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교황/201대~현직 교황

비오10세

Mintaka5 2025. 4. 29.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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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주세페 멜키오레 사르토(Giuseppe Melchiorre Sarto)

257대 교황 비오10세(Pius PP. X, 1835~1914, 재위1903~1914)

  전임 교황 당시 재직 교황 후임 교황
직위 256대 교황 257대 교황 258대 교황
출신 프랑스령 교황령, 아나니 오스트리아 제국령 이탈리아, 리에세 샤르데냐 왕국, 제노바
명칭 레오13세
Leo PP. XIII
비오10세
Pius PP. X
베네딕토15세
Benedictus PP. XV
생몰년도 1810.03.02 ~ 1903.07.20 1835.06.02 ~ 1914.08.20 1854.11.21 ~ 1922.01.22
콘클라베기간 3일
(1878.02.18~1878.02.20)
5일
(1903.07.31~1903.08.04)
4일
(1914.08.31~1914.09.03)
재위 1878.02.20 ~ 1903.07.20 1903.08.04 ~ 1914.08.20 1914.09.03 ~ 1922.01.22

비오10세, 출처-위키피디아

출생

1835년 오스트리아 제국령 이탈리아 리에세(Riese)에서 아버지 조반니 바티스타(Giovanni Battista, 1792~1852)와 어머니 마르게리타 산손(Margherita Sanson, 1813~1894)사이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배경

257대 교황으로 당시의 보수적인 카톨릭계의 수장으로서 반복되어오던 전통을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문물에 대해서도 전통적 해석을 통해 이를 수용하고자 했던 중도적 진보성향을 가진 교황으로 분류된다. 어린시절부터 가난한 환경에서 자라 검소함이 몸에 배여 교황으로 즉위하고도 그 특유의 검소함이 나타나면서 카톨릭 교회의 기강을 잡고 재정적으로도 교황이 직접 관리하여 내적으로 쇄신을 다져 폐단을 과감히 없애고 교회법을 개정하고 체계화하는 작업을 손수 한 교황이다. 

 

초년

구두 수선공인 아버지 조반니 바티스타와 어머니 사이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나 가난한 집안환경으로부터 비롯된 부모의 검소함을 물려받아 주세페역시 검소하게 어린시절을 보냈고 그 검소함이 죽을때까지 이어진다. 마을 본당 신부로부터 라틴어를 배웠고 1850년 삭발례를 받고 트레비소 교구로부터 장학금을 받는 조건으로 파도바 신학교에 입학하여 교육을 받은 후 1858년 트레비소 주교 조반니 안토니오 파리나(Giovanni Antonio Farina, 1803~1888)에 의해 사제 서품을 받고 톰볼로 본당 사제에 임명된다. 

 

성직

1858년 사제 서품을 받은 이후 톰볼로 본당 사제로 9년을 보내고 8년간 살차노에서 수석 사제로 사목활동을 하고 1875년 주교에 서임되고 자신이 사제 서품을 받았던 트레비소의 주교가 되고 1884년엔 만토바의 주교로 임명된다. 1893년에는 교황 레오13세(Leo PP. XIII, 1810~1903, 재위1878~1903)로부터 사제급 추기경에 서임되고 베네치아 총대주교로 임명된다.

 

1903년 콘클라베

1903년 7월 20일 교황 레오13세(Leo PP. XIII, 1810~1903, 재위1878~1903)가 선종하고 콘클라베가 열린다.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에서 열리는 콘클라베에 주세페 멜키오레 사르토 추기경 역시 참석하게 되는데 총64명의 추기경 선거인단중 2명이 불참해 총62명의 추기경이 투표에 참석하게 된다. 당시 유력한 교황 후보로는 교황청 국무장관인 마리아노 람폴라(Mariano Rampolla, 1843~1913) 추기경이 유력했는데, 콘클라베가 시작된 이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황제 프란츠 요제프(Franz Joseph I, 1830~1916, 재위1848~1916)의 대변인 격이였던 폴란드 크라쿠프 총대주교인 얀 마우리치 파웰 푸치나(Jan Maurycy Pawel Puzyna, 1842~1911)추기경이 친 프랑스파였던 람폴라 추기경 선출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주세페 멜키오레 사르토 추기경에게 표가 몰리면서 교황으로 선출된다. 

 

교황

교황에 선출된 사르토 추기경은 전전임 교황 비오9세(Pius PP. IX, 1792~1878, 재위1846~1878)의 이름을따서 비오10세로 명명하여 1903년 8월 9일 즉위한다. 어린시절부터 가난하게 자라 검소함을 잃지 않았던 비오10세는 자신의 가난했던 삶마저 사랑하여 교황청 내 예식, 의식부분에 있어서 상당히 간소화되었고 교황역시 검소하게 생활한다. 교황에게 제공되는 호화로운 숙소가 아닌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검소한 생활을 이어나간다. 오죽하면 교황 스스로가 교황청의 재정자체를 관리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전임 교황 레오13세의 중도 진보 성향을 물려받아 개혁을 진행하게 되는데 그레고리오 성가를 적용해 종교 행사에서 음악 사용 권장, 남미 출신 대주교를 추기경으로 임명하고, 1900년대 초 아르헨티나에서 유럽으로 번진 탱고가 유럽을 장악하면서 유럽 내 교회에서는 금지를 하지만 비오10세는 탱고로부터 새로운 아이디어를 적용시켜 결코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손수 확인하면서 유럽 내 교회의 탱고 금지령을 철회하라고 명령하는 행보를 보인다. 

 

선종

1914년 8월 20일 79세의 나이로 선종하는데 이 때는 제1차 세계대전(1914.07.28~1918.11.11)이 발발한지 23일이 지난 시점이였는데, 1차대전이 발발하기 전 7월에 계속 반복적으로 전쟁이 올 것이라고 예측하는 행보도 보였다. 이후 1951년 6월 3일 교황 비오12세(Pius PP. XII, 1876~1958, 재위1939~1958)에 의해 시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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