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군주, 고위 귀족/Bourbon, 부르봉

필리프 도를레앙 1세

Mintaka5 2025. 1. 24.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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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프 도를레앙 1세, Philippe d'Orléans Ier, 1640~1701

필리프 도를레앙1세, 출처-위키피디아

출생

1640년 프랑스 왕국 생제르멩 앙레(Saint-Germain-en-Laye)에서 아버지 루이13세(Louis XIII, 1601~1643, 재위1610~1643)와 어머니 안 도트리슈(Anne d'Autriche, 1601~1666)사이에서 차남으로 태어남. 위로는 동복 형 루이14세(Louis XIV, 1638~1715, 재위1643~1715)가 있다.

 

배경

루이13세의 아들이자 루이14세의 동생으로 오를레앙 공작으로 알려져있는 왕족으로 무슈(Monsieur, 왕의 동생)로 불림. 오를레앙 공작위를 받기전엔 필리프 드 프랑스이고 오를레앙 공작위를 받고난 이후 후손들은 현재까지도 프랑스에 있다. 숙부였던 가스통 도를레앙(Gaston d'Orléans, 1608~1660)이 후사없이 사망하면서 오를레앙 공작이 되면서 부르봉-오를레앙 왕조의 시조가 된다.

루이13세는 동생이였던 가스통이 왕위에 욕심을 가지고 싸운 것을 경험한 것을 토대로 두 아들 루이14세와 필리프 도를레앙이 똑같은 상황을 보이지 않을까 염려해 여장을 하도록 명령을 받고 이러한 습관이 나이가 들어서도 유지가 되면서 결혼생활이 불안해지는 경향과 함께 남성에게 관심을 가지는등의 행동패턴을 보인다. 그래도 궁정에서 성격이 좋기로 인기가 있었고 군인으로서의 자질또한 뛰어나서 형 루이14세를 따라 참전하기도 한다. 

 

초년의 고생

I. 안 도트리슈

1643년 필리프가 3살일 때 아버지 루이13세(Louis XIII, 1601~1643, 재위1610~1643)가 사망하고 형 루이14세(Louis XIV, 1638~1715, 재위1643~1715)가 즉위하는데 5살의 루이14세를 대신해 모후 안 도트리슈가 섭정통치를 하게된다. 루이13세가 스페인 공주이고 프랑스의 기밀을 스페인에 전달하는 것을 보고 섭정통치를 하지말게끔 조치를 취하지만 안 도트리슈는 파리고등법원에서 루이13세의 유지를 파기하고 쥘 마자랭(Jules Mazarin, 1602~1661) 추기경과 함께 섭정체제에 들어간다.

대신 안 도트리슈는 자신의 장남이 왕위에 올라서 프랑스를 대표하게 되면서 친 스페인성향을 버리고 아들의 왕국의 국익을 위해 노력하게 된다. 

 

II. 프롱드의 난

1648년(루이14세 5년),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30년전쟁이 마무리짓게 되면서 이 때 마자랭또한 외교적 능력을 발휘해 프랑스의 국익을 챙기는 성공을 거두지만 파리 고등법원에선 스페인 합스부르크 출신의 안 도트리슈와 이탈리아 출신의 마자랭이라는 두 외국인이 프랑스를 통치하는 것을 싫어했는데 두 외국인은 고등법원을 패싱하면서까지 왕권강화에 치중하는 경향까지 보인다. 안그래도 프랑스는 30년전쟁으로 여러 불만들이 쌓였는데 1648년 6월 파리 고등법원이 루이14세의 칙령 등록을 거부하면서 저항하는데, 마자랭은 이를 무시하고 파리 고등법원 주동 법관을 체포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이에 흥분한 파리 시민들이 반란을 일으키는데 이것이 1차 프롱드의 난읻다. 그렇게 안 도트리슈는 루이14세와 필리프를 데리고 파리를 탈출하고 1년이 지난 1649년에 되어야 파리로 돌아오고 이후 부르봉콩데 공과 마찰을 빚게되면서 마자랭까지 1651년 프랑스를 떠나야하는 상황에다가 콩데공이 스페인과 결탁하면서 외세까지 개입할 여지가 보이면서 프롱드 반란세력은 민심이 돌아서면서 세력이 점점 약해지면서 정부군이 이를 진압하고 1652년에 반란이 종결된다. 

루이14세와 필리프 도를레앙은 프롱드의 난 때 반란군의 포로가 되는 등 수모를 겪으면서 둘도없는 형제끼리 고생을 했던 탓일까 루이14세는 필리프를 아꼈고 필리프는 형 루이14세에게 사망하는 1701년까지 형제로서, 주군과 신하로서의 의리와 충성을 끝까지 다하게 된다.

  

성향

아버지 루이13세의 명으로 여장을 했던 탓일까 양성애자적 기질을 가져 궁정 내 남, 녀 할것없이 염문설이 퍼지고 두번의 결혼생활이 불행하지만 궁정 내에서 성격좋기로 유명해 인기가 좋았고, 군인으로서도 탁월한 재질을 갖춰 1677년(루이14세34년)에 형 루이14세가 일으킨 네덜란드 계승 전쟁(1672~1678)에서 활약을 보이는 등의 행보를 보이지만 루이14세는 이를 경계하여 사실상 필리프를 은퇴하게하면서 막대한 돈을 준다. 

그 돈으로 미술품 수집과 함께 예술가 후원에 집중하면서 1701년 사망할 때 까지 예술의 발전과 더불어 왕실의 큰 어른으로서 위로는 주군 형 루이14세를 보좌하는 든든한 세력이 된다. 

이후 뇌졸중으로 1701년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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