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교황/101대~200대 교황

우르바노5세

Mintaka5 2025. 5. 24.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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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기욤 드 그리모아르(Guillaume de Grimoard)

200대 교황 우르바노5세(Urbanus PP. V, 1310~1370, 재위1362~1370)

  전임 교황 당시 재직 교황 후임 교황
직위 199대 교황 200대 교황 201대 교황
출신 프랑스, 리무쟁 프랑스 랑그도크, 그리자크 프랑스, 리모주
명칭 인노첸시오6세
Innocentius PP. VI
우르바노5세
Urbanus PP. V
그레고리오11세
Gregorius PP. XI
생몰년도 1282.xx.xx ~ 1362.09.12 1310.xx.xx ~ 1370.12.19 1330.05.09 ~ 1378.03.27
콘클라베기간 3일
(1352.12.16~1352.12.18)
1개월 7일
(1362.09.22~1362.09.28)
2일
(1370.12.29~1370.12.30)
재위 1352.12.18 ~ 1362.09.12 1362.09.08 ~ 1370.12.19 1370.12.30 ~ 1378.03.27

200대 교황 우르바노5세 초상화
우르바노5세, 출처-위키피디아

출생

1310년, 프랑스 랑그도크 그리자크(Grizac)에서 아버지 기욤 2세 드 그리모아르(Guillaume II de grimoard, 1285~1366)와 어머니 암펠리즈 드 몽페랑(Amphelise de Montferrand, 1285~?)사이에서 태어났다.

 

배경

200대 교황으로, 주교로서 교황으로 선출된 인물이다. 청렴함으로 유명한 베네딕토회 출신으로 수도회 교육을 받고 1362년 콘클라베에서 교황으로 선출되어 즉위하게 되어 여러 개혁들을 몸소 진행하면서 사보이십자군을 일으켜 동로마제국을 위협하던 오스만 제국을 유럽에서 몰아내고 동방 정교회를 지키고자 했지만 결론적으로 동로마황제 요한5세 팔라이올로고스(Johann V Palaiologos, 1332~1391, 재위1341~1376, 1379~1390, 1390~1391)가 교황 우르바노5세에게 충성맹세와 함께 카톨릭 개종을 하고 콘스탄티노플로 돌아가던도중 베네치아에서 체포되면서 이후 오스만제국의 종주권을 인정해줄 수 밖에 없는 상태에 다달으면서 의미없는 십자군이 되어버린다. 

 

성직

겸손함과 사치와 먼 삶을 추구하던 베네딕토회 출신으로 수도사가 되어 이후 신학자로서 교회법 박사 학위를 받고, 프랑스 남부 몽펠리에와 교황청이 있던 아비뇽에서 후학을 양성한다. 1334년 사제 서품을 받았으며 1352년부터 1362년까지 10년동안 아비뇽 교황청 사절로 외교관으로서의 임무를 수행하면서 빈틈없는 외교와 깔끔한 일처리로 능력을 인정받게되어 명성이 높았다. 

 

1362년 콘클라베

교황 인노첸시오6세(Innocentius PP. VI, 1282~1362, 재위1352~1362)가 1362년 9월 12일 선종하면서 아비뇽 교황청에서 콘클라베가 소집된다. 공식적으로 콘클라베가 열리는 날짜는 1362년 9월 22일에 잡혀 추기경들이 모이는데, 총21명의 추기경중 20명(프랑스인 추기경 18명)이 참석하여 투표에 들어간다. 1362년 9월 22일부터 28일까지 총7일간 지속된 콘클라베는 백년전쟁(1337~1453)이 1360년 프랑스 왕 장2세(Jean II, 1319~1364, 재위1350~1364)와 잉글랜드 왕 에드워드3세(Edward III, 1312~1377, 재위1327~1377)와의 9년간 휴전협정이 맺어지고나서 잠시간의 평화가 이루어졌던 시기라 언제 다시 전쟁이 벌어질지 모르느 상황에서 지속되었기에 추기경들은 혹여나 모를 상황에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유력한 교황 후보로는 교황 클레멘스6세(Clemens PP. VI, 1291~1352, 재위1342~1352)의 동생이자 아비뇽 교황청 궁무처장인 위그 로제(Hugues Roger, 1293~1363) 추기경을 선출하기로 의견을 모았지만 위그 추기경이 사양하겠다고 나서면서 교착상태가 지속되다가 결론이 나지 않고 콘클라베가 길어질 것을 염려한 추기경단들은 제3의 인물을 선출하자고 뜻을 모아 기욤 드 그리모아르 주교에게 표가 쏟아지면서 9월 28일 선출되긴 하지만 당시 콘클라베에 참석하지 않았던 그리모아르 추기경은 자신이 교황으로 선출된줄도 모른채 추기경들이 의논할 일이 있다고 속히 아비뇽 교황청으로 돌아오라는 요청을 받고 돌아온다. 그리모아르 주교가 10월 말경 아비뇽 교황청에 당도하자마자 선출되었다는 소식을 전하지만 그리모아르 주교는 극구 교황직을 거부하였으나 결국 교황직을 수락하여 우르바노5세로 즉위하게 된다. 

