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센의 군주/프로이센 왕국(1701~1918)

프리드리히3세(프로이센)

Mintaka5 2025. 7. 29.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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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황제 & 프로이센 왕 프리드리히3세(Friedrich III, 1831~1888)

  전임 황제 당시 재직 황제 후임 황제
직위 프로이센 섭정, 프로이센 왕, 북독일연방 의장, 독일 황제 독일 황태자, 프로이센 왕, 독일 황제 프로이센 왕세자, 독일 황태자, 프로이센 왕세자, 독일 황제
가문
(왕조)
호엔촐레른(Hohenzollern)
명칭 빌헬름1세(Wilhelm I) 프리드리히3세(Friedrich III) 빌헬름2세(Wilhelm II)
출신 프로이센 왕국, 베를린(Berlin) 프로이센 왕국, 포츠담(Potsdam)  
생몰
년도
1797.03.22 ~ 1888.03.09 1831.10.18 ~ 1888.06.15  
재위 프로이센 섭정
1858.11.06 ~ 1861.01.02
프로이센 왕세자
1861.01.02 ~ 1888.03.09
 
프로이센 왕
1861.01.02 ~ 1888.03.09
독일 황태자
1871.01.18 ~ 1888.03.09
프로이센 왕세자, 독일 황태자
1888.03.09 ~ 1888.06.15
북독일연방 의장
1867.07.01 ~ 1871.01.18
프로이센 왕, 독일 황제
1888.03.09 ~ 1888.06.15
프로이센 왕, 독일 황제
1888.06.15 ~ 1918.11.09
독일 황제
1871.01.18 ~ 1888.03.09

독일 황제 프리드리히3세 초상화
프리드리히3세, 출처-위키피디아

출생

1831년 10월 18일, 프로이센 왕국 포츠담(Potsdam)에서 아버지 빌헬름1세(Wilhelm I, 1797~1888, 프로이센재위1861~1888, 독일황제1871~1888)와 어머니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의 아우구스타(Augusta von Sachsen-Weimar-Eisenach, 1811~1890)사이에서 태어났다. 

 

배경

독일 제국 2대 황제로, 군사 국가의 표상이였던 프로이센의 왕족으로서 어린시절부터 군사훈련을 받아오고 군인 또는 외교관으로 활동하면서 1861년 왕세자, 1871년 황태자에 오르는 인물로 1888년 아버지 빌헬름1세 황제가 사망하기 전 까지 계속해서 군인, 외교관으로서 행보를 이어나간다. 특유의 자유주의적 성향으로 보수적이던 왕실과 더불어 유럽 군주들에게 까지 경계어린 시선을 받았지만 전쟁 이후 온화한 도덕적 처사에 많은 국가들이 감탄하였고 1888년 3월 즉위하지만 1887년 후두암 진단을 받고 즉위 이후에도 계속 투병하다가 즉위한지 3개월만인 1888년 6월 15일 급사해버린다. 

 

초년

포츠담에서 태어나 왕자인 아버지 빌헬름(빌헬름1세)는 군인 국가의 전통을 가지는 프로이센 왕국의 군사 전통을 그대로 받아들여 엄격하게 어린시절을 보내고 자란다. 프리드리히가 어린시절 유럽은 1830년 7월 프랑스에서 앙시앵레짐()이전으로 회귀하려고 하였다가 역풍을 맞고 혁명으로 퇴위한 프랑스 왕 샤를10세(Charles X, 1757~1836, 재위1824~1830)가 도망치면서 7월 혁명의 여파가 전 유럽에 퍼지기 시작하였고, 자유주의가 태동하면서 독일에도 1840년대부터 자유주의가 팽배해지면서 혼란기를 겪는다. 이는 전제군주제에서 입헌군주제로 바꾸고, 국민들의 평등과 재산보호, 인권 보장등의 내용을 모두 보장해주는 권력자를 원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초년과 청소년기를 보낸 프리드리히는 자연적으로 자유주의적 성향이 자리잡게 된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프리드리히는 군사력을 중시하는 프로이센 왕국 일원으로서 왕족으로서의 교육과 동시에 군사 교육까지 철저히 받아 이미 10대 초반에 장교로서 소위에 임관되나, 이전 왕족들처럼 군 고위직으로 올라서 지휘를 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본 대학교(Bonn University)에 입학해 인문학과 역사, 정책등을 공부한다. 본 대학교 재학시절 스승이자 자유주의자, 민족주의자인 에른스트 모리츠 아른트(Ernst Moritz Arndt, 1769~1860)와 프리드리히 크리스토프 달만(Friedrich Christoph Dahlmann, 1785~1860)등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더욱 자유주의적 사상과 신념을 받아들이게 된다. 

