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 군주(927~1707), 고위귀족/튜더 왕조

헨리7세

Mintaka5 2024. 10. 2.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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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nri VII d'Angleterre, 1457~1509, 재위1485~1509

헨리7세, 출처-위키피디아

출생

1457년 웨일스 펨브룩 성(Château de Pembroke Principauté de Galles) 에서 아버지 에드먼드 튜더(Edmond Tudor, 1430~1456)와 어머니 마거릿 보퍼트(Marguerite Beaufort, 1443~1509)사이에서 태어남.

 

배경

랭커스터가문과 요크가문의 30년전쟁(1455~1485)을 랭커스터가문의 승리를 끝으로 잉글랜드 튜더왕조 최초의 왕이된 인물. 절대왕정 튜더왕조의 문을 연 창업자로서 왕권회복과 잉글랜드의 내치를 튼튼하게 하면서 30년전쟁 이전의 국력을 회복시켜 놓았다.

 

백작

본명은 헨리 튜더이고 리치먼드 백작위를 가진 인물로서 모계로 에드워드3세(Édouard III, 1312~1377, 재위1327~1377)의 5대손이 된다. 아버지 에드먼드 튜더는 헨리6세(Henri VI, 1421~1471, 재위1422~1461, 1470~1471)의 이복동생* 이였고 아버지는 프랑스 샤를6세의 외손자이기도 했다. 이는 헨리5세가 1422년 아내 카트린 드 발루아보다 일찍 사망해버려서 미망인이된 카트린과 에드먼드 튜더의 아버지 오웬 튜더가 결혼하게되면서 가문의 격이 올라가게 된 것. 에드먼드 백작의 어머니 카트린의 아버지가 프랑스 왕 샤를6세이기 때문.

*프랑스 왕 샤를6세(Charles VI, 1368~1422, 재위1380~1422)의 딸 카트린 드 발루아(Catherine de Valois, 1401~1437)의 두아들 헨리6세(아버지 헨리5세, Henri V, 1386~1422, 재위1413~1422)와 에드먼드 튜더(아버지 오웬 튜더, Owen Tudor, 1400~1461)는 어머니는 같은 인물이지만 아버지가 다르다.

  랭커스터 가문 요크 가문
에드워드3세(Édouard III, 1312~1377, 재위1327~1377)
I ● 3남 랭커스터 공작 곤트의 존
(Jean de Gand, 1340~1399)
○4남 요크공작 에드먼드
(Edmond de Langley, 1341~1402)
II 장남 헨리4세(Henri IV, 1367~1413, 재위1399~1413)
●차남 서머셋 백작 존 보퍼트(Jean Beaufort, 1373~1410)
케임브리지 공작 리처드(Richard de Conisburgh, 1385~1415)
III ● 서머셋 공작 존 보퍼트(Jean Beaufort, 1403~1444) 요크 공작 리처드 플랜테저넷(Richard Plantagenet, 1411~1460)
IV ● 마거릿 보퍼트(Marguerite Beaufort, 1443~1509, 헨리7세 어머니) 에드워드 4세( Édouard IV, 1442~1483, 재위1461~1483)
리처드 3세(Richard III, 1452~1485, 재위1483~1485)
V ●헨리7세(Henri VII, 1457~1509, 재위1485~1509) ○요크의 엘리자베스(Élisabeth d'York, 1466~1503, 에드워드4세의 딸, 헨리7세와 혼인)

 

리처드3세

1461년부터 1485년까지는 요크가에서 왕이 배출되는데, 이때 랭커스터 가문 출신들은 당시 왕이였던 에드워드4세에 의해 숙청되는데 헨리 튜더는 프랑스 브르타뉴로 망명을 가서 이곳에서 꽤 오랜기간 망명생활을 한 뒤 1483년 에드워드4세가 사망함으로서 다시 잉글랜드로 돌아와 사실상 랭커스터가문의 수장이 된다(남은 사람이 없었음,..). 

1483년 에드워드4세가 사망하고 아들 에드워드5세(Édouard V, 1470~1483, 재위1483)가 즉위하지만, 숙부 리처드3세(Richard III, 1452~1485, 재위1483~1485)에 의해 폐위되어 사실상 살해당했다고 보는 설이 유력하다.

이로인해 요크가문 내에서 분열이 일어나 사실상 민심까지 떨어지는 모습을 본 헨리 튜더가 1485년 반정을 일으켜 리처드3세를 몰아내고 헨리 튜더가 왕위에 오르게 되면서 헨리7세(Henri VII, 1457~1509, 재위1485~1509)가 되고 랭커스터 가문 출신으로서 랭커스터 왕가가 열림과 동시에 튜더 왕조가 개창된다. 

 

이득?

왕위에 오르면서부터 우선적으로 헨리7세는 30년간의 긴 장미전쟁으로 인해 분열이 되었던 요크가문과 화해의 의미로 요크 가문 군주 에드워드4세의 딸 요크의 엘리자베스(Élisabeth d'York, 1466~1503)와 1485년 혼인하면서 사실상 화합이된다. 

안주인이 생기고 왕권을 회복시키고 강화시키려고 하다보니... 30년전쟁으로 인해 남은 귀족들이 없어진 탓에(?) 헨리7세는 즉위시점부터 사실상 견제세력이 없는 상태로서 강한 권력을 쥐게 된다(!). 30년전쟁은 사실상 귀족가문간의 전쟁으로서 전쟁에 참여한 인원들이 귀족이였기 때문에 귀족이 귀족을 죽임으로서 귀족계층의 숫자가 줄어든 것. 

운이 좋았다고 할 수 밖에..!

 

일하자

헨리7세는 30년간의 전쟁이후 뒷수습 차원에서 요크가문의 영지를 왕실로 환수시켜 영토를 넓히고, 사회질서 회복, 안그래도 없는 귀족으로인해 강해진 왕권에서 더 왕권을 강화시키는 정책들을 편다(얼마나 더 강해질려고?).

민심까지 다독이는 차원에서 상공업 장려를 하여 시장경제체제를 구축했다는 평을 받고, 강력한 내치를 통해 왕실의 재산을 많이 늘려 강력한 왕권을 자랑하게 된다(어디 의회나 귀족들한테 눈치 안봐도 되니께...~~).

 

승하

1509년 6월 52세의 나이로 결핵으로 사망. 후임 왕은 숱한 이야기거리를 남기는 헨리8세(Henri VIII, 1491~1547, 재위1509~1547)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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