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합스부르크 왕조 왕 카를로스2세(Carlos II, 1661~1700, 재위1665~1700)
| 전임 군주 | 당시 재직 군주 | 후임 군주 | |
| 직위 | 스페인 왕(합스부르크 왕조) | 스페인 왕(보르본-앙주 왕조) | |
| 가문(왕조) | 합스부르크(Habsburg) | 보르본-앙주(Borbón-Anjou) | |
| 명칭 | 펠리페4세 Felipe IV |
카를로스2세 Carlos II |
펠리페5세 Felipe V |
| 출신 | 스페인 왕국, 마드리드(Madrid) | 스페인 왕국, 마드리드(Madrid) | 프랑스 왕국, 베르사유(Versailles) |
| 생몰년도 | 1605.04.08 ~ 1665.09.17 | 1661.11.06 ~ 1700.11.01 | 1683.12.19 ~ 1746.07.09 |
| 재위 | 아스투리아스 공(왕세자) 1605.04.08 ~ 1621.03.31 |
아스투리아스 공(왕세자) 1661.11.06 ~ 1665.09.17 |
룩셈부르크 대공, 시칠리아 왕 1700.11.16 ~ 1713.09.22 |
| 네덜란드 군주, 양시칠리아 왕 1621.03.31 ~ 1665.09.17 |
네덜란드 군주, 샤르데냐, 양시칠리아 왕 1665.09.17 ~ 1700.11.01 |
샤르데냐 왕 1700.11.16 ~ 1708.08.13 |
|
| 포르투갈 왕 1621.03.31 ~ 1640.12.01 |
스페인 왕 1665.09.17 ~ 1700.11.01 |
나폴리 왕 1700.11.16 ~ 1707.12.30 |
|
| 스페인 왕 1621.03.31 ~ 1665.09.17 |
스페인 왕 1차 (1700.11.16~1724.01.14) 2차 (1724.09.06~1746.07.09) |
||

출생
1661년 11월 6일, 스페인 왕국 마드리드(Madrid)에서 아버지 펠리페4세(Felipe IV, 1605~1665, 재위1621~1665)와 어머니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안나(Maria Anna von Österreich, 1634~1696)사이에서 3남으로 태어났다.
배경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조 최후의 왕으로, 합스부르크 왕조 특유의 근친결혼으로 인해 비정상적인 외형과 나쁜 건강, 장애 등으로 인해 항상 이야깃거리가 되었고, 여러차례 프랑스 왕 루이14세에 의해 영토를 빼앗기고 패배하면서 유럽 군주들 사이에서도 무능한 왕으로 낙인찍혀버린다. 이후 프랑스 왕 루이14세의 둘째손자 앙주 공작 필리프(미래의 펠리페5세)에게 계승한다는 유언장을 남기고 1700년 11월 1일, 39세 생일을 5일 앞두고 사망하면서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조가 끝나고 스페인 보르본-앙주(Borbón-Anjou)왕조가 시작된다.
초년과 즉위
1661년 11월 6일 카를로스가 태어났을 당시 위에 형이 있었기에 왕위 계승순위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카를로스가 태어나기 이전인 1646년 이복 형이자 큰형인 발타사르 카를로스(Baltasar Carlos de Austria, 1629~1646)가 17세의 나이로 사망해버리고 카를로스의 동복 형이자 둘째형인 펠리페 프로스페로(Felipe Próspero de Austria, 1657~1661)가 카를로스가 태어나기 5일전인 1661년 11월 1일에 4세의 나이로 사망해버리면서 순식간에 왕위 상속자이자 왕세자인 아스투리아스 공에 임명된다. 아버지 펠리페4세가 4세인 무렵 1665년 9월 17일 사망해버리면서 카를로스가 4세의 나이로 왕위에 올라 카를로스2세(Carlos II, 1661~1700, 재위1665~1700)가 된다. 그러나 어린 나이로 인해 아버지 펠리페4세가 써놓은 유언장의 내용에 의거하여 카를로스2세의 어머니인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안나를 섭정으로 임명하고 왕비를 포함한 6명의 섭정 위원(섭정위원에 오른 발타사르 모스코소 이 산도발 추기경이 위원이 되기 직전 선종해버려 아라곤의 파스쿠알 추기경이 임명됨)을 통해 통치되게 된다. 마리아 안나 왕비를 포함한 6명(1명 사망포함 7명)의 섭정 위원은 아래 표에 명시해 두었다.
