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군주, 고위 귀족/Bourbon, 부르봉

마리 레슈친스카

Mintaka5 2025. 8. 5.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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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왕비 마리 레슈친스카(폴란드어 마리아 레슈친스카, Marie Leszczyńska, 1703~1768)

  전임 부군(왕비) 당시 재직 부군(왕비) 후임 부군(왕비)
직위 프랑스 왕비
출신
가문
합스부르크 레슈친스카 합스부르크-로트링겐
명칭 스페인의 마리아 테레사
Maria Teresa de España
마리아 레슈친스카
Maria Leszczyńska
마리 앙투아네트
Marie Antoinette d'Autriche
출신 스페인, 에스코레알(Escorial) 폴란드-리투아니아 왕국
트셰브니차(Trzebnica)
신성로마제국, 빈(Wien)
생몰
년도
1638.09.10 ~ 1683.07.30 1703.06.23 ~ 1768.06.24 1755.11.02 ~ 1793.10.16
배우자 프랑스 왕
루이14세(Louis XIV)
1638.09.05~1715.09.01
(재위1643.05.14~1715.09.01)
프랑스 왕
루이15세(Louis XV)
1710.02.15~1774.05.10
(재위1715.09.01~1774.05.10) 
프랑스 왕
루이16세(Louis XVI)
1754.08.23~1793.01.21
(재위1774.05.10~1792.09.21)
부군
(왕비)
재위
기간
1660.07.09 ~ 1683.07.30 1725.09.04 ~ 1768.06.24 1774.05.10 ~ 1792.09.21

프랑스 루이15세 왕비 마리 레슈친스카 초상화
마리 레슈친스카, 출처-위키피디아

출생

1703년 6월 23일, 폴란드-리투아니아 왕국 트셰브니차(Trzebnica)에서 아버지 폴란드-리투아니아 왕국 왕 스타니스와프1세 레슈친스키(Stanisław Leszczyński, 1677~1766, 재위1704~1709, 1733~1736)와 어머니 카타지나 오팔린스카(Katarzyna Opalińska, 1680~1747)사이에서 태어났다. 

 

배경

폴란드 출신으로 1709년 8월 8일, 폴란드-리투아니아 왕인 아버지 스타니스와프1세 레슈친스키가 아우구스트2세()의 침략을 받아 왕위에서 쫓겨나 가족 모두가 망명을하여 이곳저곳 돌아다니다가 프랑스 왕 루이14세(Louis XIV, 1638~1715, 재위1643~1715)의 호의로 프랑스 알자스 지방에 정착하여 머물게 된다. 1725년 9월 루이15세와 결혼하여 10년간 총애를 받지만, 이후 퐁파두르 후작부인의 총애를 뺏겨 조용히 베르사유에서 예술가후원등으로 여생을 보낸다.

 

초년

1704년에 왕위에 오른 아버지 스타니스와프1세가 1709년 아우구스트2세에 의해 왕위에서 쫓겨나 마리를 포함한 가족 전체가 프랑스로 도피하게 되었고 프랑스 북동부 알자스 지방 도시 비상부르(Wissembourg)에 머물게 된다. 청년 마리는 프랑스 군 장교를 포함한 귀족 남성들과 결혼하여 안정을 추구하고자 했지만 아버지로부터 가문의 급이 맞지 않다는이유로 거절 당하는데 아버지 스타니스와프1세는 이보다 더 높은 가문인 프랑스 왕가인 부르봉 가문 혈통친왕인 루이4세 앙리 드 부르봉-콩데(Louis IV Henri de Bourbon-Condé, 1692~1740, 재위1710~1740)와의 결혼을 고려하고 있던 것이였다. 이 결혼계획은 부르봉-콩데 공작의 정부인 프리 후작부인 잔-아녜스 베르텔로 드 플레뇌프(Jeanne-Agnès Berthelot de Pléneuf, 1698~1727)의 아이디어였고 이를 통해 부르봉 공작은 새로운생각을 떠올리게 된다.   

 

간택

콩데 친왕 루이4세는 1725년, 15세의 어린 왕 루이15세(Louis XV, 1710~1774, 재위1715~1774)가 병에 걸려 혹시나 승하하였을 때 방계가문 오를레앙 공작 루이 도를레앙(Louis d'Orléans, 1703~1752)이 프랑스 왕위에 오르는 것을 우려하여 루이15세를 가능한 한 빨리 자식을 가지게끔 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렇게 백여명의 공주들 목록을 작성해 임신가능하고 크게 프랑스 왕실에 견제할 대상이 아니였던 마리 레슈친스카가 간택되었고 프리 후작부인이 마리를 선택하게되면 크게 자신의 권위를 압도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여 강력하게 추천한다. 그렇게 1725년 4월 2일, 콩데 친왕 루이4세는 루이15세의 이름으로 스타니스와프1세에게 결혼을 요청하는 서신을 전달하게된다. 그러나 이 소식은 프랑스 궁정에 큰 파장을 일으켜 프랑스 뿐만 아니라 유럽 내에서도 큰 환영을 받지못하게 된다. 마리 레슈친스카의 가문적 배경과 분쟁지역이던 폴란드 지역 출신이라는 이유로 프랑스가 자칫 잘못하여 휘말리게 되면 발생하는 피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피어나오게 된다. 그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스트라스부르에서 1725년 8월 15일, 루이15세의 대리인으로 오를레앙 공작 루이를 보내 마리와 결혼식을 올리게끔 한다.      

