 전 뉴마켓에서 대화재가 발생하여 경마가 취소됨에 따라 찰스2세 일행은 일찍 런던으로 복귀함에 따라 암살계획은 실행되지 못한채 끝난다. 이후 조사를 통해 암살 공모자들을 모두 체포하고 가담한 대부분의 인물들이 참형에 처해지거나 교수형, 화형등으로 최후를 맞게 된다. 

 

즉위

I. 종교 자유

1685년 2월 6일 형 찰스2세(Charles II, 1630~1685, 재위1660~1685)가 뇌졸중으로 승하함에 따라 자녀가 없던 찰스2세를 이어 동생인 제임스에게 왕위가 가게 되면서 제임스2세로 즉위하게 된다. 그러나 즉위하면서부터 제임스2세는 두번의 위기에 봉착하게 되는데, 이는 몬머스 반란(Monmouth Rebellion, 1685)과 아가일스 봉기(Argyll's Rebellion, 1685)로 인해 혼란이 야기되었다가 다행이도 반란군의 규모가 커지지 않아 쉽게 진압되고 주동자를 포함한 반란 모의자들 대부분이 처형된다. 이 반란들 이후 제임스2세는 호위대 규모를 더 키워 안전을 더욱 곤고히 하고자 했는데, 1687년 일명 '신교 자유령(Declaration of Indulgence, 1687)을 선포함에 따라 표면적으로는 잉글랜드 내 개신교와 카톨릭신자들을 모두 처벌할 수 있게 하여 평등을 외쳤지만, 제임스2세는 카톨릭을 잉글랜드 내에서 증진시키려는 의도를 가지고 시작한 작업으로서 강제적으로 성공회를 믿지 않아도 되고 자유롭게 종교행위를 할 수 있게끔 되지만, 이 명령으로 인해 잉글랜드 국교회인 성공회에서 극렬한 반대를 외친다. 

 

II. 명예혁명

1688년 6월, 제임스2세와 메리 왕비 사이에서 적장자인 아들이 태어나게 되면서 이 적장자가 미래 잉글랜드 왕위에 오를 시 카톨릭 군주로서 성공회가 붕괴될 것이라는 두려움이 커지게 되면서 이들은 제임스2세의 첫째딸인 메리(미래의 메리2세)가 성공회 신자라는 점에서 군주에게 아들이 없을 시 장녀에게 왕위가 갈 수 있는 가능성을 보는데, 그와 동시에 제임스2세가 잉글랜드 성공회 주교들을 선동죄로 기소하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잉글랜드 각 지역에서 반카톨릭 봉기가 일어난다. 잉글랜드 의회는 이러한 사건을 기회로 삼아 네덜란드에 가있던 메리와 그녀의 남편인 오렌지공 빌럼3세(미래의 윌리엄3세)를 잉글랜드로 불러들이면서 1688년 11월 잉글랜드에 상륙하자 제임스2세의 군대들은 이들과의 전투를 거부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되면서 오렌지공 부부는 런던에 무혈입성하게 된다. 제임스2세는 12월 프랑스로 망명하게 되면서 잉글랜드 왕위가 공석이 되면서 1689년 2월 의회에서 오렌지공 부부를 잉글랜드 공동 군주로 인정하게 되면서 각각 윌리엄3세(William III, 1650~1702, 재위1689~1702), 메리2세(Mary II, 1662~1694, 재위1689~1694)로 즉위하게 된다. 유혈충돌 없이 입성하여 군주를 폐위시키고 즉위하였다 하여 명예혁명으로 불리게 된다. 

 

프랑스 도피 이후

제임스2세는 1688년 12월 프랑스로 도피한 이후 5촌 친척(제임스2세의 어머니 앙리에트 마리와 루이14세의 아버지 루이13세는 서로 남매지간이였다)이였던 프랑스 왕 루이14세(Louis XIV, 1638~1715, 재위1643~1715)의 지원을 받으면서 아일랜드에 상륙한 후 자코바이트 봉기를 일으켜 대항하지만 1690년 윌리엄3세 메리2세 군대와 전투를 벌이지만 대패하고 다시 프랑스로 망명해 루이14세의 보호아래 지내다가 1701년 9월 16일 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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