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합스부르크 왕조 왕 펠리페3세(Felipe III, 1578~1621, 재위1598~1621)
| 전임 군주 | 당시 재직 군주 | 후임 군주 | |
| 직위 | 스페인 왕 | ||
| 가문 | 합스부르크 | ||
| 출신 | 스페인, 바야돌리드 | 스페인, 마드리드 | 스페인, 바야돌리드 |
| 명칭 | 펠리페2세 Felipe II |
펠리페3세 Felipe III |
펠리페4세 Felipe IV |
| 생몰년도 | 1527.05.21 ~ 1598.09.13 | 1578.04.14 ~ 1621.03.31 | 1605.04.08 ~ 1665.09.17 |
| 재위 | 밀라노 공작 1540.10.11 ~ 1598.09.13 |
포르투갈,아스투리아스 공(왕세자) 1582.11.21 ~ 1598.09.13 |
포르투갈,스페인 왕세자 1605.04.08 ~ 1621.03.31 |
| 잉글랜드 여왕 부군(메리1세) 1554.07.25 ~ 1558.11.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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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폴리, 시칠리아 왕 1554.10.28 ~ 1598.09.13 |
네덜란드 군주 1621.03.31 ~ 1665.09.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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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르고뉴 공작 1555.10.25 ~ 1598.05.06 |
나폴리,시칠리아,포르투갈,스페인 왕 1598.09.13 ~ 1621.03.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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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르투갈 왕 1580.09.12 ~ 1598.09.13 |
나폴리,시칠리아,포르투갈,스페인 왕 1621.03.31 ~ 1665.09.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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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페인 왕 1556.01.16 ~ 1598.09.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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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578년 4월 14일, 스페인 마드리드(Madrid)에서 아버지 펠리페2세(Felipe II, 1527~1598, 재위1556~1598)와 어머니 안나 폰 외스터라이히(Anna von Österreich, 1549~1580)사이에서 태어났다.
배경
펠리페2세와 펠리페2세의 조카딸 안나 폰 외스터라이히 사이에서 태어난 펠리페3세는 어려서부터 아버지 같이 정치와 14시간 이상 집무를 볼만큼 정치와 직무에 관심이 없었고 1598년 9월 13일 아버지 펠리페2세가 승하하고 즉위하고 나서는 정치에 아예 관심을 끄고 레르마 공작 프란시스코 데 산도발 이 로하스에게 위임통치를 맡기고 측근통치자라는 의미의 발리도스(Validos)라는 직책이 생기게 되며 펠리페3세가 1621년 승하할 때 까지 위임통치가 지속된다.
초년
펠리페3세는 아버지 펠리페2세가 51세에 가진 늦둥이 아들로서 위로 3명의 형 페르디난트(), 카를로(), 디에고()는 이미 어린시절에 조기사망해버려서 사실상 장남으로서 교육을 받아왔다. 펠리페는 이후 아버지 펠리페2세의 광대한 영지를 다스릴만한 그릇은 아니였다고 전해지는데, 서류왕으로 불리는 아버지 펠리페2세처럼 하루 14시간이상 집무실에서 직무를 볼만큼의 의지는 없던것 만큼 정치와 공무를 싫어했었다고 전해진다. 대신 펠리페는 어린시절부터 솔직한 성격에 사냥을 좋아하고 음악을 좋아했던 것으로 보인다.
즉위
1598년 9월 13일, 71세의 아버지 펠리페2세가 승하하고 자신이 펠리페3세(Felipe III, 1578~1621, 재위1598~1621)로서 아버지의 작위와 영지들을 물려받고 즉위하게 된다.
스페인 왕
I. 발리도스 위임통치
펠리페3세는 즉위 이후 앞에서 기술한 것 처럼 정치에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고 총애하던 레르마 공작()에게 사실상 통치를 맡기고 자신은 뒷전으로 물러나 하고싶은 것을하게된다. 사실상 펠리페3세 즉위 이후 부터 스페인은 왕이 총애하는 측근 중 한명이 통치하게되는 관행이 시작되게 되며 발리도스(Validos, 총리대신이 아닌 총애를 받는 인물)이러한 위임 통치는 사실상 왕에게 보고하지 않고 권한을 행사함에 따라 여러 논란을 가지게 된다. 펠리페3세 재위기간(1598~1621)중 2명의 발리도스가 나오게 되고 공교롭게도 두명의 발리도스는 부자지간*이였다.
*1598년부터 1618년까지 레르마 공작 프란시스코 데 산도발 이 로하스(Francisco de Sandoval y Rojas, 1553~1625, 위임통치1598~1618)이, 1618년부터 펠리페3세가 승하하는 1621년까지 3년은 레르마 공작의 아들 우세다 공작 크리스토발 고메즈 데 산도발-로자스 이 드라 세르다(Cristóbal Gómez de Sandoval-Rojas y de la Cerda, 1581~1624, 위임통치1618~1621)이 통치한다
II. 외교
아버지 펠리페2세(Felipe II, 1527~1598, 재위1556~1598)대부터 사실상 스페인의 재정은 파산직전까지 치닫는데, 이전의 전쟁과 식민지에서 나는 금 고갈등으로 경제적 문제는 펠리페3세대에 들어 더욱 심각해지는데, 이러한 심각성에 펠리페3세는 1607년 결국 파산에 이르자 부채지불을 잠정 중단할 수 밖에 없었는데, 더욱이 1610년 프랑스 왕 앙리4세(Henri IV, 1553~1610, 나바라재위1572~1610, 프랑스재위1589~1610)가 프랑수아 라바이약()에게 암살당하면서 왕위에 오른 9살의 앙리4세의 장남 루이가 루이13세(Louis XIII, 1601~1643, 재위1610~1643)으로 즉위하자 앙리4세의 왕비 마리 드 메디시스(Marie de Medicis, 1575~1642)가 섭정통치를 하게 되자 일시적으로나마 스페인과 프랑스간에 평화적 메시지가 날아든다. 마리 드 메디시스는 스페인과의 평화를 도모하기 위해 자신의 아들 루이13세와 펠리페3세의 장녀 인판타 안(안 도트리슈)과 결혼시키고, 루이13세의 여동생 엘리자베트 드 프랑스(미래의 스페인 왕비 이세발 데 보르본)을 펠리페3세의 장남 아스투리아스 공작(왕세자) 펠리페(미래의 펠리페4세)와 결혼시키면서 혼인동맹을 강화한다.
승하
1621년 3월 31일, 펠리페3세는 43세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승하한다. 후임 스페인 왕은 왕세자인 아스투리아스 공작 펠리페가 펠리페4세(Felipe IV, 1605~1665, 재위1621~1665)로 즉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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