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군주(한국어, 프랑스어)/고려의 군주

20대 신종

Mintaka5 2024. 8. 31.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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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jong de Goryeo, 1144~1204, 재위1197~1204

 

 

출생

1144년 고려 개경 정궁에서 아버지 인종(1109~1146, 재위1122~1146)과 어머니 공예왕후 임씨(1109~1183)사이에서 5남으로 태어남. 본명은 왕탁. 위로는 첫째형 의종(1127~1173, 재위1146~1170)과 둘째형 명종(1131~1202, 재위1170~1197)이 있다. 

 

배경

형 명종이 최충헌의 난으로 혼란한 틈을 타 상황을 반전시키려다 걸려 폐위당하면서 최충헌(1149~1219)에 의해 옹립된 군주이다. 사실상 즉할때 당시 나이가 53세로 당시 고려에서는 적은 나이가 아닌 상황에서 즉위를한다. 노년에 황위에 오른 허수아비 군주 2호이며.. 7년의 재위기간동안 딱히 큰 일도 없어서 그냥 조용하게 무난히 군주로서의 대우를 받으며 삶을 누리다가 승하한 당시로 쳤을때도 그렇게 풍파가 크지 않은 군주이다.

 

즉위

1197년 형 명종이 폐위당하고 20대 신종(1144~1204, 재위1197~1204)이 즉위하게 되지만 사실상 모든 권력은 최충헌에게 있었으므로 역시 허수아비 군주 당첨. 군주가 누리고 할 수있는 모든 고유 권한들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었다. 오히려 형 명종때보다 황권이 더 추락하고 무신정권 집권자의 권위가 더 커지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모든 행정권, 군권들이 최충헌의 손아귀에 있었으므로(최충헌은 아예 국정 정무를 자신의 사저에 '정방'이라는 기구를 설치하여 이곳에서 모든 결정이 이루어졌다) 신종은 그냥 그저 최충헌이 보고를 올리면 고개만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즉위

애초에 신종은 인종의 5남으로서 군주와는 거리가 먼 황족으로서 아예그냥 신경도 쓰지않고 살았다. 그러나 1170년 첫째형 의종(1127~1173, 재위1146~1170)이 무신정변으로 인해 폐위되고, 3남인 형 명종(1131~1202, 재위1170~1197)이 즉위하지만, 명종역시 1197년 최충헌에게 잘못걸려 폐위당하면서 본인까지 논의에 올라 옹립된 것.

 

구마적의난?(X) 만적의 난(O)

신종때도 민심은 안정될 기미가 없었는데 당시 고려는 엄격한 신분질서 사회로서 노비역시 존재했는데, 인종(1109~1146, 재위1122~1146)때부터 소수의 권신들이 권위를 독점하는 현상이 나타나면서 그들이 거느리던 노비들의 입지까지 향상되어버리는 일이 발생해버리고 만다.  이들의 권위가 커지면서 노비출신의 인물이 관직에 오르는 웃지못할 상황까지 벌어짐에 따라 질서가 붕괴되어가기 시작하는데.. 미국 노예 해방 운동시기(1860년대)보다 약 660년가량 앞선 고려에서도 노예 해방 운동이 일어나게되는데, 이것이 1198년에 일어난 만적의 난(1198)이다. 

노비 만적(?~1198)을 중심으로 해서 난을 일으키기 전에 연설을 하러 다니면서 규모를 키워감에 따라 궐기를 계획하는데, 마침 만적의 연설을 듣던 율학박사 한충유의 노비가 이를 밀고함에따라 계획이 들켜 시행도 하기전에 이들모두 죽임을 당한다.  

 

승하

신종은 그저 최충헌이 하자는데로 가만히 고개만 끄떡이며 조용히 지내다가 1203년 59세가 되던 해에 등창이 터짐과 동시에 1204년 병석에 눕게되는데 병이 나을기세가 보이지 않아,  최충헌과 논의하여 태자 왕영(희종, 1181~1237, 재위1204~1211)에게 양위하고 그해 승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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