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명 : 에티엔 오베르(Étienne Aubert)
199대 교황 인노첸시오6세(Innocentius PP. VI, 1282~1362, 재위1352~1362)
| 전임 교황 | 당시 재직 교황 | 후임 교황 | |
| 직위 | 198대 교황 | 199대 교황 | 200대 교황 |
| 출신 | 프랑스, 리무쟁 | 프랑스, 리무쟁 | 프랑스 랑그도크, 그리자크 |
| 명칭 | 클레멘스6세 Clemens PP. VI |
인노첸시오6세 Innocentius PP. VI |
우르바노5세 Urbanus PP. V |
| 생몰년도 | 1291.xx.xx ~ 1352.12.06 | 1282.xx.xx ~ 1362.09.12 | 1310.xx.xx ~ 1370.12.19 |
| 콘클라베기간 | 3일 (1342.05.05~1342.05.07) |
3일 (1352.12.16~1352.12.18) |
1개월 7일 (1362.09.22~1362.09.28) |
| 재위 | 1342.05.07 ~ 1352.12.06 | 1352.12.18 ~ 1362.09.12 | 1362.09.08 ~ 1370.12.19 |

출생
1282년, 프랑스 왕국 리무쟁(현 프랑스 리모주 'Limoges')에서 아버지 아데마르 오베르(Adhémar Aubert, 1265~1303)와 어머니(미상) 사이에서 태어났다.
배경
199대 교황으로 아비뇽 유수(1309~1378)당시 교황이다. 프랑스 출신이며, 툴루즈에서 법학 공부를 하고 변호사, 교수, 판사로 활동을 하다 수도원장, 이후 노용의 주교등을 역임하다가 1342년 추기경에 서임되고 1352년 클레멘스6세 선종으로 열린 콘클라베에서 교황으로 선출되어 인노첸시오6세로 즉위한다. 교황 즉위이후 전임 교황들의 사치로 인해 파탄난 재정에 흑사병까지 겹쳐버리면서 재정에 자유롭지 못한 삶을 살았고, 프랑스와 잉글랜드간의 백년전쟁(1337~1453)까지 겹치면서 당시 프랑스 왕 장2세(Jean II, 1319~1364, 재위1350~1364)가 푸아티에 전투(1356)로 포로가 되었을 때도 이전의 왕실 인연으로 인해 프랑스인 교황이라는 오명을 쓰면서까지 장2세를 구명하기 위해 노력하고, 두 국가간 브레티니 조약(136)체결을 하기전까지 중재자로서 노력을 기울인다.
성직
고향에서 수사로 신학기초를 닦고 프랑스 남부 툴루즈(Toulouse) 대학교에서 시민법, 교회법을 공부하여 박사학위를 받고 툴루즈 대학교에서 민법을 가르치는 교수로 재직한다. 툴루즈를 기점으로 해서 교수로서 활동을 시작하기 전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툴루즈 법원 판사로 임용되기도 하는 행보를 보인다. 이후 1332년 로메테(Romette, 현 프랑스 프로방스-알프-코트다쥐르) 수도원 수도원장이 되고 동시에 노용(Noyon, 현 프랑스 오드프랑스 노용)의 주교로 승품된다. 주교로서 훌륭한 인품과 더불어 주변으로부터 인망이 자자했던 에티엔은 1340년대에 들어 프랑스 왕 필리프6세(Philippe VI, 1293~1350, 재위1328~1350)의 부름을 받아 왕실 외교업무와 더불어 총리대신까지 올라 필리프6세의 총애를 받게 되며 1342년엔 사제급 추기경(추기경 품계:주교급 추기경>사제급 추기경>부제급 추기경)에 서임된다.
콘클라베
I. 1342년 콘클라베
1342년 4월, 교황 베네딕토12세(Benedictus PP. XII, 1280~1342, 재위1334~1342)가 선종함에 따라 콘클라베가 소집된다. 베네딕토12세 선종 이후 당시 프랑스 왕이였던 필리프6세(Philippe VI, 1293~1350, 재위1328~1350)는 아들 장(미래의 장2세)를 아비뇽 교황청으로 보내 총리대신이였던 피에르 로제 추기경의 교황 후보 지원을 하게 하는데, 1342년 5월 5일부터 5월 7일까지 3일간 지속된 콘클라베는 필리프6세의 바람대로 마침 추기경들의 뜻도 피에르 로제 추기경에게 몰려 교황으로 선출된다. 교황명은 클레멘스로 명명하고 클레멘스6세(Clemens PP. VI)로 즉위하게 된다.
II. 1352년 콘클라베와 교황선출
1352년 12월 교황 클레멘스6세(Clemens PP. VI, 1291~1352, 재위1342~1352)가 선종하여 콘클라베가 열린다. 총26명의 추기경중 1명이 불참한 25명의 추기경이 투표에 참석하였고, 1352년 12월 16일부터 12월 18일까지 3일간 투표가 진행되어 에티엔 오베르 추기경이 교황으로 선출되어 인노첸시오6세(Innocentius PP. VI, 1282~1362, 재위1352~1362)로 즉위하게 된다.