 

프랑스 왕비

마리는 결혼을 통해 프랑스 왕비가 된 이후 스트라스부르에서 베르사유 궁으로 가는 길목에 어려운 백성들에게 구호물품을 직접 손수 나눠주면서 사람들로부터 큰 환호를 받고 1725년 9월 4일 남편 루이15세가 있는 베르사유 궁에도착하여 루이15세를 만나고 9월 5일, 파리 남부 퐁텐블로(Fontainebleau)에서 정식으로 결혼하게 된다. 두 남녀는 서로의 외모에 즉시 끌리고 사랑에빠지게 되어 열렬한 사랑과 함께 자녀를 빠르게 낳게 된다.  1727년 8월 14일 쌍둥이 두딸(루이즈 엘리자베트, 앙리에트)을 포함하여 1729년 9월 4일엔 그토록 그리던 루이 페르디낭 드 프랑스(Louis Ferdinand de France, 1729~1765)왕자를 얻게 된다. 이들을 포함한 10명의 자녀 중 2명의 아들중에서도 루이 페르디낭 드 프랑스만이 살아남게된다. 마리는 루이15세보다 7살 연상(마리1703년생, 루이15세 1710년생)이였던 만큼 10여년간의 임신으로 변해버린 마리의 외형에 불만을 가진 루이15세는 지루함을 느껴 정부를 두게 된다. 그렇게 마리는 루이15세와의 사이가 멀어지기 시작하고 이는 더욱이프랑스 정치에 간섭하지 말라던 아버지 스타니스와프1세의 뜻을 거스르고 정치에 참여하고자 했던 마리였기에 더욱 루이15세의 총애를잃게 되어버린다. 단번에 마음이 돌아선 건 아닌 루이15세는 점점 마리와의 거리를 두게 되었고 이후로도 의사로부터 11번째 임신은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우려에 이 사실을 비밀리에 담아두고 루이15세의 총애를 얻기위해 발벗고 노력하지만 결국은 영향력은 없는 채로 1740년대부터는 계속해서 베르사유 궁에서만 조용하게 살아가게 된다. 

 

예술 후원자

베르사유에서 20여년간 조용히 머무를 동안 마리 레슈친스카 왕비는 음악과 그림을 매우 사랑하여 직접 악기연주를 하기도 하고 수채화를 그릴정도로 실력이 있었는데, 궁정 문화의 주도자적인 위치를 가졌던 만큼 예술가들의 후원자를 자처하며 이들을 후원하는데 일생을 바치게 된다. 당대의 예술가들을 베르사유 궁으로 초청하여 이들로부터 개인 레슨을 받으면서 실력을 다지고 1764년에는 8살의 오스트리아 음악 신동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도 초청하여 직접 독일어를 구사하여 대화하는등 여러 왕실 귀족들을 놀라게 하기도 한다. 

 

퐁파두르 후작부인

마리가 왕비로서의 권위를 거의 상실한 1740년대에 들어 루이15세의 눈에 새 여인이 눈에 들어오게 되는데 그 여인이 지금도 로코코 미술작품 단골 모델로 유명한 루이15세의 정부 퐁파두르 후작부인(Jeanne-Antoinette Poisson, marquise de Pompadour, 1721~1764)였다. 1744년 우연히 사냥을 나온 루이15세의 눈에 띄어 바로 여후작 작위를 수여받고 귀족이 되었고 1745년 전남편 샤를 기욤 르 노르망 데티올(Charles-Guillaume le Normant d'Étiolles, 1717~1799)과 공식 이혼하고 루이15세의 정부로 인정되게 되면서 총애를 받게 된다. 그러다가 1749년부터는 정치에도 깊게 관여하게 되면서 왕비 마리 레슈친스카는 영향력이 없어서 마땅히 뭐라할 수 없었고 1764년 퐁파두르 후작부인이 폐결핵으로 사망하기 전 까지도 친구들과 보내면서 계속해서 조용히 지내면서 궁정내에 발생하는 혼란에 연루되지 않는다. 

 

사망

1768년 6월 24일, 마리 레슈친스카는 65세의 나이로 남편 루이15세보다 6년먼저 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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