 

교황

I. 즉위 이후

우르바노5세는 즉위하자마자 특유의 엄격함으로 카톨릭 교회 개혁을 진행시켰고 추기경들의 기강을 잡기 위해 사치를 금하고 화려함을 중단시켜 학문을 신봉하여 학자들을 후원하는등의 노력을 기울인다. 거기다 우르바노5세는 아비뇽 유수(1309~1378)로 인해 아비뇽에 있던 교황청을 다시 로마로 되돌려놓고 교황령 영토를 다시 이전 수준만큼 회복하여 다시 돌아갈 수 있는 시기를 계산한다. 이탈리아 반도 사람들은 60여년간의 아비뇽 교황청이 다시 로마로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매우 기뻐하여 교황이 로마로 다시 돌아올 수 있게끔 갤리선을 포함한 호위군까지 지원받아 프랑스 남부 마르세유를 통해 1367년 4월 갤리선을 타고 6월 초가 되어서 코르네토(Corneto, 현재 이탈리아 라치오주 타르퀴니아)에 도달하고 여기서 부터 육지를 통해 로마에 도착하게 된다. 

 

II. 사보이 십자군

1363년 3월, 교황 우르바노5세는 동로마제국(비잔틴제국)의 동방 정교회를 오스만 제국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십자군을 선포하고 조직한다. 이 십자군의 총 지휘관은 사보이 백작 아마데오6세(Amedeo VI di Savoia, 1334~1383, 재위1343~1383)로 임명되어 원정을 떠나게 되는데, 프랑스 왕 장2세(Jean II, 1319~1364, 재위1350~1364)와 키프로스 왕 페드로1세(Peter I of Cyprus, 1328~1369, 재위1358~1369)등이 처음 서약을 맺고 출정하기 전 장2세는 개인적인 핑계로 교황의 서약을 이행하지 않고 페드로1세 역시 지휘관 아마데오6세와 협력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히고 단독적으로 움직이게 된다. 그렇게 계속 십자군을 키우기 위해 교황은 다른 군주들에게도 호소하지만 뜻데로 잘 모이지는 않는다. 1365년 3월 1일 공식 출전에 나서 발칸반도 지역에 있던 오스만 제국 세력을 유럽 땅에서 몰아내고자 공세를 시도하게 된다. 기세를 몰아 오스만을 몰아내면서 1366년 초, 현재 불가리아 영토 흑해 해변까지 도착하여 오스만 군이 점령하고 있던 지역을 점령하여 흑해를 끼고있던 동부 유럽 요충지였던 갈리폴리(Gallipoli)항구를 손에 넣게 된다. 동로마제국 황제 요한5세 팔라이올로고스(Johann V Palaiologos, 1332~1391, 재위1341~1376, 1379~1390, 1390~1391)는 이러한 십자군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카톨릭으로 개종하고 교황에게 충성을 맹세하지만 다시 콘스탄티노플로 돌아오는 길에 베네치아 공화국을 들렀다가 채무때문에 체포되어 결국 풀려나기 위해 오스만 제국 술탄 무라트1세()에게 종주권을 인정해줄 수 밖에 없었다. 사실상 정치적 목적이 들어간 십자군은 오스만 제국을 몰아내겠다는 목적과는 다르게 성과는 없었다.

 

선종

1370년 9월 말, 60세의 교황은 중병에 걸려 투병하다가 12월 19일 선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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