 

왕위상속자

I. 프로이센 왕세자

1861년 1월 2일, 백부 프리드리히 빌헬름4세(Friedrich Wilhelm IV, 1795~1861, 재위1840~1861)가 사망하면서 아버지 빌헬름이 새 프로이센 왕 빌헬름1세(Wilhelm I, 1797~1888, 프로이센재위1861~1888, 독일황제1871~1888)로 즉위하면서 프리드리히는 왕세자에 책봉된다. 프리드리히는 왕세자 신분으로서 이미 이전부터 자유주의적 행보를 보여왔기에 자유주의 세력이 꽤 있었는데, 그에 비해 아버지 빌헬름1세는 보수주의적 사고를 가지고 있었고 1862년 프로이센 총리로 임명되는 '철혈재상' 오토 폰 비스마르크(Otto von W, 1815~1898)역시 아버지 빌헬름1세와 비슷한 사고를 가지고 있던 탓에 프리드리히는 비스마르크와 매일 갈등을 겪는다. 계속된 총리와의 갈등으로 인해 프리드리히는 아버지 빌헬름1세로부터도 지지를 얻지 못하고 점점 권력에서 멀어지게 되며 군인으로서, 외교대사로서 활동을 이어간다. 특히 1870년 프랑스와의 전쟁인 보불전쟁(The Franco-Prussian War, 1870~1871)에서도 3군 사령관으로서 군을 지휘하면서 세당 전투(The battle of Sedan, 1870.09)와 파리 포위전(The siege of Paris, 1870.09.19~1871.01.28)등에서 승리하면서 원수계급까지 진급하기도 한다. 

 

II. 독일 황태자

1871년 프로이센이 보불전쟁에서 승리하면서 프로이센을 포함한 독일 지역 내 여러 주들이 하나의 국가로 통합되는 과정을 거쳐 비로소 독일 제국이 탄생하게 된다. 프로이센 왕 빌헬름1세는 독일 지역 여러 주들의 의장(북독일연방 의장)으로서 황제로 추대되어 독일 제국 초대 황제가 된다. 그렇게 아버지가 황제가 되면서 왕세자인 프리드리히도 황태자 신분으로 격상된다. 왕세자에서 황태자로 격상되기만 했지 프리드리히 황태자의 자유주의적 성향은 유대인들의 해방문제에까지 호응을 보이면서 아버지와 비스마르크 뿐만 아니라 다른 유럽국가 군주들의 비판까지 몸소 받으면서 '가난하고 학대받는 유대인들'을 대변하는 연설을 하면서 수많은 비판을 받게 되는데, 심지어 아들인 빌헬름(미래의 빌헬름2세)에게 까지 유대인들에 의해 조종당하는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지지를 잃고있었고 이러한 황태자 프리드리히와 황태자비의 진보주의적 행보를 모두 경계하였다. 그러나 프리드리히 황태자는 이미 오랜기간 흡연으로 인해 건강이 매우 좋지않았는데, 안좋은 몸으로 1887년 6월 13일엔 자신의 장모인 영국 여왕 빅토리아(Victoria, 1819~1901, 재위1837~1901)의 즉위 50주년을 기념하는 골든 주빌리(Golden Jubilee, 즉위50주년)에 참석하기도한다. 

 

즉위와 사망

1888년 3월 9일, 아버지 빌헬름1세가 91세의 나이로 사망하면서 프리드리히 황태자가 프리드리히3세(Friedrich III, 1831~1888, 재위1888)로서 즉위한다. 그러나 프리드리히3세는 이미 왕세자, 황태자 시절부터 상당한 흡연가였고 건강이 좋지 않았는데, 이미 1887년 5월에 후두암 진단을 받고 성대를 절제하는 시술까지 사실상 즉위를 오래 할 수 없던 건 기정사실이였다. 아버지 빌헬름1세의 장례식 장례 행렬에도 참석하지 못할 정도로 건강이 악화됨에 따라 아들이자 황태자인 빌헬름(미래의 빌헬름2세)이 프리드리히3세의 행보를 대신하게 된다. 즉위 이후 계속 침대에 누워있을 수 밖에 없던 프리드리히3세는 6월이 되면서 암이 온몸에 전이되기 시작하면서 결국 1888년 6월 15일 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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