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 여왕 메리2세(Mary II, 1662~1694, 재위1689~1694)
전임 군주 | 당시 재직 군주 | 후임 군주 | |
직위 |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왕 | 오렌지 공, 잉글랜드 공동군주 | 잉글랜드 여왕, 영국 여왕 |
가문 | 스튜어트 | 윌리엄3세 (오렌지-나사우) |
스튜어트 |
메리2세 (스튜어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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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칭 | 제임스2세 James II |
윌리엄3세 & 메리2세 William III & Mary II |
앤 Anne |
출신 | 잉글랜드, 런던 (세인트제임스 궁) |
윌리엄3세 네덜란드 공화국, 헤이그 (비넨호프) |
잉글랜드, 런던 (세인트제임스 궁) |
메리2세 잉글랜드, 런던 (세인트제임스 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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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년도 | 1633.10.14 ~ 1701.09.16 | 윌리엄3세 1650.11.04 ~ 1702.03.08 |
1665.02.06 ~ 1714.08.01 |
메리2세 1662.04.30 ~ 1694.12.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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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위 |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왕 1685.02.06 ~ 1688.12.11 |
잉글랜드 왕(윌리엄3세) 1689.12.13 ~ 1702.03.08 |
잉글랜드 여왕 1702.03.08 ~ 1707.05.01 |
잉글랜드 여왕(메리2세) 1689.12.13 ~ 1694.12.28 |
영국 여왕 1707.05.01 ~ 1714.08.01 |
출생
1662년 4월 30일, 잉글랜드 런던 웨스트민스터 세인트제임스 궁(St James's Palace)에서 아버지 제임스2세(James II, 1633~1701, 재위1685~1688)와 어머니 앤 하이드(Anne Hyde, 1637~1671)사이에서 태어났다.
배경
제임스2세와 앤 하이드 사이에서 장녀(위로 다 조기 사망)로 태어나 카톨릭을 믿던 부모와는 다르게 여동생 앤(미래의 앤 여왕)과 함께 성공회 신자로서 자라오며 1677년 사촌인 네덜란드 공화국 헤이그 총독인 오렌지공 빌럼3세(미래의 윌리엄3세)와 결혼하고 이후 1685년 백부 찰스2세가 사망하고 아버지 제임스2세가 오른 뒤 카톨릭 국가로 회귀하려는 움직임등을 보이게 되면서 반란의 불씨가 스멀스멀 올라오다가 1688년 11월, 잉글랜드 귀족들과 연합한 오렌지공 빌럼3세가 이끌고온 네덜란드 군대가 이미 제임스2세의 정책으로 불만으로 가득찬 잉글랜드 군인들의 방해를 받지 않고 수도 런던에 무혈입성하게 되는 명예혁명이 일어나 제임스2세가 폐위되고 남편 빌럼3세가 영어식 이름 윌리엄3세로 명명되어 즉위하게 된다.
초년
태어나고 나서 성공회 세례로 유아세례를 받고, 메리의 할아버지인 제임스1세(James I, 1566~1625, 스코틀랜드재위1567~1625, 잉글랜드재위1603~1625)의 어머니인 증조외조모 메리 스튜어트 또는 스코틀랜드의 메리1세(Mary Stuart, 1542~1587, 재위1542~1567)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는데, 이미 잉글랜드에서도 블러디메리로 불리는 메리1세(Mary I of England, 1516~1558, 재위1553~1558)가 있었기에 이후 메리는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메리2세로서 즉위하게 된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카톨릭으로 개종한 상태였지만 메리는 백부 찰스2세(Charles II, 1630~1685, 재위1660~1685)에 의해 성공회신자로서 자라고 가정교사로부터 교육을 받지만 아버지 제임스는 찰스2세의 동생으로 아직 정정하던 찰스2세의 후사가 태어난다면 군주가 되긴 어려웠기에 메리와 앤은 주로 신부수업이나 예술쪽 교육, 언어 교육쪽으로 집중해서 받게 된다. 그러나 어머니 앤 하이드가 1671년 사망해버리고 아버지 제임스는 1673년 장녀 메리보다 겨우 4살 더 많은 모데나의 메리(Mary of Modena, 1658~1718)와 재혼한다. 메리는 15세의 어린나이에 사촌(빌럼3세의 어머니 메리는 찰스2세의 여동생이다)이자 같은 개신교를 믿던 네덜란드 총독 오렌지공 빌럼3세(미래의 윌리엄3세)와 약혼 한다.
빌럼3세와의 결혼
1677년 오렌지공 빌럼3세와 메리는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세인트제임스 궁(St James's Palace)에서 헨리 콤튼(Henry Compton, 1675~1713)주교의 주례로 결혼식을 올린 다음 남편을 따라 네덜란드 헤이그로 향한다. 그러나 남편 빌럼3세는 당시 프랑스 왕 루이14세(Louis XIV, 1638~1715, 재위1643~1715)의 침략으로 인해 정신없이 원정을 나간 상태라 메리는 홀로 궁에 남겨져있었는데 마침 임신까지 했으나 유산하고 이후 질병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어 자녀를 가지기 힘든 약한 체질이 되었다고 한다.