| 생몰년도 | 직위, 비고 | |
| 마리아 안나 Maria Anna |
1634.12.23 ~ 1696.05.16 | 섭정, 스페인 왕비(펠리페4세) |
| 가르시아 하로 소토마요르 이 구즈만 García Haro Sotomayor y Guzmán |
1584.xx.xx ~ 1670.xx.xx | 카스티야 의회 의장, 법학자 |
| 크리스토발 크레스피 데 발다우라 Cristóbal Crespí de Valldaura |
1599.12.18 ~ 1671.02.22 | 아라곤 의회 부의장, 법학자 |
| 가스파르 데 브라카몬테 이 구즈만 Gaspar de Bracamonte y Guzmán |
1595.xx.xx ~ 1676.12.14 | 스페인 의회 대표, 외교관 |
| 기옌 라몬 데 몬카다 Guillén Ramón de Moncada |
1619.xx.xx ~ 1670.03.17 | 스페인 대공, 스페인 상원의원 |
| 아라곤의 파스쿠알 Pascual de Aragón |
1626.xx.xx ~ 1677.xx.xx | 스페인 종교재판소장, 추기경 |
| 발타사르 모스코소 이 산도발 Baltasar Moscoso y Sandoval |
1589.03.09 ~ 1665.09.17 | 톨레도 대주교, 추기경 섭정위원 되자마자 선종 |
포르투갈 문제
어린 왕 카를로스2세는 국경을 마주보고 있던 당시 유럽 초강대국 프랑스의 왕 '태양왕' 루이14세(Louis XIV 'le Roi Soleil', 1638~1715, 재위1643~1715)의 영토 야욕에 그대로 노출되었는데 이미 1640년 12월 1일 아버지 펠리페4세 재위기간 때 독립을 주장한 포르투갈 왕국의 긴 독립전쟁(1640~1668)에 한창 병력을 쏟아붓고 있던 터라 프랑스와 국경지역인 카탈루냐 지방쪽의 경계가 느슨해졌던 시점이였는데 루이14세는 1650년대부터 이러한 점을 이용해 포르투갈 왕 주앙4세(Juan IV, 1604~1656, 재위1640~1656)에게 접근해 스페인을 양옆으로 에워싸는 전략을 택하여 압박하기에 이른다. 루이14세는 1660년 7월 9일, 펠리페4세의 딸 마리 테레즈 도트리슈(Marie-Thérèse d'Autriche, 1638~1683)와 결혼하게 되는데 1665년 9월 17일, 펠리페4세가 사망하자 마리 테레즈 도트리슈의 결혼지참금 미지급을 문제삼아 스페인령 네덜란드지역 영토 권리 주장을 하게 된다. 그렇게 대립을 이어가던 두 국가는 1667년 5월 24일 루이14세가 스페인령 네덜란드 남부 프랑슈콩테를 공격하면서 상속전쟁(The war of Devolution, 1667~1668)이 터지게 된다. 이에 네덜란드는 전쟁중이던 잉글랜드와 즉시 종전을 선언하고 동맹을 맺고 스웨덴과도 동맹을 맺어 프랑스와 대치하는데 1668년 5월 엑스라샤펠 조약(The treaty of Aix-la-Chapelle, 1668.05.02)을 체결하면서 루이14세는 현재 프랑스 북부지역을 얻는 조건으로 상속전쟁 초기 스페인령 네덜란드 프랑슈콩테 지역을 스페인에 반환하면서 마무리된다.
페르난도 데 발렌수엘라
카를로스2세의 어머니이자 섭정인 마리아 안나 왕비는 이전의 혼란들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여 정치적으로 고립되어 있었는데, 이에 왕비는 하급 귀족 이달고(Hidalgo) 출신인 페르난도 데 발렌수엘라(Fernando de Valenzuela, 1636~1692)를 택하여 새 발리도(Valido)로 올린다. 스페인 내적으로는 세금을 낮추고 사회 간접 기반을 건설하여 농업을 증대시켜 전체적으로 국가를 현대화시킬 계획을 실행하고자 하였고, 외적으로는 당시 프랑스 왕 루이14세가 1673년 네덜란드를 침공하면서 프랑스-네덜란드 전쟁이 발발하면서 프랑스를 견제하기 위해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로렌 공국등과 함께 헤이그 동맹을 결성하였지만 루이14세의 프랑스군에 의해 무침히 짓밟힌다. 프랑스에 패배하고 정치적으로 위기가 온 발렌수엘라는 스페인 내 부패 관직을 늘리고 왕실 예산을 늘려서 화려함을 더욱 추구하여 군주제의 위용을 더욱 선보이고자(겉보기) 노력하였고 펠리페4세의 사생아이자 스페인 정계의 큰 영향을 미치던 오스트리아의 돈 후안 호세(Don Juan José de Austria, 1629~1679)를 고립시키기 위해 돈 후안 호세 주변인물들을 자신쪽으로 포섭하기 위해 로비를 펼친다. 그렇게 1675년 돈 후안 호세는 질세라 발렌수엘라로부터 해임되어 반감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을 모아 1675년 11월 6일, 카를로스2세가 성인이 된 시점에 왕비 마리아 안나가 돈 후안 호세를 제거하려고 했으나 우선적으로는 메시나에서 일어난 반란을 막기위해 병력을 이끌고 가는 것을 승인하고 돈 후안 호세는 스페인 밖에서 시간을 보낸다. 1676년 봄에 다시 돌아와서 직함을 받고 돌아왔고, 그해 12월에 프랑스와 국경을 맞대고있던 지역의 군대를 이끌고 마드리드로 와서 1677년 1월, 마리아 안나 왕비를 굴복시키고 톨레도(Toledo)에 보내고, 발리도인 페르난도 데 발렌수엘라를 수도원에 유폐시킨 다음 재판에 회부하여 필리핀으로 추방된다. 이 이후 카를로스2세는 친정을 선포하고 돈 후안 호세는 총리로 선출된다. 그러나 돈 후안 호세는 총리에 오른 이후 전염병 통제 실패, 흉년, 기근등으로 지지기반을 잃고 1679년 9월 사망하면서 어머니이자 왕비인 마리아 안나가 다시 권력을 잡게 되며 톨레도에서 마드리드로 돌아온다.
