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군주, 고위 귀족/Capétiens, 카페왕조

앙리1세

Mintaka5 2025. 7. 17.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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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카페 왕조 직계 왕 앙리1세(Henri Ier, 1008~1060, 재위1031~1060)

  전임 군주 당시 재직 군주 후임 군주
직위 부르고뉴 공작, 프랑스 왕 부르고뉴 공작, 프랑스 왕 프랑스 왕
가문(왕조) 카페(Capet)
명칭 로베르2세
Robert II
앙리1세
Henri Ier
필리프1세
Philippe Ier
출신 프랑스 왕국, 오를레앙(Orléans) 프랑스 왕국, 랭스(Reims) 프랑스 왕국, 믈렁(Melun)
생몰년도 972.03.27 ~ 1031.07.20 1008.05.04 ~ 1060.08.04 1052.05.23 ~ 1108.07.29
재위 부르고뉴 공작
1005.11.xx ~ 1016.01.xx
부르고뉴 공작
1016.xx.xx ~ 1032.xx.xx
프랑스 왕
1060.08.04 ~ 1108.07.29
프랑스 왕
996.10.24 ~ 1031.07.20
프랑스 왕
1031.07.20 ~ 1060.08.04

프랑스 카페 왕조 직계 왕 앙리1세
앙리1세, 출처-위키피디아

출생

1008년 5월 4일, 프랑스 왕국 랭스(Reims)에서 아버지 현명왕 로베르2세(Robert II le Pieux, 972~1031, 재위996~1031)와 어머니 아를의 콘스탄스(Constance d'Arles, 986~1032)사이에서 차남으로 태어났다. 

 

배경

프랑스 카페 왕조 직계 왕으로, 당시 유럽의 정서상 부자 공동군주가 되는 일이 비일비재했는데, 앙리의 바로 위 형인 위그 드 프랑스가 1017년에 공동군주가 되었지만 1025년에 18세의 나이로 사망해버려 사실상 계승자가 된 앙리 역시 앙리1세로서 아버지 로베르2세가 살아있을 당시 1027년 공동 왕으로 즉위하게 된다. 1031년 아버지 로베르2세가 사망하면서 단독 통치를 행하게 되지만 아래 동생 로베르의 영향력 증가로 1032년 부르고뉴 공국을 내어주면서 안정을 꾀하고자 하였다. 1035년엔 미래의 잉글랜드 정복왕 윌리엄이 되는 노르망디 공작 윌리엄의 대부가 되었지만 이후 윌리엄이 지속적으로 권위가 상승하게 되면서 결국에는 1054년, 1057년 전투를 벌이지만 모두 앙리1세가 패해버려서 사실상 노르망디의 주권을 인정할 수 밖에 없게되고 도리어 윌리엄에게 프랑스 영지가 공격받으며 빼앗기는 등 앙리1세의 권위가 축소된다. 

 

초년

앙리가 태어나기 6년전인 1002년 10월 15일, 부르고뉴 공작 앙리1세(Henri Ier de Bourgogne, 948~1002, 재위965~1002)가 자녀없이 사망해버린다. 로베르2세는 부르고뉴 공작 앙리의 조카(부르고뉴 공작 앙리는 로베르2세의 아버지 위그 카페와 형제지간이였고, 위그 카페의 나머지 형제들은 모두 여성이였고 남동생들에겐 자녀가 없었다)였기에 부르고뉴 공국은 로베르2세의 자식에게 물려줄 수 있는 명분이 있어야했지만 로베르2세는 1002년 당시에 왕비 베르타 드 부르고뉴(Bertha de Bourgogne, ?~1097)사이에 자식이 아직 없었기에 이에 부르고뉴 공작 앙리1세의 양자 자격으로서 부르고뉴 계승권을 주장한 오트 기욤(Otte-guillaume, 960/962~1026, 재위982~1026)이 로베르2세와 부르고뉴 공국 계승권을 두고 대립하게 된다. 1005년까지 2년간 이어진 계승권 분쟁은 오세르 포위전(1003), 보네 포위전(1004), 아발론 포위전(1005)등을 통해 로베르2세는 이들로부터 충성을 맹세하고 로베르2세가 직접 부르고뉴를 통치하며 1016년, 아들인 앙리(미래의 앙리1세)에게 부르고뉴 공작 작위를 내린다. 

 

즉위

앙리에게는 위그라는 형이 있었는데, 위그는 1017년 7월 19일 아버지 로베르2세에 의해 공동 왕으로 선포되면서 대관식까지 거행하지만 사실상 실권은 로베르2세가 쥐고 있던 상태였는데 위그(Hugues de France, 1008~1025)가 1025년 9월 17일 18세의 나이로 갑자기 사망해 버리면서 앙리가 사실상 계승순위 1위가 되어버린다. 로베르2세는 1027년 5월 14일, 앙리를 랭스(Reims)대성당에서 공동 왕 앙리1세(Henri Ier)로 선포하면서 아버지와 같이 공동군주가 되지만 사실상 실권은 아버지 로베르2세가 쥐고 있었고, 앙리의 바로 아래 동생 로베르(Robert I de Bourgogne, 1011~1076)가 있었고, 어머니 콘스탄스까지 자신보다 동생 로베르에게 왕위를 앉히고 싶어 했기에 여러방면으로 적이 많았던 앙리1세는 신성로마황제 콘라트2세(Konrad II, 990~1039, 로마왕1024~1039, 신성로마황제1027~1039)와 노르망디 공작 로베르1세(Robert Ier de Normandie, 1000~1035, 재위1027~1035)등에게 지지를 얻으면서 왕의 권위를 확보하고자 노력했지만 1031년 7월 20일 아버지 로베르2세마저 사망해버리면서 앙리1세는 단독통치를 감행하게 된다. 그러나 동생 로베르의 영향력을 무시하고는 국정운영이 어려웠기에 아버지 로베르2세 사망 후 단독통치 1년만인 1032년에 동생 로베르에게 부르고뉴 공국을 내준다.

 

노르망디 공작 윌리엄

1035년 자신을 지지했던 노르망디 공작 로베르1세가 십자군으로 노르망디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떠나면서 노르망디 공작의 어린 아들 윌리엄(미래의 잉글랜드 왕이 되는 정복왕 윌리엄1세)의 대부이자 보호자가 되었으나, 원정을 떠난 노르망디 공작이 니케아(Nicaea)에서 전사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어린 윌리엄이 노르망디 공작에 오르면서 어린나이로 정치적 어려움을 가져 앙리1세가 노르망디를 제대로 통치할 수 있게끔 젊은 노르망디 공작 윌리엄을 열렬하게 지원한다. 그러나 이후 점점 커가면서 노르망디의 권력을 공고히 하던 윌리엄의 권위 상승으로 결국 부딫힐 수 밖에 없는 상황이 1054년에 오는데, 이 해 모르테메르 전투(The battle of Mortemer, 1054)와 1057년 바라빌 전투(The battle of Varaville, 1057)등 두 전투에서 모두 앙리1세가 윌리엄 공에게 패배하면서 앙리1세는 노르망디를 더이상 건들 수 없었고 노르망디 공작 윌리엄의 권위가 더욱 커지게 되는 계기가 된다. 도리어 윌리엄은 1058년 역으로 프랑스 영토를 침공해 서남부 틸리에르(Tillières)까지 빼앗는등 승승장구 한다. 

 

승하

1060년 8월 4일, 앙리1세는 52세의 나이로 비트리앙브리(Vitry-en-Brie)에서 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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