교황
I. 즉위 이후
인노첸시오6세는 1352년 즉위 후, 콘클라베 때 추기경단들이 서로 내세우는 공약을 교황 선출전에 진행했던 합의사항은 무효임을 선언하고 아비뇽 교황청 내 부정부패를 척결하는데 누구보다도 앞장섰다. 그 기반을 통해 개혁을 시도하였고 또 1356년 신성로마황제서 대관식을 치르고 즉위하게 되는 카를4세(Karl IV, 1316~1378, 로마왕재위1346~1378, 신성로마재위1355~1378)로부터 직접 황제 즉위식을 집전하러 온 인노첸시오6세에게 로마를 현 아비뇽 교황에게 바치겠다는 약조를 하고 즉위한다.
II. 흑사병과 백년전쟁
1346년 유럽에 처음 등장해 전 유럽으로 퍼지던 흑사병은 1348년부터 프랑스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면서 프랑스 왕실과 아비뇽 교황청 모두 비상에 걸리게 된다. 특히 아비뇽 교황청은 베네딕토12세때 교황궁 건립, 인노첸시오6세의 전임교황 클레멘스6세의 사치에 사용되면서 재정에 비상이 걸리게 된다. 1350년대들어 더욱 확산세가 가파라지는 흑사병에 한창 동시기에 즉위한 인노첸시오6세는 전임 교황들의 사치로 인해 생긴 재정문제로 부랴부랴 아낄 것부터 아끼면서 긴축상태에 들어가면서 흑사병에 거의 모든 예산을 부을 수 밖에 없었고 그만큼 교황과 교황청내 모든 성직자들은 궁핍하게 지낼 수 밖에 없던 실정이였다. 그 사이 프랑스와 잉글랜드 왕국 사이에 벌어진 백년전쟁은 더욱 격화되어 1356년 9월19일 프랑스 중부 지역 푸아티에에서 두 국가간 큰 전투가 벌어지는데 이 전투는 프랑스 왕 장2세(Jean II, 1319~1364, 재위1350~1364)와 잉글랜드의 흑태자 에드워드(Edward the black Prince, 1330~1376)등 국가의 명운을 건 전투였는데 잉글랜드가 대승을 거두고 프랑스 왕 장2세가 잉글랜드의 포로가 되어버린다. 인노첸시오6세는 교황으로 즉위하기 전 장2세의 아버지 필리프6세때부터 총리대신을 역임하고 콘클라베 때 자신을 지지하러 직접 온 장2세의 상황을 외면할 수 없었기에 어떻게든 장2세를 포로로부터 구출하기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는데, 이 때 교황으로서의 이상으로 개입한 문제에 프랑스인 교황이라는 오명을 쓰면서까지 장2세의 구명을 위해 노력하는데, 그 노력으로 1360년 5월 8일 샤르트르(Chartres, 현 프랑스 파리 서남쪽 외르에루아르주 도시 샤르트르)에서 체결된 브레티니 조약(The treaty of Brétigny, 1360.05.08)을 체결하게끔 중재자로서 발벗고 나서 뛴다. 이 조약으로 9년간 휴전이 이루어지고 장2세는 포로신분으로부터는 벗어다.
III. 외교
앞선 재정문제로 인해 인노첸시오6세는 다방면으로 재정을 끌어모으기 위해 안간힘을쓰는데, 때마침 인노첸시오6세 치세때 프랑스는 잉글랜드 왕국간에 벌어진 백년전쟁(1337~1453)초기 시기로 막대한 자금이 백년전쟁에 투입됨에 따라 프랑스 왕실에서 보내오던 십일조도 내기 힘든 상황까지 온다. 다른 유럽 국가들의 상황도 매한가지였어서 인노첸시오6세는 결국 성직매매 정책을 사용하여 돈을 받고서 성직위를 부여하게 해주는 행위까지해버리고 만다. 거기다 아비뇽 교황청을 로마로 복귀하게끔 노력하여 추기경들을 이탈리아 반도 대사로 파견하여 로마 교황령을 외교력으로 평정하여 평정한 후 교황 자신은 몸만 갈 수 있게끔 만드는 밑작업을 시작했지만 실패로 끝난다.
선종
1362년 80세의 고령으로 선종한다.
'로마 교황 > 101대~200대 교황'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베네딕토12세 (0) | 2025.05.27 |
|---|---|
| 101대~200대 교황 목록 (0) | 2025.05.25 |
| 우르바노5세 (0) | 2025.05.24 |
| 식스토5세 (0) | 2025.05.06 |
| 비오6세 (0) | 2025.05.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