외교
1680년대에 들어서 카를로스2세는 합스부르크 근친결혼의 모든 건강문제를 안고 이미 건강이 좋지 않았던 실정에 직접 정무를 보더라도 이미 할아버지 펠리페3세(Felipe III, 1578~1621, 재위1598~1621)때부터 발리도에게 나라를 맡겨옴으로서 행정 체제가 심각하게 부패하여 왕의 권위가 카를로스2세 치세 중반이후부터는 바닥에 떨어진 실정으로 지방에서는 통치가 잘 되지 못해버린다. 이러한 스페인의 실정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던 유럽 군주들은 카를로스2세를 무능한 군주로 낙인 찍고 국경을 맞닿고 있던 당시 유럽 초강대국 프랑스 왕 루이14세의 영향력이 막강해진다. 루이14세는 카를로스2세의 무능과 스페인의 약점을 파고들어 영토 확장의 기회로 삼아 1683년 재통일 전쟁(The war of the Reunions, 1683~1684)현재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지역과 스페인령 룩셈부르크를 프랑스에 합병시켜버린다. 그러나 신성로마제국 국경 근처까지 전투가 벌어지게 되면서 당시 프랑스 내부에서도 전쟁을 뜯어말리기 시작하는 여론이 올라오기 시작하면서 루이14세는 결국 라티스본 휴전 협정(The true of Ratisbon, 1684.08.15)에 동의하면서 20년간의 휴전 협정이 체결되지만 루이14세는 휴전 협정이 체결된 지 4년이 지난 1688년 11월 16일, 선전포고를 하여 네덜란드를 다시 재침공하면서 9년 전쟁(The nine years' War, 1688~1697)이 시작된다. 카를로스2세의 스페인은 1689년 4월에 프랑스의 반대편에 서며 프랑스에 선전포고를 하고 전투를 벌이지만 스페인군은 프랑스군에 의해 연전연패를 거듭하며 이베리아반도에 프랑스군이 전선을 확장하면서 카탈루냐쪽에서 대전투가 벌어진다. 카탈루냐 지역에서도 전선이 점점 밀려 바르셀로나 근방까지 프랑스군이 도달하게 되면서 스페인의 동맹국들은 스페인을 지원하기위해 바르셀로나에 군대를 집결시키게 되면서 1695년부터는 연합군이 점점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게 되면서 루이14세를 몰아붙여 1696년이후부터는 점점 전투가 줄고 화의체결 여론이 올라오게 되면서 1697년 9월 20일, 레이스베이크(Ryswick)에서 양측이 회동해 전쟁을 조속히 끝내기로 합의한다.
승하와 이후 후계
카를로스2세는 후사가 없었고 가질 수도 없을만큼 몸이좋지 않았기에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조가 끝나는 것을 모두 알고있었고, 프랑스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지만, 같은 가문이던 합스부르크 신성로마제국에서도 카를로스2세 사후 스페인 영토를 두고 제국내 제후들과 밀약을 거친 것이 카를로스2세에게 들어가게 되면서 분노한 카를로스2세는 프랑스 왕 루이14세의 둘째 손자 앙주 공작 필리프(미래의 펠리페5세)를 후임 군주로 지명하게 된다. 그렇게 1700년 11월 1일, 카를로스2세는 39세 생일을 5일 남겨두고 사망한다. 카를로스2세 사망 이후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조는 끝나고 프랑스 앙주 공작 필리프가 펠리페5세(Felipe V, 1683~1746, 재위1700~1724, 1724~1746)로 즉위하면서 스페인 보르본-앙주(Borbón-Anjou)왕조가 시작된다.
'스페인의 군주 > 합스부르크'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엘리자베트 드 부르봉 (0) | 2025.07.04 |
|---|---|
| 펠리페4세 (0) | 2025.06.27 |
| 펠리페3세 (0) | 2025.06.26 |
|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가 계보 (0) | 2025.06.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