아버지 제임스2세
1685년 2월 6일 백부인 찰스2세(Charles II, 1630~1685, 재위1660~1685)가 55세의 나이로 승하하면서 자녀가 없던 찰스2세를 이어 아버지 제임스가 제임스2세(James II, 1633~1701, 재위1685~1688)가 즉위하게 된다. 그러나 아버지 제임스2세는 카톨릭 교를 믿고 있었고 자신의 종교를 더욱 곤고히 하기 위해 표면적으로는 성공회교도, 비성공회교도에게 모두 종교의 자유를 부여하지만 이미 다들 제임스2세가 자신의 종교를 합리화시키기위한 정책으로 인식하고 있었고 메리도 아버지의 조치를 성공회의 국가 잉글랜드에서는 불법적인 조치라고 여겼고 더욱이 남편 빌럼3세가 계속해서 프랑스 왕 루이14세에게 침공당하며 대패를 거듭하고 개신교도들이 박해당할때도 장인 제임스2세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제임스2세는 사위의 요청을 묵살한다.
명예혁명
제임스2세의 계속된 카톨릭 중심적 정책으로 잉글랜드에서 불만여론이 지속적으로 팽창하면서 성공회교도였던 잉글랜드 귀족들과 정치인들은 1686년 메리의 남편 빌럼3세와 접촉하여 문제 해결을 도모하고자 하는데, 결정적으로 1688년 5월에 제임스2세가 성공회 성직자들에게 공식적으로 카톨릭, 성공회교의 종교 자유를 부여하는 선언문을 읽도록 강요하는 행위를 벌이고 제임스2세가 재혼한 왕비인 모데나의 메리 사이에서 낳은 아들 프랜시스 에드워드가 1688년 6월에 태어나면서 더욱이 카톨릭 국가로 변모할 수도 있는 잉글랜드의 위기감이 더욱 고조되면서 1688년 6월 30일, 잉글랜드의 고위귀족 7명이 메리와 함께 빌럼3세를 찾아가 제임스2세를 폐위시키기 위한 계획을 알리고 비밀리에 거사에 대한 결의를맺는다. 빌럼3세역시 장인에 대한 반란을약속하고 선언문을발표해 1688년 11월 5일, 네덜란드 군대를 이끌고 잉글랜드에 상륙하게 되는데, 이미 제임스2세가 1685년 즉위한 후 계속된 불만을 품었던 잉글랜드 군대들은 공격의사가 없음을 밝히고 빌럼3세의 군대에 합류하게 되면서 수도 런던까지 무혈입성하게 되면서 이에 제임스2세는 도주할 수 밖에 없었다. 피를 한방울도 흘리지 않고 왕을 물러나게 한 혁명이라 하여 '명예혁명(Glorious Revolution, 1688)'이라 불린다.
권리장전
메리는 명예혁명 이후 잉글랜드로 돌아와 혁명에 성공한 남편을 만나 사후 처리문제에 대해 논의를 하고, 1689년 1월 남편 빌럼3세가 소집한 의회에서 제임스2세의 폐위가 논해지게 되고 동시에 다음 군주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는데, 메리가 유일한 군주가 되어야 한다는 의원들과 빌럼3세가 아내에게 복종할 수 없다고 하는 반대파의 의견이 팽팽하게 맞섰는데, 메리는 여성으로서 남편에게 복종해야한다고 믿었기때문에 군주가 될 생각이 없다고 일축한다. 1689년 2월 13일, 잉글랜드 의회는 권리장전을 발표하여 군주의 권한을 제한하고 의회의 권한을 강화하는 조건으로 메리와 남편 오렌지공 빌럼3세를 공동군주로 즉위하는 조건으로서 발표되어 이 권리장전 선언 이후 군주는 의회의 승인 없이는 법을 마음대로 폐지하거나 세금을 부과할 시 반드시 의회의 상의가 필요하도록 규정짓고 정기적으로 소집할 의무와 언론의 자유까지 보장하면서 의회의 권한이 막강해진다. 이 발표 이후 메리는 잉글랜드 여왕 메리2세로, 빌럼3세는 잉글랜드 왕 윌리엄3세(영어식 이름변경)로 공동 즉위식을 거행하게 되며 권리장전은 1689년 12월 공식 통과되게 되며 적용된다.
이후
윌리엄3세는 당시 유럽내 빈번하던 전쟁으로 인해 원정을 자주 나가면서 메리2세는 혼자서 정무를 처리할 상황에 많이 놓였는데, 특히 명예혁명으로 폐위된 아버지 제임스2세를 지지하는 자코바이트 세력과 많이 전투를 치르게 되는데, 우선적으로 잉글랜드 내에서도 아버지 제임스2세를 다시 복위시킬 음모를 꾸민 삼촌인 클래런 백작 헨리 하이드(Henry Hyde, 1638~1709)를 체포하여 불씨를 사전차단시킨다. 그러나 1692년부터 열병에 걸린 메리2세는 지속적으로 건강이 악화되면서 1694년 12월 천연두에 걸리며 더욱 건강이 악화되기에 이르고 1694년 12월 28일, 32세의 나이로 승하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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