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임옥사(1721~1722)
조선20대 임금 경종(1688~1724, 재위1720~1724)대에 발생한 옥사. 1721년 신축년에 시작되어 신축옥사와 1722년 임인년에 끝나는 임인옥사를 합해서 신임옥사라고 한다.
배경
I. 인현왕후와 희빈 장씨
조선 19대 임금 숙종(1661~1720, 재위1674~1720)대에 3차례의 큰 환국(경신, 기사, 갑술)으로 인해 정계가 소용돌이 치는데, 1694년 벌어진 갑술환국으로 인해 서인이 정계를 다시 장악하게 된다. 이 때 중전 장씨(장희빈)은 1689년 기사환국때 폐출된 중전 민씨(인현왕후, )에 대한 처우개선을 숙종에게 요구하면서 인현왕후가 복위되고 중전 장씨는 다시 정1품 희빈으로 강등된다.
희빈 장씨는 이전 후궁시절에 쓰던 취선당으로 거처를 옮기는데, 1701년 인현왕후가 서거하면서 취선당에서 무당을 불러 굿을 해 인현왕후를 저주해 서거케끔 한 이유로 희빈 장씨를 사사하기에 이른다.
II. 연잉군 세자 교체 독대
희빈 장씨에게는 숙종사이에 낳은 세자 윤(미래의 경종, 1688~1724, 재위1720~1724)이 있었는데, 원래부터 병약했는데 어머니인 희빈 장씨가 사사되고난 후 더욱 병세가 도드라진다. 이후 숙종 말년인 1716년(숙종42년)병신처분(송시열과 윤증간의 회니시비에 윤증의 잘못으로 판정한 정치처분)으로 노론(연잉군 세력)이 정권을 잡고 숙종은 이이명(1658~1722)을 독대하여 세자교체문제를 논하면서 연잉군 세자 추대건이 나오게 된다.
이에 소론(세자 윤의 세력)은 더욱 세자를 보호하기위한 결집을 해 노론과 치열하게 대립하게 된다.
III. 경종의 즉위
이렇게 대립하던 와중에 1720년 숙종(1661~1720, 재위1674~1720)이 승하하고 세자 윤이 조선 20대 경종(1688~1724, 재위1720~1724)으로 즉위하게 된다.
경종의 분노
I. 연잉군 세제책봉
1720년 32세로 즉위한 경종은 몸이 약한데다가 자녀가 없었다. 이듬해 1721년 노론 4대신이 경종에게 연잉군(미래의 영조)을 왕세제로 책봉하기를 주청하면서 연잉군이 왕세제로 책봉되고, 거기에 더해 경종의 병을 이유로 왕세제(연잉군)의 대리청정까지 주장하게 되면서 소론측에서도 부당함을 상소함으로서 논리를 걸고 넘어진다. 경종차원에서도 상당히 도를 많이 넘은 주문.
금상(통치중인 임금)이 아직 멀쩡하게 살아있는데 대리청정은 부당함을 넘어 불충까지 논하게 되면서 소론측에서 노론핵심 4대신을 탄핵하기에 이른다.
생몰년도 | 비고 | |
김창집 | 1648 ~ 1722 | 김상헌(1570~1652)의 증손, 노론의 영수, 김조순의 4대조 |
이이명 | 1658 ~ 1722 | 세종 12남 밀성군(1430~1479)의 후손, 실학의 근간을 닦은 인물, 노론 |
이건명 | 1663 ~ 1722 | 좌의정, 영의정 이경여의 손자, 노론 |
조태채 | 1660 ~ 1722 | 우의정, 노론 |
II. 김일경
이렇게 노론과 소론의 첨예한 대립으로 조정이 조용할 날이 없었는데, 그와중에 1721년(경종1년) 소론의 김일경(1662~1724)을 필두로 한 7인이 위의 노론4대신을 향해 왕권교체를 기도한 역모행위를 했다는 소를 올린다.
이로 인해 노론은 순식간에 무너지면서 소론 정권으로 순식간에 교체되는 환국이 일어나게 된다. 그렇게 하여 노론4대신 김창집은 거제도, 이이명은 남해도, 이건명은 나로도, 조태채는 진도에 각각 위리안치형을 받게 되어 배소되게 된다. 나머지 노론 대신들도 파직되거나 보직변경등의 처분을 받게 된다.
III. 목호룡의 고변
1722년(경종2년) 노론인 목호룡(1684~1724)이 경종을 죽이려고하는 역적이 있다고 고변하는 일이 발생한다. 고변내용은 경종을 시해하고자 '삼급수설'(칼로서, 약으로, 모해해 폐출한다)을 들었는데 경종은 이에 분개해 대신들을 모두 불러 고변을 자처한 목호룡이 지목한 인물들을 모두 잡아들이게 된다. 정인중(1674~1722)를 포함한 60여명의 잡혀온 무리에서 백망(1627~1722)이 심문 도중에 소론이 왕세제(연잉군)를 모함하려고 조작한 고변이라고 주장하지만 소론측에서는 무시.
IV. 노론4대신의 최후
이로인해 노론4대신(김창집, 이이명, 이건명, 조태채) 역시 연루되면서 사사형이 떨어지게 된다. 이외에도 30여명이 장형으로인해 죽고, 110여명이 유배형등으로 180여명에 달하는 대신들이 숙청된다. 이렇게 신임옥사가 종료된다.
고변의 최후
1724년 경종이 승하하고 세제 연잉군이 21대 영조(1694~1776, 재위1724~1776)로 즉위하게 되면서 영조가 신임옥사가 무고로 진행되었다는 주장을 받아들여 당시 고변했던 목호룡(1684~1724)과 김일경(1662~1724)을 체포해 처형하고 그 수급을 3일간 거리에 매달고, 정국은 노론이 다시 주도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